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 시집의 표지는 강렬하다. 책 속의 내용만큼 눈을 사로 잡는다.


'방부제가 썩는 나라'에 대해서 

'모든 게 다 썩어도 

뻔뻔한 얼굴은 썩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나라에 살고 있다. 뻔뻔한 얼굴들이 너무 많은 나라에 살고 있다. 두리뭉실하게, 그렇다 하더라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에 맞춰 정황과 근거까지 들어 이야기 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며칠 동안 월드컵 축구로 즐거웠다. 실력의 차이가 확연한 데, 강한 애국심?을 운운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밀어 붙일 수는 없다. 누구나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그러기에 만족한다. 공정해야 하는 심판들(아울러 정정당당하게 뛰어야 하는 선수들) 보는 묘미도 있었다. 공정과 정정당당의 말 속에 '어느 정도'라는 의미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도 암묵적으로 용인되어 축구를 하는 또 하나의 세상을 드려다 보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잠깐이지만, 눈으로 덮힌 뻔뻔한 곳도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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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허무, 고통, 슬픔을 겪지 않는 이는 없으리라.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슬픔'이다. 그래서 슬픔을 공부해야 한다.

제주도로 가면서 집어 든 책이다. 그리 많은 책 중에 이 책은 제목과 표지의 뒷 모습 때문이리라. 영원히 알 수 없는 타인, 뒤 모습만 보여도 알 수 없는 너에 대해서 기쁨조차 알 수 없는 데 슬픔까지 익혀야 하다니, 나의 슬픔 또한 감당키 어려운데,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공부까지 하여야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너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네가 너의 결여를 인정하고 그 생채기와 더불어 살아가도록, 그래서 더 이상의 고통이 아닌 '온전한' 사람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다. 

필요한 것은 타인의 슬픔을 공감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관계는 교환을 기반으로 하는데, 우리의 공부가 무용지물이나 비생산적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공부하고 시도해야 한다. 비록 슬픈 공부이고 헛된? 노력일 수도 있지만, 먼저 지금 여기에서 작금의 현실에서 나는 슬프고 아픈가? 를 먼저 묻기 부터 필요하다.

저자가 시, 소설, 영화, 사건 사고 등을 바탕으로 공부한 슬픔에 관한 글이다. 오래 전의 글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슬픔은 변한 게 거의 없는 거 같아 슬플 뿐이다.      

세상 만사가 이렇다.

'입김은 찬 것을 녹이기도 하지만 뜨거운 것을 식게도 한다. 눈물은 당신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당신을 얼어붙게도 한다. 이처럼 사랑이 변한다는 것은, 동일한 것이 어느 날 문든 정반대의 의미를 갖게 되는 일이다.(298쪽)'



*제주도는 하늘과 공기가 달랐다. 신호등 대신 회전교차로가 많았다. 저녁이 되면 금방 밤이 되었다. 도로에는 거의 하하허허호호들만 웃으며 달리고 있었다. 식당의 질이 좋아졌다. 예쁜 카페들이 많았다. 앤트러사이트 한림 커피가 최고였다. 해안도로와 삼나무 숲길은 그저 좋았다. 그러나 제주살기는 한 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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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글은 본인이 실제로 경험한 이야기가 많다. 

저자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쓴 일기 형식의 글을 읽었다. 2년 6개월 동안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엄마의 모든 거에 대한 좌절감과 죄책감과 죄의식 등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어머니의 문병 후 어머니에 관한 글은 오히려 남아 있는 자신의 생명을 붙잡기 위한 행동이지 않았을까 고백하고 있다.    

엄마와 나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최근들어 한번이라도 엄마의 말에 제대로 귀를 기울였을까, 저자가 말한 죽음이란 목소리의 부재라는데... 아직도 난 엄마의 부재의 시간은 상상이 안 된다.

저자는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차라리 미쳐서라고 살아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어머니를 방문하는 것은 어머니와 화해를 하려고, 살아서 남아있는 나를 위한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오는 아침부터 내내 울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고스란이 거기 제자리에 있건만 생각은 멈추어버렸다. 그렇다. 정지해버린 것이다.(145쪽)'  

늙음, 치매, 죽음과 아울러 관계, 생활, 삶을 고민하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부모와 자식, 많은 말은 생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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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를 읽었다. 죽음을 앞두고 장조와 단조의 음계를 하나씩 짚어 가면서 써내려간 악보다.

자신의 삶이지만, 그 과정은 오롯이 자신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것이라 한다.

자신에게 몰입할수록 점점 약해지지만, 타자를 지키려할 때는 나날이 확실해지는 시간이라 한다.

연결되어 있는 우리들,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나를 죽이는 일과 같다. 

나는 아주 많이 느리다.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상에 대해, 한참 후에야 제대로 인식하고 느낀다. 

그래서 주변인들이 특이하고, 생뚱맞는 반응에 놀라기도 하고 의아해 하기도 한다.  

어쩌면 외면하고 싶고, 의식하지 않으려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잊혀지지 않고,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자꾸만 떠오른다. 

맹자 공부하는 학우 중에 스스로 먼저 가 버린 자식을 가진 이가 있다.

특히 이 맘때가 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사는 게 아니라는, 그 분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241쪽, 

아침, 다시 다가온 하루. 또 힘든 일들도 많으리라. 그러나 다시 도래한 하루는 얼마나 숭고한가. 오늘 하루를 정중하게 환대하기.  


273쪽에서 마지막 279쪽, 

건너가기, 넘어가기, 부드럽게 여유 있게 / 사랑의 마음, 감사의 마음, 겸손의 마음, 아름다움의 마음 / 무엇이 문제인가 / 가고 오고 또 가고 / 잘 보살피기 / 적요한 상태 / 내 마음은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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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 가는데, 일어나서는 안 될 이런 재앙이 일어나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깝다. 


이 번에 읽은 글은 제주도에서 알게 된 장정일과 한영인이 주고 받은 문학 관련 편지 글이다.

작가와 평론가의 시각으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 곁들여 세상사와 서로의 기호품과 일상까지, 결론은 차이가 나는 서로를 인정하고 합의와 존중으로 나아가고 있다. 


동일한 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삶을 다르게 하고, 천양지차의 결론에 다다른다. 말의 맥락보다는 표면을 보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진실은 아니고... 하지만, 개개인의 판단이 중요하고 판을 치는데, 본인들이 한 말이나 글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나의 잘못을 세상의 잘못으로 치환하지 않기, 후안무치, 자립 등등의 단어가 남아있다.


동생들과 가을 단풍을 즐기자고 만나서, 가까운 사이에서는 말하면 안되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정의당을 찍었다는, 그건 사표라는, 최악과 차악의 후보자 등, 진보와 보수, 교회와 목사, 종교생활, 교회출석, 헌금 등까지 밤을 새웠다. 각자의 생각에서 그게 아니고, 틀리고가 아니다로 서로 인정만 하면 된다. 그 중 소주 몇 병을 더 마신 이도 있고, 누구는 얼굴까지 붉혀가며 열불을 토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헤어졌다.   


나는 분명히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거지, 점검해 본다. 기준점도 없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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