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 어쩌면 아주 보잘것없을 수도 있는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절망의 문턱을 넘지 않도록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준다.
이것이 인간인가 - 프리모 레비
뭘 주어먹어도, 아무데나 내놔도, 우리 아이는 건강하다. 라고 생각했던 거.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었을까? 주말에 아이와 친정에 내려갔다 온 게 아이에겐 강행군이었나보다. 다녀온 뒤로, 감기로 비실비실. 문제는 그 먹보가 도통 아무것도 먹으려 들지 않는다는 거.
어제밤도 나는 내내 설치다. 아이와 같이. 열이 심하고 계속 보챈다. 아침에 꼭 소아과에 데려가(게 해)야지! 밖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거.
서럽게 잦아드는 울음을 우는 아이를 등 뒤로 하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문밖 저멀리까지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회사 도착했으나, 10분 지각.
오전은 동동거리며, 분주히 지났는데 오후가 되니, 피곤이 억만겁 몰려온다. 게다가, 아이도 걱정되고, 깡통 이유식을 사다 줄지언정 뭘 먹게 해 주고 싶은데, 해서 퇴근 시간 되면, 바로 집으로 향하고픈데. 남은 일은 누가? 집에 싸들고 가?
굉장히 불운하고,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퇴근 시간이 되었고, 오늘은 남편이 일찍 집에 들어가겠단다. 게다가 저녁이 되니 머리가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한다. 남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불운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