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여행
가쿠다 미츠요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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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 부터 어딘지 책의 제목에서 언뜻 연상되는 분위기가 아니다. 파란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진 바탕색에, 별과 달이 반짝거리고 흰 돛단배가 떠다니고 있는, 그리고 스크래치 형태로 쓰여진 납치여행이라는 노란색 제목에는 장난끼마저 묻어있다.

현재 일본에서 주목받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라는 가쿠다 미쓰요가 1998년에 낸 소설인데 우리 나라에선 2005년에 번역되어 나왔다.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함께 사는 소녀 '하루'.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날 하루는 집 앞에서 납치당한다. 납치범은? 그녀의 아빠. 지금 너를 아빠가 유괴하는 중이라는 아빠의 말에 순순히 동의하고 따라나서는 하루. 그런 아빠와 특별한 목적지 없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며칠을 보내고 다시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결코 넉넉치 못한 아빠는 이 납치여행 동안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과 신나는 볼거리, 어느 것 하나 딸 하루에게 해주지 못한다. 하루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저 오랜만에 아빠랑 지내는 시간들에 만족하려 애쓰며 아빠가 가자는대로 하자는대로 따라다닌다. 결국 여행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를 향해 튀어나온 말은, "나는 아빠처럼 형편없는 어른이 될거야. 부모랍시고 자기 멋대로 끌고 다니질 않나, 그렇다고 제대로 돌봐주기를 하나 말이야. 맛있는 걸 코 앞까지 들이밀었다가 확 빼앗아버리고, 자 이제 끝, 하는 식으로 당하고만 있는데 어떻게 훌륭한 어른이 되겠어? 자기 좋을 대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나 하고. 아빠 때문이야! 이게 다 아빠 때문이라니까!" 울음을 참으며 던진 하루의 말 속엔 아빠와의 여행에서 기대했던 것들이 실망과 아쉬움으로 끝나고 마는 것에 대한 야속함, 서운함이 담겨 있다. 여행하는 내내 엄마, 아빠, 아이들 이렇게 한 가족이 함께 여행하는 것을 볼 때 마다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하루. 이 아이가 바란 것은 자기도 그런 그림 속의 한 사람이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하는 시간.

납치여행이라는 구실로라도 딸과 함께 하고 싶었던 아빠.
초라하고 꿰제제하기 그지없는 아빠와 함께 다니는 것이 창피하면서도 안스러워하는 아이.

납치여행은 끝나고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고 아빠는 또 어딘가로 떠나가지만, 아빠는 어딘가에서 계속 아이를 지켜보겠지. 아이는 어딘가에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을 아빠를 가끔은 떠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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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 2007-06-29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보는 책인데, 짠한 느낌일 거 같아요...배경좋은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런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근데 그 뒤엔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런 생각 자체가 열심히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을 배신하는 것만 같아서...부모와 자식 관계...서로 어떤 모습일지라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가슴에 담을 수 밖에 없는 사이인 거 같아요.

hnine 2007-06-29 13:42   좋아요 0 | URL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번씩 해보나봐요. 저도 어릴 때 그런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부모 노릇 하기가 쉽지 않네요.
 
꽃밥 - 제133회 나오키상 수상작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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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쯤,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는지, 갑자기 '죽음'이란 것이 어떤 것일까, 죽으면 도대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빠져 들어 밤에 잠도 못자던 때가 있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최초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던 그 때가 다시 생각났다.

독특한 책이다. 여섯 편의 글 모두 다른 이야기인데, 죽음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전생에 대한 이야기인 '꽃밥'. 꽃밥은 꽃으로 지은 밥이라는 뜻이다.  일본의 한국인 소년 정호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 '도까비의 밤', 이 책에서 제일 몽환적이고 신기했던 글은 '요정생물'이었다. 결국 자신을 코인 속에 버려진 아기에 비유하려고 처음부터 로커에 아기를 버리고 간다는 엄마들 얘기를 복선처럼 꺼냈다고 생각된다. 아픈 할머니, 몸이 성치 못한 히스테리적 아빠, 집을 나간 엄마, 그러다가 커서 원치 않는 결혼, 서민적인 삶을 이어나가는 주인공 세스코. 그러는 중에도 잠시나마 세스코를 기쁘게 해주는 것은 삼십년 전 요정생물에 대한 기억이다. '참 묘한 세상'에서는 죽은 삼촌의 장례식날, 삼촌과 가깝게 지내던 여자 셋이 모이자 영구차가 비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내용인데, 그 상황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참지 못하게 그리고 있다. 정말 영혼이란 있는 것일까. '오쿠린바'는 이승과 저승의 기로에 서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말을 해줌으로써 편안히 저 세상으로 가게해주는 사람을 말하는데 세상을 순화하는 길과 연결시킨 끝맺음이 인상적이다. '얼음 나비' 역시 죽어서 나비가 되는 외로운 영혼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상과 같이 여섯 개의 이야기들이 모두 묘한 얘기들이다. 하지만 공포스런 묘함이라기 보다는 어딘가 애잔한 여운을 주는 이야기들.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일본 문화나 종교는 다신적(多神的)이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신표니, 부적 같은 것들이 우리 나라보다 훨씬 많이 통용되는 나라이다 보니, 이런 소재의 소설 역시 참 일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카와 미나토...처음 접한 작가인데 1963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여섯 편의 얘기가 모두 오사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이 소설로 2003년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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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6-2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죽음을 수월하게 받아들일수 있는 사람은...보통 사람은 아니겠지요. 저는 너무나 보통인 사람 ^ ^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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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읽은 '프루스트 클럽'과 함께 출판사 바람의 아이들의 반올림 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이 경혜 작가는 원주의 토지문화관에 머물고 있던 2001년 어느 날 한 소년의 죽음의 소식을 접하게 되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후기에 밝히고 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중3 소년 재진의 일기장 첫 장에 쓰여진 글이다. 이 책을 처음 대하고 제목에 우선 섬찟해진 것이 사실이다. 순진하고 착한 소년 재진. 그늘 없고 천성적으로 남을 배려해 줄 줄 아는 심성을 가진 고운 소년. 이 소설은 그 친구를 사고로 잃은 후 그 죽음의 슬픔과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단짝 친구 유미의 이야기 체로 되어 있으며, 글의 중반부 부터는 나중에 발견된 재진의 일기장을 소개하고 재진을 회상하는 유미의 독백 형식으로 이어진다.

평범한 이야기가 무리없이 펼쳐져서 무난하게 읽히지만, 그러기에 이 책만에서 느껴지는 재미나 감동 같은 것 없이 이야기가 끝나는 감이 아쉽다. 친구의 사고사로 인한 슬픔과 충격을 묘사하는 것 외에, 특별히 다른 이슈가 없다고 할까. 죽음은 어느 세대에게나 슬픔과 충격이 아닐 수 없는 것 같다. 작가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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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파더 스텝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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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일본 소설에 최근에야  발을 들여 놓은 나로서는 이 책이 내가 읽은 그녀의 첫 소설이 되겠다. 우선, 설정이 재미있다. 도둑이 직업이 남자와 부모에게 버림받은, 버림받은 것 맞다, 저자가 그리 비참하게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중학생 남자 쌍둥이 형제. 쌍둥이 형제의 반 협박에 의해 도둑이 직업인 이 남자는 그들의 아버지가 되어주기로 하는 것이다. 즉 스텝파더 (stepfather)가 된 것이다. 일곱 편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엔 생판 모르는 개구장이 남자 아이들의 아버지 행세를 해야한다는 것을 매우 귀찮아 하지만, 나중엔 정이 들어 그들의 진짜 부모가 나타나 헤어지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을 상상하고 못마시는 술을 퍼마시며 괴로와하는 남자. 친자식이 아니더라도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바꿔 놓는 것인가. 전직 변호사이면서 이 도둑과 동업자 역할을 하는 그의 아버지가 말한다. 부모가 없어도 아이들은 자라지만 오히려 부모는 자라지 않는다고 (127쪽).
여섯 편의 연작 모두 유쾌한 필치로 그려져있지만 아마도 저자는 상식적이고 틀에 박힌 사고방식보다는, 사람들이 지나치기 쉬운, 흔히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틀렸다 말해버리고 마는 그런 이 사회의 계층, 현상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쉽게 틀렸다, 옳지 않다 라고 말해버리지는 않는 사람인 것 같다. 도둑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그렇고, 이 도둑이 상대하는 대상들이란 모두 가진 것을 도둑질당해도 될만한 그럴듯한 이유를 나름대로 다 달아놓으려고 한 것을 봐도 그렇다. 부모없는 상황을 어둡고 우울하게만 그려놓기 보다는, 아버지를 하나 데려다 앉혀놓음으로써 상황을 타결해나가려는 겨우 중학생인 아이들, 나름대로 밝고 착한 천성을 잃지 않고 그들이 의붓아버지와의 관계를 끌고 나가는 것은 소설 속이어서 그런 것인가.
글의 곳곳에 저자가 추리소설 작가임을 드러내주는 곳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녀의 다른 소설을 필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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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 2007-06-24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을 지를까 말까 고민 중에 있었는데.."이유"라는 책을 읽고 이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었거든요. 저 파란 글씨요..맞는 거 같아요. ^^ 리뷰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hnine 2007-06-24 06:05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작가가 끝까지 이야기를 우울하게 끌지 않고 간 것도 맘에 들어요.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
야마다 구니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큰나무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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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개의 중편이 실려 있는데 제목은 그 중의 한 편의 제목에서 온 것이 아니다. 네 편의 공통적인 주제라고나 할까. 아가씨 같고 싶어하는 아줌마, 또는 아가씨이면서도 어딘지 아줌마 같은 여자 들이 등장 인물이다. 여기 나오는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애인도 없고, 자기를 꾸미는 일에 별 관심이 없으며, 활동 반경이 넓지 않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저지름 경향도 낮다. 반면 '요시노야의 구두'와 '바디 블레이드'에 나오는 기혼 여성들 (아줌마)은 매우 활동적이며, 당당하고, 능력이면 능력, 외모면 외모로 인정받고자 한다. '제곱의 법칙'에 나오는 18년차 전업 주부는 다소 그렇지 않았지만.

이야기 속의 아가씨들이 조용 조용, 나서지 않고 약간은 주눅 들어있는 듯 보이는 것은, 아직 배우자를 못 찾았다는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반면, 결혼을 한 여성의 경우엔 결혼하지 않은 것 처럼, 즉 아가씨처럼 보이고 싶어서 애를 쓰니...아이러니이면서, 또 현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옮긴이 (김 난주)의 글 중 한 토막,
'아가씨면서 아줌마로 살아가는 여자의 게으름과 아줌마면서 아가씨를 가장하려는 여자의 바지런함에 동시에 일침을 가한다. 결혼을 아가씨와 아줌마의 경계선으로 아는 여자들의 상식에 가차없는 채찍질을 하기 때문이다... 아가씨와 아줌마의 경계는 이미 결혼 따위가 아니라, 다소 역할 변화가 있을 뿐, 여자는 어디까지나 여자라고, 그리고 그 여자는 어엿한 인간이라고 외친다'

바로 그것!  아가씨와 아줌마를 경계 짓는 것은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발상인가. 여자는 어디까지나 여자이고, 인간인 것을.

제목에서 통속적인 내용만을 연상했다면, 생각보다 더 유쾌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심각하고 깊이있는 내용이라기보다, 아주 괜찮은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일어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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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9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7-06-19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편견이 곧 벽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아가씨일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줌마같이 행동하지 않았나 싶네요. 이 책도 재미나요 ^ ^
속삭이신님, 휴...저도 그런 스트레스 제대로 받아본 사람이랍니다. 누가 나이 묻거든 기냥 스물 셋이라고 하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