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티는 다섯 살 - 잃어버린 시간 할란 엘리슨 걸작선 1
할란 엘리슨 지음, 신해경.이수현 옮김 / 아작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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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사랑이 있고, 치유가 있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담겨있다. 어느 사람에게서 우연히 그 내면의 진심이랄까, 따뜻한 면을 발견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신뢰가 생긴다. 그 이후로는 어떤 이야길 해도 이유가 있겠지. 하게 되는. 그런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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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토크 1
코니 윌리스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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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전투기가 새벽 정찰대에게.

 야간 전투기가 새벽 정찰대에게."


- 영화 '백만 달러의 사랑'



코니 윌리스를 제대로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의 책, 세 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읽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크로스토크>가 나온다는 소식에는 왜 그리도 기대가 되고 기다려지던지. 근래에 부쩍 SF소설에 흥미를 가지게 된데다가 로맨스라고 하니 제대로 취향저격이다 싶었던 것이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크로스토크>는 무엇보다도 각각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인물들로 그려진 표지가 참 인상적이다. 대개 인물만으로 표지를 했을 땐 거부감이 일기 마련인데 보자마자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고 이 책에선 이보다 더 좋은 표지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책을 읽다가도 한 번씩 표지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책을 읽는 중에 남자 주인공의 얼굴을 상상할 때는 확실하게 도움이 되었다. 


SF소설을 많이 접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렇게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책이 참 반갑고도 고맙다. 사람도 여러 부류가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만 가까이 하고 싶기 마련인데 살아가다보면 내가 꺼려하던 부류의 사람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매력을 느끼고 더 깊이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처럼, 요즘의 나에게 SF소설이 그렇게 더 깊이 알아가고픈 매력적인 장르가 된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내 그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기에 웃어 넘기곤 했다. 하지만 코니 윌리스는 그러한 생각을 수면 위로 떠올려 사랑하는 사람과 정서적으로 연결하는 능력을 강화해 주는 EED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텔레파시라는 소재를 통해 내가 웃어 넘긴 상상을 구체화시켜 준다. 


'컴스팬'이라는 휴대폰 회사에 다니는 빨강머리의 매력적인 브리디는 떠오르는 젊은 중역 트랜트와 연애 중인데 애플의 새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새로운 휴대폰 계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트랜트가 정서적인 연결을 더 강화하자며 EED수술을 제안한다. 브리디는 회사 동료인 C.B.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족들 몰래 수술을 받게 되는데 수술에서 깨자마자 C.B.가 이야기했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나게 되고 그 이후로 차츰 목소리의 홍수 속에 빠지고 만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텔레파시는 전적으로 혈통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렇게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던 C.B.를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면서 그를 통해 자신의 사랑이 잘못된 사랑임을 차츰 깨닫게 되고 진실한 사랑에 눈뜨게 된다. 


이 책은 텔레파시 이야기 같지만 넘쳐나는 소통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깨우는 책이다. 하루에도 휴대폰 하나에서 울리는 각종 알람은 내가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고 메신저의 대화들마저도 ㅇㅇ, ㅋㅋ, ㅎㅎ 로 도배되어 있다. 소통은 많은데 깊고 진솔한 이야기는 찾아 보기 힘들고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에 급급한 현실인 것이다. 코니 윌리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C.B.의 입을 통해 피력한다. 


더 많은 소통.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야.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이 소통하고 있거든.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SNS까지. 그런 것들이 귀까지 바로 연결되어 있어. 지금은 너무 많이 연결된 상태야. 특히 막 연애가 시작될 즈음에는 더 적게 소통을 해야 해. 더 많이 소통하는 게 아니라.  (p.41)


왜 '할 말이 있어'로 시작하는 모든 문장은 재난으로 끝나는 걸까? 지금까지의 모든 진화는 정보가 소통되는 걸 막으려는 노력의 역사였어. 변장, 보호색, 오징어가 뿜는 먹물, 암호화된 비밀번호, 기업 비밀, 거짓말까지 말이야. 특히 거짓말이 그 증거지. 사람들이 진짜로 소통하고 싶다면 진실만 말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아. (p.41)


목소리의 홍수 속에서 힘들어하는 브리디에게 C.B.는 고요함과 평온함을 떠올릴 수 있는 장소를 떠올리게 하며 방어벽을 세우게 한다.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장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장소가 아닐까. 사람들은 외로움을 SNS에서 달래고 의미없는 대화의 메신저에서 달래지만 자신만이 안고 있는 외로움과 공허함은 무엇으로도 달랠 수가 없다. 그러한 것은 더 깊은 외로움 속에서 홀로 그 실체와 마주할 때에야 자유할 수 있는 것이란 것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사람들의 생각은 불쾌한 모습을 띠는 경향이 있지. 사람들은 야비하고, 악의적이고, 탐욕스럽고, 비열하고, 교활하고, 잔인한 면을 갖고 있어. (p.372)


사람들의 생각까지 듣겠다는 욕심으로 정말 컴스팬에서 계발하고자 했던 휴대폰이 출시된다면 어떻게 될까? 내 생각만으로도 복잡하고 고단한 삶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까지 들어오게 되면서 더 힘겨운 삶이 되지 않을까.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긴 하지만 많은 연인들이 서로에게 더이상 궁금할 게 없어지고 신비감이 없어지면서 금방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사랑의 생각들을 보내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일도 빈번히 생길 것이다. 


주인공들처럼 텔레파시 능력은 없지만 매일의 일상을 무방비 상태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 목소리들을 피해 나 혼자 오롯이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오래 전에 덮은 노트북을 다시 펼치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을 벗어나 예전처럼 혼자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는 시간을 다시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코니 윌리스는 목소리를 피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좋은 책을 읽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도서관에서 주고받는 브리디와 C.B.의 대화를 통해 어렵게만 생각하는 문제의 답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과 좋은 책의 힘을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완벽한 소통을 꿈꾸는 연인들을 위해 코니 윌리스가 선사하는 아일랜드식 키스 이야기>라는 타이틀을 만났을 때, 도대체 아일랜드식 키스는 어떤 키스일까 궁금했었는데 주인공 브리디의 표현을 빌려, "세상이 부서져 내리는" 키스라고만 말해 두련다.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고 모든 연인들이 꿈꾸는 그런 키스가 아닐까 싶다. 궁금한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1권에서는 매력적인 수다쟁이 코니 윌리스를 만날 수 있다면, 2권에서는 완벽한 이야기꾼 코니 윌리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SF소설에 한 발짝 더 나아가게 해준 아작 출판사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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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한눈물 2016-11-19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군요. SF는 낯설고 생경해서 도통 손이 가지 않던데...
님 리뷰를 보니 막 읽고 싶은 마음이 샘솟네요! 잘 읽고 갑니다^^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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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를 '바깥'이라고 달기로 했다. 큰 흐름의 바깥, 스포트라이트의 바깥이라는 의미려니 여겨졌으면 좋겠다. 주류 혹은 집단 가치의 울타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도전적 의미의 아웃사이더도, 세勢에 쫓겨 변두리로 밀려난 주변인도 이 마당의 손님이 될 수 있다. 대개는 사람이겠지만, 공간이나 잊힌 시간, 또 그 시간 속의 이야기도 초대될 것이다.  <'책머리에' 중에서>
  
어느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서 별 10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책이라 평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은 나도 그 평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은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좋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펴 든 책이었고 꽉차게 마음에 드는 책이다.
 
이 책은 최윤필 기자가 한국일보에 연재한 글들을 묶은 책이다. 18개월 남짓 목수일을 배우다 신문사에 재입사를 하게 되었는데 매 주 한 면씩 써야 한다는 조건으로 복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아 부담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그는 스스로를 중심이 아닌 바깥인으로 생각하고 신문사를 그만두었던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어쩌면 관심이 없는)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최윤필 기자가 아니었음 우리가 관심조차 갖지 못했을 대상들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의미가 깊다. 복합상영관의 등장으로 영화관 출입과는 더욱 멀어진 노인들을 위해 고전극장을 사수하려는 젊은 여성대표. 퇴역마 다이와 아라지. 농촌마을을 다니며 마을의 사람들을 배우와 스텝으로 영화를 찍는 떠돌이 영화감독, 연극계의 주연이었지만 하루 아침에 해고당해 택배일을 하는 연극배우, 국가대표지만 박태환 선수의 훈련 파트너로 알려진 수영선수, 절판되는 책, 광고계의 가려진 얼굴 손모델, 프리마 발레리나가 아닌 군무 발레리나, 잊혀져 가는 우표, 잊혀진 가수........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람, 풍경, 말, 우표..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고 우리 주위의 바깥에 머무르고 있는 모든 대상이 다 주인공이다.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을, 또는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아주 낯익고 친숙한 모습들이다.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 또는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중매체가 주목하는 일인자라는 스포트라이트에만  집중하지만 우리가 속한 세상은 일인자들의 세상이 아니라  일인자든 이인자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우리들의 세상인 것을 깨닫는다.    

책을 읽다보면 내용에 집중하게 되는 책이 있는가하면, 주인공에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간혹 책을 쓴 사람에게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올해 들어서는 『아홉번 째 집 두번째 대문』의 임영태님이 그랬고 이 책의 최윤필 기자님이 그렇다. 이 책을 읽을 땐 소재와 접근이 신선하다 느껴져 내용에 집중하며  읽었지만 책을 읽을수록 이 대상들을 만난,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최윤필 기자에게 집중하게 되고 그가 궁금해진다. 아주 깔끔한 문장들, 자신은 뒤로 물러서고 그들을 빛나게 하는 태도,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 참 멋진 사람이다. 이 사람이 쓰는 글은 신문이든 책이든 챙겨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참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괜찮은 책 한 권 읽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 추천하고픈 책. 내가 사는 세상에는 힘들지만 이렇게 올곧게 자신의 삶을 날마다 발전시켜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거 하나 깨닫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할테니 언제라도 한번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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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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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꼭 만나야 할 사람,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을 삶의 고비고비마다 경험했었다. 늘 함께 했으면 하는 그 소중한 사람들은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고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내 삶에서 자신들의 역할이 다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그렇게 내 삶의 영역에서 사라져 갔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내 삶에 누군가가 나타나면 그 만남의 끈을 영원으로 생각지 않는 여유가 생겼다. 언젠가는 헤어질 만남인 것을 알기에 끝까지 붙들어두고픈 욕심을, 내려놓는 법도 알게 된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내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이기에

그저 너와 내가 만난 것, 그 자체가 감사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인생에서 꼭 만나야 할 사람... 주인공 '마리오 히메네스'에게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그의 인생에서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었을까.

 

어부로 평생을 살아갔을 마리오는 고기잡이에 정을 못붙인다는 이유로 우연히 우편배달부라는 직업을 갖게 되고 마리오가 맡은 구역의 수신인이 오직 한 사람, 시인 '파블로 네루다' 뿐인 운명을 만나게 된다. 네루다와의 만남으로 인해 마리오의 삶은 점차 변화를 겪게 되고 여자 앞에서는 부끄러워 말 한마디 못하던 그가 네루다의 시를 거의 외우다시피하여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제법 그럴싸한 시적 언어를 구사하여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고 노동자 모임에서는 시낭송을 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한다.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사람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 그것처럼 멋진 만남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인 네루다와 진심어린 절친이 되어 가는 그 과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웃게도 하고 애절하게 만들기도 하고 마리오의 입장에서 네루다를 존경어린 눈빛으로 보게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파리에서 머무르던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편지를 보내어 녹음기를 가지고 자신이 머물렀던 섬, 이슬라 네그라의 모든 소리를 녹음해 달라고 하는 부분. 네루다의 편지에선 마리오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어 내가 마리오인 것 마냥 기분이 좋았고 마리오가 새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까지 섬세하게 하나씩 녹음하는 부분들은 정말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감동이다.

 

또 한 가지, 네루다를 가까이 하면서 마리오의 메타포(시적비유)는 일취월장하게 되고 여자 앞에선 말도 못하던 마리오가 그 메타포로 아름다운 아가씨 베아트리스의 마음을 빼앗았으니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어쩌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것이다. 여자 때문에 마음이 불타 죽어가던 한 남자를 살렸으니 말이다.

 

하룻밤, 그리고 단숨에 읽어버린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변화되어가는 마리오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고 네루다와 친해지는 과정, 사랑하는 여자 베아트리스와의 이야기. 조금 야한 묘사도 많지만 아주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어서 그마저도 재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훈훈한 감동들.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며 그 만남으로 인해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인생에 빛이 되어 가는 그 과정이 참 소중하게 다가온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이 내 인생의 꼭지점마다 존재했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되는 시간들이어서 의미가 깊다.

 

"네가 뭘 만들었는지 아니, 마리오?"
"무엇을 만들었죠?"
"메타포."
"하지만 소용없어요. 순전히 우연히 튀어나왔을 뿐인걸요."
"우연이 아닌 이미지는 없어."
마리오는 손을 가슴에 댔다.

혀까지 치고 올라와 이빨사이로 폭발하려는 환장할 심장 박동을 조절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리오는 걸음을 멈추고 고귀한 수신인의 코앞에 불경스러운 손가락을 바짝 들이대며 말하였다.
"선생님은 온 세상이, 즉 바람, 바다, 나무, 산, 불, 동물, 집, 사막, 비……."
"…… 이제 그만 '기타 등등'이라고 해도 되네."
"……기타 등등! 선생님은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루다의 입은 턱이 빠질 듯이 떡 벌어졌다.
"제 질문이 어리석었나요?"
"아닐세, 아니야."

 

<p.31>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영화화한 '일 포스티노'도 꽤 잘 만들어진 영화이니 함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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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예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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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님의 작품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를 처음 접하고서 그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고 유쾌한 문체와 독특한 그의 소설 전개가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신선했기에 그의 이름 석자는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 이후에 만난 박민규님의 작품은 <제 9회 황순원 문학상 작품집의 수상작 [근처]>. 박민규님다운 유쾌한 문체가 이어지리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전혀 다른 문체, 전혀 낯선 모습으로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것 또한 무척 매력적이었다. 전혀 새로운 모습의 작가라... 그래서 더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번째 작품으로 만나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떤 예상조차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를 대할지 사뭇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펴들었다.

 

책을 읽으며 한숨을 쉬기를 여러번, 내가 뱉어낸 탄식들은 아... 음... 휴... 역시 박민규님의 또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내용 또한 강렬하다. 끝맺음은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카멜레온같은 작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들의 열아홉, 스무살의 젊은 초상화. 하지만 어느 소설에나 으례히 나오는 미인은 이 소설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한다. 자기 의도와는 무관하게 못생긴 모습으로 태어나 세상의 무관심과 조롱, 멸시로 인한 상처가 가득한 한 여자와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과 그들의 사랑을 이어주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다. 어릴 때의 상처 또는 트라우마가 우리의 사랑이라는 감정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는 것... 상처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그 상처가 사랑을 더욱 깊게도 또는 더욱 깊이 파고들지 못하게도 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잘생긴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젊은 날을 보내고 끝내 버림받은, 못생긴 엄마를 둔 주인공. 그는 그런 어머니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 마음이 고스란히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주 못생긴 여자에게 전이된다. 읽는 이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주인공이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 여자를 사랑하고 그녀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엄마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길이고 자신이 조금이라도 엄마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엄마의 불쌍한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픈 마음이 곧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백지연의 <피플>에 김c가 출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생김새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현 시대의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잘생기고 이쁜 것만을 손꼽는 것은 단지 대중매체로 인한 유행일 뿐이라고 피력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유행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깊게 뿌리박은 이념이 되지 않았을까. 몇 년전까지만 해도 쉬쉬하던 성형수술도 이제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고등학생들의 졸업 선물이 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내가 아는 누군가는 자기의 이상형이 착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예상외라고 했더니 웃으며 하는 말이 가관이다. 얼굴이 이쁘면 착한 거고 몸매가 이뻐야 착한 거고 나이가 어려야 착한 거라는 거다. 착하다는 의미또한 공공연하게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그렇게 이쁜 여자, 잘생긴 남자만을 우상시하는 이러한 세대에 못생긴 사람들이 갈 곳이 없단 말인가. 소설처럼 그렇게 첫 눈에 심장이 멎을 정도로 마음에 콕 박혀서 사랑하게 되는 일은 드물지 않은가.

 

박민규님은 길고 긴 연서를 쓰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이야기하면서 인류는 단 한번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해 주지 않기에 이 소설은 비현실적인 소설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리고 시원하게 한마디 한다.

"저는 아름다움에 대해, 눈에만 보이는 이 아름다움의 시시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인간의 얼굴에 대해 말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으며 참 많은 공감을 했다. <작가의 말> 일부분을 이곳에 옮겨 적으며  그의 생각에 강한 공감을 표하며 힘을 싣고자 한다.

 

우리의 손에 들려진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어떤 독재자보다도, 권력을 쥔 그 누구보다도...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로 대책 없이 강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부끄러워하길 부러워하길 바라왔고, 또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손길이 닿을 수 있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을 밝혀가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세계는 당신과 나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상상에 따라 우리를 불편하게 해온 모든 진리는 언젠가 곧 시시한 것으로 전락할 거라 저는 믿습니다.

 

저는 당신이 스스로의 이야기에서 성공한 작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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