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색환시행
온다 리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시공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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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쪽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그리 순조로울 리가 없지 않습니까. 불안을 가득 안고 출발해서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어느새 막다른 길이 나오죠. 발이 걸려서 멈췄다가 제자리만 맴돌고 결국에는 팔방이 꽉 막힌 것 같아 절망합니다. 그러다 또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죠.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야 당연히 힘들죠. 하지만 바로 그곳에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실감이 있고, 얼얼한 통증의 실체가 있는 겁니다. 그 현장의 공기의 감촉이라고 할까요? 저는 그 안에 있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510쪽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지내왔지. 제법 괜찮은 인생이었어. 어둠 속에서 수천 명 아니 수만 명의 인생을 간접 체험했으니까. 단 한사람의 인생치고는 호화롭다고 생각하지 않나? 현실이 중요하다 물리적으로도 도움 되는 것과 득을 보는 것이 최고다. 한 번뿐인 인생 후회없이 삽시다, 하고 싶은 일 하며 삽시다. 한데 말야 정말 그렇게 대단한 건가.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그리 훌륭한 건가?  대부분의 사람은 먹기 위해 자손을 남기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힘든 일을 겪어 가며 살아가지. 물론 힘든 일을 겪지 않는 사람도 있어. 그저 빈둥빈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긴 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힘든 일을 겪으며 기타 등등의 한 사람으로 살다가 죽지. 자네들이 충실하게 보내고 싶어 하는 자네들의 인생. 그 안에 진실은 없다고. 사실과 현실은 있어. 생활도 있고 감정도 있지. 가끔은 감동 같은 것도 조금은 있을지 모르지. 한데 진실은 없어. 인생 속에는 진실이 없네. 진실은 허구 속에서만 있네.   


온다 리쿠의 나이는 올해로 62세이다. 이 작품은 그녀가 15년 동안 써온 작품이고, 근래 들어 신작이기도 하다. 온다 리쿠의 작품이 늘 그렇듯, 제목이 왜이럼, 싶은데, 찾아봤더니 빛도 색도 흐린, 희미하고 애매한 세계.라는 뜻이라고. 수평선과 바다가 어렴풋이 녹아드는 풍경처럼, 애매함을 견디는 것이 어른의 자세라는 것을 전하고 싶은게 작가의 생각인 것 같다. 그가 50세 즈음 접어들었을 때의 깨달음과 맥이 닿았을수도 있다. 





특히 이 소설은 밀실 미스터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 내가 좋아하는 밀실 미스터리.) 본래 이 작가는 고풍스러운 저택이라거나 하는 어느 한 공간에 머물면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했었는데, 이번에는 크루즈이다. 배안에서의 이야기. 크루즈 여행을 해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굳이 말하자면 간접경험해보는 재미도 있다. 좀 거추장스러울 듯 하지만, 드레스코드 이런 것도 있는 것 같더라. 

 저주받은 (영화나 연극으로 제작하려 했던 관련자의 상당수가 죽었음. 자살이든 타살이든 사고사든)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의 사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이 책 관련자들을 크루즈에 모이게 한다. 이 소설과 관련된 꽤나 다양한 각계각층의 등장인물들은 각자 이야기를 제작자, 목격자, 혹은 해석자의 위치에서 진술하며 이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작품 창작이란 무엇인지, 세상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나이가 들면서 세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었는지를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으며, 거의 작가의 전신으로 보여지는 여성작가 고즈에가 소설의 전반부에서 후반부까지 주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작가는 재혼을 했는데, 재혼남편도 재혼을 한 것이고, 남편의 첫 아내는 저주받은 <밤이 끝나는 곳>을 각색하려던 작가였으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고즈에와 결혼한 것. 


한마디로 이 소설의 메시지는 진실의 애매함을 견디라는 것, 허구의 힘이란 존재의 애매함과도 같아서 진실을 알려고 애쓸 게 아니라 그 과정을 견뎌라, 인 듯하다.  온다 리쿠도 나이가 들은게지.


651쪽까지 언제 달려가나 싶었는데, 도 끝을 보았기에 기록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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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9-06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온다 리쿠의 책은 추리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 경게가 애매모호해서 개인적으로는 계속해서 찾아 읽지 않는것 같아요^^

icaru 2025-09-06 10:19   좋아요 0 | URL
저도 2014년도까지는 온다 리쿠를 일본 작가 중에 제일 좋아했었는데요~ 그 이후로는 조금은 덜 읽게 된달까 꿀벌과 천둥부터 버퍼링의 시작이었던 것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