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짓의 사람들
M. 스콧 펙 지음, 윤종석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읽는 도중에 그런 글을 만났다. 저자가 미주리주에서 같은 라이더이자 요가 강사가 라이더들이 묶는 숙소에 남긴 메모를 옮기는 부분이다.
“사납고 나쁜 사람들을 피하기를. 그들은 영혼을 갉아 먹으니.” 라는.
세상에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납고 나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미워하거나 경멸하기에 앞서 피하라는 말. 미워하거나 경멸하다보면, 그런 사람들을 닮아가기 쉽기에.
스콧 팩 박사는 이 책의 전작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도 그런 말을 했었다. 어떤 식으로든 말할 수 없는 고통, 보통 사람들이 겪는 것보다 훨씬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정신적으로는 누구 못지 않게 건강하고 진보된 사람들이라고.
요즘 이 말처럼 나에게 위안을 주는 글을 없었다.
감정적인 고통을 겪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마음을 떨쳐내보자 싶다.
사실, 악하다는 것은 자신들의 고통을 남에게 떠넘김으로써 자신에게 찾아올 죄책감의 고통을 깨끗이 거부하는 행위의 일종이다. 죄책감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죄, 부적절성, 불완정성을 일깨워 주는 고통스러운 인식이니까.
좌절과 혼란과 절망을 고스란히 경험하는 것은 자신감에 차 있고, 편안하고 자신에 만족하는 것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면서 힘든 일과 부딪칠 때, 고통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겪어내고 나면, 정신적으로 부쩍 성장을 이룬다.
완벽와 안정에만에 몰두하고 고통 받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신세를 좀 볶더라도, 참고 받아들여 보자 싶다.
p.53
여기서 잠깐 여덟 살짜리 내 아들의 말을 인용해 보자. 아주 단순하고도 독특한 시각이다.
"아빠, '악(evil)'이라는 말은 '산다(live)'라는 말의 철자를 거꾸로 늘어놓은 거예요."
p.160~161
악이란 '자신의 병적인 자아의 정체를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파괴하는 데 힘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희생양을 찾는 것'이다. 희생양을 찾되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를 찾는다. 악이 힘을 악용할 수 있으려면 우선 행사할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힘을 행사할 영역, 즉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그 지배 관계로 가장 흔히 나타나는 것이 부모 자녀 관계다. 아이들은 약하고 방어력이 없으며 부모와의 관계에 꽉 붙잡혀 있는 존재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얽매여 있다. (...) 그들에게는 빠져나갈 자유도 힘도 없기 때문이다.
p.241
나는 악한 사람들이란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으로 자기 자신을 과대화시키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들은 그 어느 거에도 자기를 굽힐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극단적인 자기 의지와 고집은 정치적 와해로 몰아가게 되어 있다.
p.278
무시무시한 대학살은 물론 아주 사소한 악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묻곤 한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습니까?"
어리석고 무지한 질문이다. 기독교의 대답은 우리의 취향에는 맞지 않을는지 몰라도 그리 모호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포기하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서로에게 행하는 악행들을 막는 데 있어서도 무능하시다. 그분은 다만 끊임없이 우리와 더불어 슬퍼하실 수 있을 뿐이다. 그분은 그분의 모든 지혜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내주시지만,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하는 것을 선택하게 만드실 수 없다.
p.297
힘든 상황이 오래 계속되다 보면 우리 인간은 자연적으로, 거의 불가피하게 퇴행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적 성장은 역류하게 되고 성숙도 온데간데 없어지고 만다. 아주 급속도로 우리는 어린애가 되고 야만인이 된다. 힘든 상황은 곧 스트레스가 된다. 이를테면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만성 스트레스에 접할 때 퇴행하려는 자연스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p.311
징집제야말로 군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게 아니라면 군은 필연적으로 기능 면에서 전문화가 될 분만 아니라 심리 면에서도 점점 더 전문화가 되어갈 것이다. 신선한 공기는 완전히 차단될 것이다. 그것은 계속해서 기존의 자기 가치관을 강화시켜 점점 자기 우물에 갇히게 될 것이고, 그러다가 다시 한 번 고삐가 풀어지는 날이면 베트남에서와 똑같이 피에 굶주려 날뛰게 될 것이다. 징병제는 고통이 뒤따르는 제도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험료 지불과 다를 바 없다. 징집 복무야말로 우리 군의 '왼손'을 건강하게 지켜 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p.336
투표 때 단 한 표가 당락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처럼, 인간 역사의 모든 과정도 고독하고 미천한 한 개인의 마음의 변화에 영향받을 수 있다. (...)
얼마 전 한 저녁 만찬에서 손님 가운데 한 분이 어느 유명한 영화 제작자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그 사람은 역사에 자기 발자취를 남겼어요." 순간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도 다 역사에 자기의 발자취를 남긴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