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치는 소리
오에 겐자부로 지음, 김이진 옮김 / 문학사상사 / 1994년 11월
평점 :
절판




대학 3학년 때로 기억된다. 오오에 켄자부로오의 <개인적 체험>-이 소설은 <개인적 체험>에 앞서 2년 전 그의 나이 27살에 발표한 소설이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나는 학교 도서관에 그의 또다른 소설을 어렵사리 찾았던 것이다. 이 소설은 <개인적 체험>에 앞서 2년 전 그의 나이 27살에 발표한 소설이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에는 글줄을 채 읽기도 전에 벌어진 안타까운 사연(?)이 하나가 얽혀 있다. 책을 빌리던 날, 공중 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하다가 잠시 정신을 놓았던지 전화기 위에 책을 그대로 올려 놓고, 나온 것이다.정신을 차려 다시 찾아가 본 부스 안에는 책이라곤 온데간데 없었다.

책을 반납해야 하기에 나는 그 책과 같은 책을 찾기 위해 서점 안을 이잡 듯 뒤졌다. 그러나 출판사와 옮긴이가 같은 그 정장본의 책은 찾기가 쉽지 않아, 당시 국일출판사에서 <침묵의 외침>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같은 책으로 대신 들고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 측에서는 출판사와 옮긴이가 같아야 한다며 책을 받을 수는 없고, 그에 상응하는 돈으로 지불하길 원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은 영원히 나의 수중에 들어오게 됐다.

최근에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오 년 전에 읽을 때도 번역자를 욕하면서 툴툴대고 읽었는데, 여전히 번역은 짜증이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은 여전하다.

때는 1957년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으로 양친이 돌아가시고 멀리 시집간 누나에게서 약간의 생활비를 보조받고 살아가는 가난한 학생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잘못 옮긴 매독 때문에 그 치료를 위해 찾아간 병원의 의사 소개로 한 미국인을 알게 되는데, 일본에서 백과 사전 세일즈를 하고 있는 그 미국인 아래 주인공 나를 비롯하여 모두 세 명의 십대 후반 소년들이 모이게 된다. 이들이 모인 목적은 현재 만들고 있는 중인 보트 한 척을 완성해서 일본이 아닌 먼 세계로 여행을 떠나자는 것이고, 이 목적 아래 한 집에서 공동 생활을 하게 된다.

일본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현재는 혈혈단신의 열일곱 소년 혼혈아 타이거, 일본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에게서 태어난 가난한 한인 부락촌에서 살다가 온 오웅남, 그리고 주인공인 나와 미국인 셀베조프. 이들 사이에 공통점은 단 하나이다. 지금 발디디고 있는 이 세계를 철저하게 타인의 세계로 느끼며 현재의 공간에서 떠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미국인인 셀베조프는 여기서 형식상의 물주(보트는 그의 돈으로 제작에 들어갔으며, 그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공동의 집도 그가 집세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이고, 이 세 소년을 자비로운 휴머니스트인양 보필하고 있지만, 그는 동성애자이며 그것과 연루되어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생기면서 공동 생활 도중에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리게 된다.

그들은 보트의 나머지 제작비를 대기 위해 사업을 구상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돈벌이 일을 벌리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셀베조프가 떠나자 서서히 불행의 그림자가 이들을 덮는다. 타이거가 경찰에 의해 총상을 입어 죽고, 오웅남은 살인을 저지르게 되며, 사형 선고를 언도 받는다.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오웅남. 미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타이거. 어정쩡한 입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본인 주인공 나와 자비로운 평화 주의자인양 이들을 모두 소집했으나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회한(이들이 완성하려 했던 보트는 제작 중단으로 비바람을 맞고 낡아 부서졌다.)만 남겨주고 자기의 본국으로 훌쩍 떠나버린 미국인 셀베조프.

이들 주인공이 시사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1960년 당시에도 세계의 돌아가는 모양새와 인정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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