뉴욕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76
제롬 카린 지음 / 시공사 / 1998년 6월
평점 :
품절


다양한 화보와 친절하게 붙어 있는 캡션글이, 수시로 나타나는 오탈자와 문맥이 잘 와 닿지 않는 번역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오려는 내 입을 막아주고도 남음이 있는 좋은 책이다. 오~! 뉴욕, 뉴욕, 뉴욕 그러나 나는 이 화려한 도시 뉴욕을, 19세기 즈음 어찌해볼 도리없는 가난을 면할 요량으로 이 도시에 들어온 이민자들의 연대기라는 입장에서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책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런 점을 잘 보게 한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네덜란드 선박의 선장들이 발견한 강어귀 근처에 작은 해외 거점들을 세운 것을 계기로 탄생한 도시, 뉴욕은 한편으로는 유럽인들이 신세계를 꿈꾸던 열망에 의해 탄생한 도시라 할 수 있다. 그 열망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신을 닮고 싶고, 그려면서 아주아주 부유해지고 싶다는 것. 한 사람이 뉴욕에서 부유하다는 것은 곧 신이 선택한 자를 지적해 주는 표시 같은 것이었고, 가난하다는 것은 반대로 악마의 낙인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 도시 뉴욕은 악마 즉 가난과 공존할 줄도 알았다.

1900년대 할렘(현재의 우리가 알고 있는 할렘은 흑인 주거 지역이지만)은 100% 백인만 사는 멘하튼 교외였다고 한다. 이 천국의 주거지에 살 수 있도록 축복받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부유한 뉴요커들이었다. 그들은 요트 클럽, 문학 잡지, 음악 동호회, 미국의 자유의 옹호자들의 지부 등과 같은 '기호와 재산을 가진 부류' 였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불결한 공기와 먼지를 먹고 살며, 빛도 들어오지 않는 벽장 속에서 새우잠을 자며, 간신히 읽고 쓰는 것을 배우는 부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범죄가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일명 마태 효과 아닌가,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할지어다."  뉴욕은 이렇게 부자와 빈자, 어마어마한 사치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궁핍이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뉴욕은 이민들과 난민들의 땅이기도 하다. 이민자들은 기존의 상업 체제 속에서 그들이 들어설 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들만의 거래 형태를 만들어 내야 했다. 또한 끝도 없이 계속되는 이민족들간의 파워 게임은 범죄 문화를 낳았다. 이 상황에서 뉴욕의 하층민 아이들이 나아갈 길은 도둑질, 가난, 매춘 밖에 없었으며, 적어도 갱 안에서 그들은 자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뉴욕은 범죄 문화가 꽃피운 갱스터의 도시로 그 모습을 갖춰 간다. 갱스터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충실하다. 그는 거리의 삶에 대해 감상적이지 않으며 덜 소외되었다. 최초의 범죄왕(일명 똑똑이)이라 할 수 있는 아놀드 로스스타인은 '대통령의 집무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의 입 속에' 돈을 쑤셔 넣기로 유명하다. 심지어는 미국의 제도 가운데 가장 신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야구마저 타락시켰는데, 1919년 그는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선수 8명을 매수하여 가장 약한 팀인 신시네티 레드스에게 져 주게 함으로서 그 해의 월드 시리즈를 망쳐 놓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일련의 이민자들의 '빈곤'은 절망이라는 마비된 정신을 낳지만 또한 뉴욕을 개혁하려는 시도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뉴욕은 추한 도시 더러운 도시라고 한다. 뉴욕의 환경은 일종의 스캔들이고, 뉴욕에서 실행된 정책은 아이들을 두렵게 하고, 뉴욕의 교통 사정은 광 자체이고, 뉴욕의 경쟁은 살인적이다. 그래도 이것 한 가지는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번 뉴욕에 살아보면 그리고 뉴욕을 자기 도시로 만들면 다른 어떤 곳도 그만 못해진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 곳에 모여 있다. 사람, 극장, 미술, 문학, 출판. 살인, 강도, 사치, 가난 등 뉴욕은 모든 것의 총체이다.

뉴욕은 '우리'라는 인간 족속이 너무나 아름답기도 하고 매우 추하기도 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도시이지 않을까. 내가 정의할 수 있는 거대 도시란 이렇다. 부푼 꿈을 안고 지금 막 도시의 땅을 밟은 촌부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허락하며, 열렬히 지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실체는 촌부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고 있는 것. 촌부여! ~ 아무리 현실이 그렇더라도 우리 절대 기죽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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