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 가는데, 일어나서는 안 될 이런 재앙이 일어나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깝다. 


이 번에 읽은 글은 제주도에서 알게 된 장정일과 한영인이 주고 받은 문학 관련 편지 글이다.

작가와 평론가의 시각으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 곁들여 세상사와 서로의 기호품과 일상까지, 결론은 차이가 나는 서로를 인정하고 합의와 존중으로 나아가고 있다. 


동일한 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삶을 다르게 하고, 천양지차의 결론에 다다른다. 말의 맥락보다는 표면을 보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진실은 아니고... 하지만, 개개인의 판단이 중요하고 판을 치는데, 본인들이 한 말이나 글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나의 잘못을 세상의 잘못으로 치환하지 않기, 후안무치, 자립 등등의 단어가 남아있다.


동생들과 가을 단풍을 즐기자고 만나서, 가까운 사이에서는 말하면 안되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정의당을 찍었다는, 그건 사표라는, 최악과 차악의 후보자 등, 진보와 보수, 교회와 목사, 종교생활, 교회출석, 헌금 등까지 밤을 새웠다. 각자의 생각에서 그게 아니고, 틀리고가 아니다로 서로 인정만 하면 된다. 그 중 소주 몇 병을 더 마신 이도 있고, 누구는 얼굴까지 붉혀가며 열불을 토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헤어졌다.   


나는 분명히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거지, 점검해 본다. 기준점도 없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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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본인의 이야기, '단순한 열정'을 읽다. 밝힐 수 없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과정에서의 심리적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다. 동사의 변화를 통하여 현재의 바램과 소멸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마음은 닳아지고, 기억은 사라지고, 몸은 늙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열정'을 읽으며, 오래 전에 '사랑하는 동안'의 기억들을 모아모아 보려 애썼다. 유물처럼 주고 받은 수 백통의 편지와 전화 카드가 흔적으로 어딘가에 남겨 있다.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너와 연관되지 않은 게 없었는데, 모든 것들이 너를 제하고는 의미가 없었는데, 그러한 기억들이 깡그리 사라졌다. 기억이 흐릿해지면서 사랑도 사라졌다. 너무 오래되었다. '쿵쿵'은 의미 다른 '쿵'으로, 이제는 전우애로 다져진 남사친, 여사친 정도로 살고 있는 우리다. 


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동사보다는, 행여, 여전히, 아직도, 하마나, 지제나저제나, 벌써, 아주, 매우, 등등의 수많은 부사들이 그리운 마음에 쌓이고 쌓일 때,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반복하여 읽은 게 떠오른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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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정말로 예쁘다. 책도 이렇게 예뻐야 하는구나... 눈에 띄어 단번에 집어든 책, 사강이다. 

블라블라, 동의하지 않지만, 감정 묘사가 굉장히 탁월하다. 연애할 때가 기억난다. 

계절별로 나눠져 있다. 


*봄: '난 이제 얼굴을 붉히지 않고는 볼 수가 없고, 마음이 아프지 않고는 네가 떠나는 걸 볼 수 없고, 시선을 돌리지 않고는 다른 사람 앞에서 너한테 얘기할 수 없을 거야(71쪽)', 너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봄 

*여름: 지난 몇 십년간 서로를 모른 채 살아올 수 있었다는 걸 믿기지 않는, 오직 지금 이 순간 만이 진실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그러나 행복했지만 두려웠던 찬란한 여름

*가을: '나는 모든 존재가 행복할 숙명이라는 걸 알았다. 행동은 삶이 아니라 어떤 힘을 허비하는 방식, 무기력이다. (195쪽, 랭보)', 서로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삶의 태도가 서로 다름을 알게 되는, 행복을 말하기 위해서는 아프고 고통스런 자잘한 패배들이 디딤돌이 됨을, 삶은 구질하다거나 쪼잔하거나 등등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 진다는 것을 모른척 하면, 그를 기다림이 단지 충만함에서 빈 시간으로 바뀌면, 떠날 때다. 가을이다.  


*누군가는 이런 방식의 삶을 원한다. 

.....무위야말로 우리의 모든 미덕과 그나마 참아줄 수 있는 우리의 모든 자질 - 명상, 한결같은 기분 유지, 게으름, 활발한 정신적, 육체적 소화력 -을 드러낸다는 걸. 먹기, 배설하기, 육체관계 맺기, 햇볕을 쬐며 빈둥거리기. 이보다 더 나은 것 아무것도 없다. 이것과 비교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극히 일부분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숨쉬기, 살아있기, 그것을 인지하기. 이보다 더 나은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 (213쪽)


*무위(無爲):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음. 또는 이룬 것이 없음.

                자연() 그대로 되어 있고, 사람이 힘들여 함이 없음. 


*'숨쉬기, 살아있기, 그것을 인지하기', 이 사이 사이에 정말로 많은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놓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인의, 유의'로 살고 싶다. 
*사족으로 애런 저지는 61년 만에 61호 홈런뿐 아니라 62호로 새역사를 썼고, 스맨파는 댄스를 배우고 싶은 열망으로 진행 중이고, 조만간 쇼미더머니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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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연애와 결혼 생활도 보였다.

나와 완전히 다른 면으로, 끌린 너와의 연애는 그저 즐겁고 환상적이고 두근대고 기다려지고 함께 하고 싶어 안달을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한 후 우리는 서로의 다른 면으로, 수도 없이 만나기만 하면 어떤 상황에 맞닥거리면 전투를 치렀다. 

서로의 다른 면들은 낭만적 연애와 결혼의 일상을 땅과 하늘 만큼의 차이를 만들었다.

연애할 때의 반짝이던 호기심은 결혼과 동시에 사라져 그 부분을 찾으려고, 왜 왜를 반복한 적도 있었다. 

수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적당히 눈을 감기도 하고, 못 들은 척도 하고, 한 박자 늦게 반응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 아주 많이 다른 가족에서 왔고, 우리가 원초적으로 가진 안정, 불안, 회피 등의 심정에서, 사랑받기만을 알고 있던 상태에서, 한 인간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게 아니다를 알게 되었고, 또한 사랑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참을 들을 수 있고, 그렇구나 정도까지 반응할 수 있게 되었고, 차이를 조금이나마 수용할 수 있으면서, "이제 '충분히 좋은' 게 충분히 좋다(267쪽)."까지 이르렀다.

어쩌면, "사실은 우리는 누가 날 돌봐주고 보호해줬으면 좋겠다(194쪽)."라는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그 정도는 알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의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계속 연결되어 같이 세월을 보내고 있다.

세월이 흘러 서로 무디어 지기도 했지만, 이렇게 싸우는 건 아니잖아에서 조율한 점도, 어쨌던 헤어지기는 싫어서일게다.   


*결혼 생활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상황, 우리가 수없이 싸운 일들이 이와 같아서 웃었다.

(인생은 짧고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수히 많은데) 이케아 통로에 서서 어떤 잔을 구입할 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 점점 더 언짢아하고 급기야 다른 쇼핑객들의 주의까지 끄는 건 완전히 시간낭비라는 걸 둘 다 똑같이 의식하면서도, 그들은 이케아 통로에 서서 어떤 잔을 구입할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다뚠다. 20분 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보 같다고 힐난한 뒤 구입할 뜻을 접고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 그들은 말없이 전면 유리만 멀뚱히 본다. (73쪽)


*결혼이라는 새장 안에서 집안 살림, 친인척, 청소 분담, 파티, 식료품 같은 사소한 일로 화를 내면 당연히 '까다롭게' 보인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의 허물이 아니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려는 삶의 속성일 뿐이다. 대개 난감한 것은 결혼이란 제도이지, 관련된 개인들이 아니다.  (281쪽)


*사족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 집어 든 책, 민혜련의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살고 싶은 이유를 따져 봤다. 

아침마다 뉴욕 양키스의 '애런 저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61호 홈런은 언제 나오려나, '저지'가 타석에 들어서면 양키스 팬들은 기립한다. 판사니까..

화요일마다 '스맨파' 보기 위해 목 빠지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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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소설을 오랫만에 다시 읽었다. 일상 속 우리들의 모습이 나온다. 

-흡혈귀는 이름 뿐이고, 생존의 굴욕만 남아있고. 

-사진 속에 남이 있는 내 모습은 낯설다. 나의 모습은 타인만 볼 수 있는 피사체일 뿐. 

-정작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걱정할 게 아니라 자신을 먼저 챙겨야 하는데, 여전히 외부에 시선과 마음이 머물고 있는. 

-어쩌다 인생에서 틈새를 만들어, 아니 틈이 생겨 너가 들어왔을까. 뿌리내려 무성하게 자라난 너로 인해 부서질 정도지만, 어쩌면 부서지지 않도록 너의 뿌리로 버텨주지 않았을까. 

-살면서 한 번쯤은 무너진 적이 있을거다, 하지만 피뢰침이 곳곳에 있음을 알 게 된다. 

-비상구가 없는 곳에서 살고 있다면, 마음이나 인생에서 비상구 하나 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전압으로 전력을 보내려면, 전선의 굵기, 강도, 지상에서의 높이, 건물과의 거리 등을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소통에서 고압선이라면, 조건이 너무 많다. 부모도, 배우자도, 동료와도 맞지 않는 상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그녀앞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다. 만약, 그림자 취급을 당하거나 보이지 않는 대상으로 취급된다면.

-살다보면, 누군가의 삶을 볼 때, 왜라는 의문사가 계속 떠오를 때가 있다. 객관적으로 본다고 하지만,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에서, 그래서 전혀 바람 한 점 들어 올 곳이 아닌데도, 바람이 여기저기 불고 또 불고 있다. 하필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만년설이 쌓인 정상까지 기어올라가 죽은 까닭도 바람이 불어서 일거다(244쪽).'

-인생에서 비상구는 어디에, 바람이 불어오고 불어오면 어떻게, 피뢰침은 무엇이며, 나의 나무는 누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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