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본인의 이야기, '단순한 열정'을 읽다. 밝힐 수 없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과정에서의 심리적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다. 동사의 변화를 통하여 현재의 바램과 소멸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마음은 닳아지고, 기억은 사라지고, 몸은 늙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열정'을 읽으며, 오래 전에 '사랑하는 동안'의 기억들을 모아모아 보려 애썼다. 유물처럼 주고 받은 수 백통의 편지와 전화 카드가 흔적으로 어딘가에 남겨 있다.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너와 연관되지 않은 게 없었는데, 모든 것들이 너를 제하고는 의미가 없었는데, 그러한 기억들이 깡그리 사라졌다. 기억이 흐릿해지면서 사랑도 사라졌다. 너무 오래되었다. '쿵쿵'은 의미 다른 '쿵'으로, 이제는 전우애로 다져진 남사친, 여사친 정도로 살고 있는 우리다.
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동사보다는, 행여, 여전히, 아직도, 하마나, 지제나저제나, 벌써, 아주, 매우, 등등의 수많은 부사들이 그리운 마음에 쌓이고 쌓일 때,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반복하여 읽은 게 떠오른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