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진득이 앉아있게 하는 접착제로

클래식만 나오는 제1FM 라디오를 틀어놓기 좋아하는데

가사가 들리는 가요나

리듬이 펑펑 살아있는 외국노래가 나오는 채널은

이때 만큼은 정신 집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라디오 채널을 틀자마자

뮤지컬 <레 미제라블> 중의 한 곡이 나온다.

에잇~

영화로도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도 곧 상영할거라는데

난 뮤지컬만 세번 본 사람

세번에 다 사연이 있는지라

정신 집중은 커녕

추억이 추억을 부른다.

처음 본 것은 당시 하이텔 동호회에서 알게 된 사람과 예술의 전당에서,

(하이텔 동호회, 이것부터가 추억의 이름 아닌가)

두번 째 본것은 영국에서 혼자,

세번 째 본것도 영국에서, 누구랑 함께 볼 예정이었으나 바람 맞아 혼자 봤다.

세번 모두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 눈물 글썽이며 봤으니

아마 영국에 더 오래 있었으면 세번에서 그치지 않았을지 모른다.

연중 무휴, 수년 째 계속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중 하나이니까.

 

이 글을 쓰는 사이 프로그램이 바뀌었다.

지금부터는 되도록 나 모르는, 자극하지 않는 음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뭐, 중세 그레고리안 챈트 같은거...

 

 

 

 

P> 

 

이건 세시간이 넘는 이 뮤지컬의 마지막 무대.

 

 

 

 

 

아무 말도 안하지만, 노래를 끝내고 난 후 수십초 동안 이 사람의 표정에서 참 여러가지를 읽는다.

일생에 한번이라도 이런 감동과 희열을 느껴볼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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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2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2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anne_Hebuterne 2012-12-1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그렇게 부른 추억은 추억일 뿐인지도 몰라요. 내가 마음대로 위조하고 변조하고 필요할 때 불러내는 마약. 이렇게 말한다면 오히려 제가 추억을 과대평가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측만 난무하는 댓글을 남겨 죄송하지만 전 원래 이렇습니다.

hnine 2012-12-12 13:11   좋아요 0 | URL
에뷔테른님, 추억에 대해, 추억하는 것에 대해 애증이 있으신것 같아요. '애'와 '증'...
추억으로부터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탄성회복력' (이거, 학교 다닐때 물리시간에 배운거 같은데 ^^) 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Jeanne_Hebuterne 2012-12-12 18:05   좋아요 0 | URL
빙고! 전 요즘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가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금요일엔 비가 내린다니 감기 조심하시길 바래요!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처럼, 뒤돌아보지 않는 대신 바람소리가 들리는 나날들.

hnine 2012-12-12 21:47   좋아요 0 | URL
전 운동에너지 다 떨어졌어요. 먹은게 다 어디로 가는지 ㅋㅋ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참 묘하고 알쏭달쏭한 영화였어요. 나 또 웃어야 할 영화를 혼자 심각하게 본거야? 영화 다 보고 나서 그랬었지요 ^^

감기 절대 안 걸리겠어요! 에뷔테른님도 절대!

2012-12-13 0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3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4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쩌다 이 시집을 발견하였다.

2011년에 나왔는데 2012년도 다 지나가는 무렵에서.

 

시인의 이름 한 영 옥.

이름이 낯설지 않아 얼른 책꽂이의 시집 꽂아두는 칸에 가서 확인해보았다.

맞네, 그 시인.

 

1979년이면 내가 중학교 1학년때.

뭐 읽을 거리 없나 집안 여기 저기 뒤지고 다니다가 아빠의 책꽂이에서 발견한 시집.

제목의 한자도 어떻게 읽는지 더듬거렸던 시집.

 

 

 

 



 

 

<적극적 마술의 노래> 라고 읽어내고도 이게 무슨 소리야? 갸우뚱 했었지.

표지를 넘겨보니 저자가 아빠께 직접 드린 저자증정본이었다.

 

 

 


지금처럼 책이 많지 않던 시절. 이거 저거 가리지 않고 읽던 나는 이 아리송한 제목의 시집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 중 몇편의 시들은 마구 공감이 가는 것이다.

한번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읽고 또 읽고.

읽을수록 더 좋아졌다.

 

 

 

 

 

 

 

 

 

 

 

그 당시 책 읽는 것 다음으로 편지쓰는 것을 좋아하던 중학교 1학년 단발머리 나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낼때 여기 있는 시들을 함께 적어보냈는데,

누구에게 어떤 시를 적어보냈는지 이렇게 적어두었더랬다.

 

 

 

 

오랜만에 누렇게 바래고 표지마저 뒤틀린 이 시집을 다시 읽어본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이사도 여러번 다녔는데,

시간과 공간의 변화 속에서도 계속 나를 따라와준, 아니, 내가 데리고 다닌 책들중에 끼여있으니

바로 한달전에 읽은 책도 읽고나면 바로 중고책으로 처분해버리는 요즘 나를 생각하면

대단한 인연이구나 싶다.

 

1979년, 열 네살의 나.

2012년, 마흔 일곱의 나.

 

할 말이 없다.

가슴이 먹먹할 뿐.

 

 

 

 

 

 

어둠지는 들판에서

 

 

 

 

 

한 그루 버릴 나무쯤으로

어둠지는 들판에 심은 사랑

 

 

살가운 바람 속에

살갑게 키울 재미는 없는 나무

 

 

뿌리를 곧잘 얼리는

독난 나무 주인 나는,

 

 

심심할 때마다 더욱 신명난

그 나무의 임자건만

 

 

시정의 뜨락까지는

너를 못 불러 들이는

이름만 좋은 주인

 

 

어둠에 이마를 찧는 네 곁에서

어지럽게 맴이나 도는

속수무책의 주인이지만

 

 

누가 너를 앞세워 데려 갈 땐

들판의 어둠을 쩍 가를

칼날 하나는 갈아 두었다.

 

 

 

- 한영옥 <적극적 마술의 노래>중 '어둠지는 들판에서'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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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언제부터 책꽂이에 꽂혀있었는지 가물가물한 책.

읽을 책 똑 떨어질 땐 예전엔 집에 있는 율리시스 무어를 읽고는 했는데

요 며칠은 단행본 아이책들을 훑어보고 있는 중이다.

천사인지 누군지, 내려오기보다는 뚝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저 표지 그림 만큼 책이 재미있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게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다가 길을 잃어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진 천사. 나는 법을 잊어버려 다시 돌아가지를 못하고 있다. 날개가 달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책에 등장하는 두 남자 아이들, 베리와 리네와 키도 비슷하고 겉모습도 비슷하여 금방 친구가 된다. 하지만 천사는 하늘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베리와 리네, 그리고 동네 사탕가게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천사가 다시 나는 법을 배워 하늘로 돌아가게 해준다는 내용.

천사의 모습은 천사의 존재를 믿는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설정이 이 때묻은 어른의 눈에는 너무 빤한 생각같아 별로여서 아쉽다. 천사가 하늘로 나는 법을 다시 알아내는 과정도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마음을 꽉 채움으로써 가능하다는 얘기에도 피식 웃음만 날리고 마는 이 재미없는 어른 독자라니.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꿈을 가져야 한다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책들은 정말 수도 없이 많다.

책마다 너무 강조를 하니 오히려 그것이 귀따갑게 들리지는 않을까? 듣기 싫어지지 않을까? 아무 효과도 못내고 있지는 않나? ---> 어른 생각이다.

아이에게 이 책 어디서 났냐고 그랬더니, 한참 전에 엄마가 사줬다는데, 난 전혀 기억이 안난다.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고 내가 골라서 책을 사주는 예가 거의 없는데, 어떻게 무슨 맘 먹고 저 책을 골라서 사주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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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췰러 (Elisabeth Zðller). 독일 작가이다. 원제를 보니 Auf Wiedersehen, Mama. 그러니까 우리말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번역한 것.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며칠 전에 읽은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에서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플로라는 열한살의 여자 아이로, 엄마가 암에 걸려 죽음을 눈 앞에 두게 되자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병원에서도 퇴원하여 집에 거의 하루 종일 누워있는 엄마에게 자기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수국을 꽂아두기도 하고, 엄마 옆에 함께 누워 있기도 한다. 그러면 엄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엄마한테 물어 봤어. 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거냐고. 그랬더니 엄마는, 모든 사람은 다 이야기로 만들어지고 이 세상도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어.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 안에 살고 있고, 그것이 바로 삶이라고 말이야." (149쪽)

그렇구나. 사랑하는 사람 하고는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아야 겠구나. 마음 속에 담아두고만 있지 말고.

플로라의 엄마는 플로라에게 말한다.

"내가 이 곳에 없더라도 내 이야기는 남아 있겠지? 그 이야기가 바로 나야." (161쪽)

벌써 오래 전부터 집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인데 흔한 소재에다가 제목에서 벌써 어떤 내용일지 다 짐작이 가기에 굳이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침 주문한 책이 오기까지 읽을 책이 없어서 빼어든 책인데, 의외의 감동이구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데, 어릴 때, 어린이로서의 느낌을 잊지 않고 참 잘 묘사했다.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는 글이 5월 14일에 이르러서는 유난히 짧다.

5월 14일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주 편안하게.

"안녕!"

엄마는 우리를 한번 둘러보고 말했다.

"엄마, 안녕!"

필립과 나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172쪽)

엄마는 어디에선가 또다른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믿는 아이.

엄마가 아픈 동안 어린 아이이면서도 엄마를 위해 뭔가 해줄것이 없을까 생각하고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아이.

병상에서조차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던 엄마를 기억하는 그 아이가 자라서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었나보다. 그 엄마는 그렇게 아이 마음에 계속 살아있었나보다.

 

 

- 2012.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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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아이들에게 재미있다고 자신있게 권할 만한 책을 찾다가 고른 책이다.

외국 작가들의 책들이 일단 재미있고 독특한 이야기라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면, 우리 나라 작가의 책들은 재미보다 감동, 교훈, 문학성 등이 더 돋보이는 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페이지를 넘겨가며 보는 책은 우리 나라 책보다는 외국 작품들인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권장도서 목록이 있어서 아이들이 직접 책을 고르기보다는 권장 목록 중에서 읽은 책 체크해가며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은 재미가 좀 덜하더라도 우리 나라 책들을 읽게 하는데는 한 몫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자발적으로 책을 골라 읽게 할때도 지금처럼 우리 나라 작가들의 작품들이 읽힐까?

 

'정은숙' 이라는 작가는 <살리에르, 웃다> 라는 책에 실린 작품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 받은 작가에 대한 좋은 인상 플러스, 추리소설 식의 구성이라니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되어 구입한 책이다.

읽고난 느낌은, 아이들은 재미있게 읽을지 몰라도 어른인 내가 보기엔 많이 엉성하고 부자연스런 구성에 적잖이 실망했다는 것이다.

 

※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 있음.

- 31쪽: 초등학생 조카에게 금은방에 가서 금으로 된 돌반지 사오라는 심부름 시키는 이모.

 

- 95쪽: 유괴될뻔 했던 아이가 연극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 설정, 그래서 갑작스레 연극 팜플렛을 이야기에 등장시키고 그 팜플렛에 나와있는 극단 대표가 입고 있는 옷에 용의자로 생각되는 사람이 입은 옷과 같은 로고가 새겨져 있다고 하여 범인 단서를 만들어낸다. 어딘지 억지스럽다.

 

- 102쪽: 아이들이 서울로 극단 대표를 찾아가기로 하는데 누군가 같이 가 줄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이모에게 부탁해보기로 하는데 이모가 마침 서울에 만화가모임이 있어서 가려던 참이라고 한다. 우연의 일치가 너무 자주 나온다.

 

- 154쪽: 사건에 가담한 한 사람이 아이들의 요구에 너무나 순순히 응한다. 아이들을 묶었던 끈을 풀러주고, 화장실에 가겠다는 아이를 그냥 보내준다. 결국 아이들의 설득에 넘어가고 아이들에게 거꾸로 공격당하여 끈으로 결박당한다.

 

- 167쪽: 노철구라고 소개되었던 남자 이름이 갑자기 노철웅으로 바뀐 것은 오자?

 

- 초콜릿 속에 다이아몬드를 숨기려면 초콜릿을 녹여서 그 안에 다이아몬드를 넣고 다시 굳히는 작업을 해야했을텐데 여기 나오는 인물이 그런 작업을 할만큼 세심하고 치밀한 인물이었던가?

 

작가도 알고 있을 헛점인지, 아니면 작가는 예상 못했던 점인지 궁금해진다.

역시, 읽는 것은 쉽다. 작가가 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완성하고 재미까지 주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하면.

 

 

 

 

 

- 2012.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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