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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인용이야
김점선 지음 / 마음산책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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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화가 김 점선의 글과 그림 모음책이다. 짤막짤막한 글에 화투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섞여 있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같은 원색을 사용한 단순화된 그림들은 군더더기 없이 딱 짤라 하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 인 듯 했다. 읽다보면 글과 그림과 사람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둘러대지 않고 이리 저리 꾸며대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나, 솔직하고 꾸밈이 없어 그 쏟아내는 말들에 의외로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기숙사에서 왕따 취급을 받고 있음을 알려준 친구에게 그것이 너무 기쁘다고, 남들과 동화되어 와해되지 않으려고 목숨걸고 노력해왔다는 자칭 왕따 체질 김 점선. 시들기 시작하는 백합꽃을 냉장고에 넣어 놓고 냉장고를 백합꽃이 안치된 관에 비유하는 대목에선 어떤 엽기성까지 느껴졌으니. 정해진 학교의 교과과정을 따르길 거부하고, 자신의 손으로 짠 계획과 일정에 따라 시험시간과 체육시간을 제외하고선 책만 읽어댔다는 고등학교 시절. 맘에 안드는 과목을 수강 거부했다가 한 학기만에 제적당한 대학원.혼자서 심심하게 살아야 생각이 맑아지고 그림을 그리게 된다, 무지 심심해야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는 대목은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했다. 그림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내 영혼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온다. 그 대목을 옮겨볼까? 그러면서 한번 더 읽어보려고...

'...그림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그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림 그리는 일뿐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행복했다. 제대로 된 길을 찾은 기쁨을 느꼈다. 그 느낌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그림은 경건한 예배다. 자신의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다. 내 영혼은 하늘이 내게 내린 숙제다. 평생 풀어나가야 할 대상이다. 내 영혼 속에는 가깝게는 나와 나의 부모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나는 내 영혼의 시각화에 몰두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그린다...(122쪽)'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독서광이라는 그녀가, 위에서처럼 어떤 기회에 그림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글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을까. 그러고보니 위의 인용문이 이 책의 뒷표지에 실려있구나. 박완서님의 추천글도 아주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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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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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 알라딘 리뷰에 한참 오르내리던 책 중 하나였다. 올라오는 리뷰들만 읽어보면서 책은 정작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무척 재미있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버스 기다리면서도 읽고, 길을 걸으면서도 읽고, 밥 하면서도 읽고. 하루만에 다 읽고 말았다. 왜, 어디가 그렇게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재미있는데에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마치 작가가 책 속에서 책을 왜 그렇게 열심히 읽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유가 없다, 그냥 좋아서 읽는다고 대답하듯이.

이 책의 두가지 키워드라면 <백수>와 <책>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매일 출퇴근 하는 직장이 없다뿐이지, 그리고 아버지 집에 같이 살면서 '식'과 '주'를 따로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외에는 엄격한 의미의 백수는 아니지 않은가? 주인공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책을 사기 위해, 또 그 외 필요한 다른 경비 정도는 그때 그때 임시직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 충당하지 않는가. 책의 제목에서 100% 완전 백수의 이야기를 상상했다면 아마 실망했을지도. 즉,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활동만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자 하는, '무슨무슨 족(族)'이라고 이름붙여 새로운 트렌드가 될 법도 한, 지극히 현대적인 부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이 나의 기호나 나의 취향보다 중요하지 않고, 어느 만큼 그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는 사람. 그 반대의 부류보다 내게는 훨씬 좋아보이는데 말이다.

주인공이 이렇게 백수라 부른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책> 속에서 인생의 모든 생,노,병,사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 책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귀어 그 사람에 대해 알고 그 인생에 대해 알기까지 우리가 투자해야할 시간과 노력과 웃음과 눈물에 반해, 책을 읽음으로써 알아가는 인생은 그 모든 수고를 단축시킨다. 책 읽는 동안, 이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어느 정도 동떨어져 나만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책과는 별개로 책 읽기 라는 활동의 의미를.

고만고만한 소소한 일상의 얘기 거리에 지나지 않다고 할지 모르나, 한 문장 한 문장 시시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주인공뿐 아니라, 그 주변 인물 모두, 그 중 어느 누구를 주인공으로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다만,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전교 1등을 도맡아 하여 아무대학 아무과나 갈수 있었다는 설정이나, 책을 전해받다가 애인초기 단계로까지 발전해가는 관계의 어색함 등, 빠져 읽는 내 눈에도 뜨이는 몇가지가 흠으로 보이긴 했으나 못견딜 정도는 아니었고.

마지막,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과연 그녀의 말대로 솔직한 타입의 사람일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본인은 이 생활이 만족스럽기만 하다고 계속 얘기하고 있지만, 느껴져오는 삭막함과 쓸쓸함. 역시 책은 책일 뿐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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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 외국문학 5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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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를 TV 주말의 영화 시간에 보고 있었다. 남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직업이 될수 있다는 것도 새롭다 못해 신비스럽고  몽환적이었을뿐 아니라, 음악, 바로 음악때문에 더욱 빠져들었던 영화. 베토벤의 <폭풍> 3악장이 영화 전반에 걸쳐 되풀이되는 것도 못견딜 정도로 좋았는데, 삽입된 다른 곡들도 듣다 보니 베토벤 곡 일색이었던것. 그런 기억을 되살려 읽은 책 <책 읽어주는 여자>이다. 어렵게 쓰여지지도 않았고 복잡한 설정의 스토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얼마나 여러가지 상상을 해가며 읽었는지 모른다. 우선 책 읽어주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소설 한 편이 만들어진 배경,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으며, 주인공이 책을 읽어주기 위해 만나는 인물들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이 과연 작가가 의도했던 바 일까 궁금했다. 몸은 불편하나 정신은 바늘끝 처럼 예리한 소년 에릭, 아직도 혁명을 꿈꾸며 사는 노년의 장군 부인을 등장시켜 작가는 무엇이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럴줄 알았어 이런 사람 하나쯤 나올만도 하지 미셀 도트랑, 8살이 아닌 8살 여자아이 클로렝드, 주인공 마리가 하는 일에 어떠한 반대도 하지 않는 동시에 관심도 없어보이는 남편 필립. 마지막에 세 남자가 합동으로 마련한 그 설정은 또 어떻고. 아, 이렇게 매력있을 수가 있을까. 내 머리속에 무엇이 들어있고 내 심리상태가 어떻노라고 구구절절히 설명하는 것과 또 한 차원 다르지 않은가. 끝까지 읽는 독자로 하여금  많은 부분을 맡겨 놓고 마무리 짓는 작가의 방식이 좋다. 도취성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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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낮은 집 마음이 자라는 나무 1
임정진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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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처럼 아파트가 일반적인 주거형태로 자리 잡기 전, 우리네 집들은 대부분 단층, 즉 지붕이 낮은 집들이었다. 임정진의 ‘지붕 낮은 집’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시기에 이르러 저자의 추억을 살려 엮은 옴니버스 식 소설. 서울 변두리, 부유하진 않지만 부모님과 두 여동생을 거느린 맞딸인 화자가 동네의 주변 인물들을 묘사해 가는데, 강한 사람보다 약하고 못 가진 사람의 편에 서고 싶어 하는 그녀의 소박하고 착한 심성이 글 전체에서 잘 드러난다. 나보다 조금 연배이긴 하나 저자가 그린 어린 시절은 곧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다. 이렇게 어릴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 짝이 없다. 큰 양은 주전자가 놓여있는 마루의 연탄 난로, 그 주위에는 철사로 된 안전망, 거기에 걸려 있던 양말이나 수건 같은 작은 빨래, 연통에는 크레파스로 무언가를 그렸던게 녹아 달라붙은 얼룩이 있고...바로 나의 어릴 때 살던 집의 마루를 묘사한 것 같으니, 그때 우리의 살던 모습은 이리도 다 비슷했었단 말인가.


작가의 에필로그 중의 한 구절 ‘열서너 살 때 생각으로 치자면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 나이가 되었으되, 다시 아이가 되고 싶어졌고 여전히 두려운 것이 많은 사람이다...’ 라는 말조차 이토록 공감이 갈수가 있단 말인가. 특별한 사건이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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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 지식의 대통합 사이언스 클래식 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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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계몽사상 중에서)
중국에서는 왜 데카르트나 뉴턴과 같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 중국인들에게는 추상적으로 체계화된 법칙에 대한 혐오감이 있었다. 이것은 진 왕조 시기에 봉건제가 군현 제도로 전환될 당시, 엄격한 통치 법률을 제정한 법가 사상가들이 중국 지식인들에게 안겨준 비참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의 엄격한 법치 주의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이어서 개인의 욕망보다 국가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법률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중국 학자들의 우주에서 자연을 창조한 이성적인 존재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꼼꼼하게 기술한 대상들은 보편 원리를 따르지 않으며, 우주적 질서내의 존재자들이 따르는 특별한 규정 안에서 움직인다. 말하자면, 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 즉 일반 법칙이라는 개념이 꼭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탐색하려는 시도 또한 거의 없었다.-76쪽

(3장.계몽사상 중에서)
진화의 오메가 포인트, 즉 인류와 외계 생명 형태가 수렴하여 완전한 통일성과 완전한 지식을 이루는 마지막 시점.-78쪽

(5장.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중에서)
미로는 미지의 물질세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미로의 기원, 즉 선사 시대의 크레타 섬과 아티카 간의 충돌은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인류의 모습에 대한 신화적인 이미지다. 그렇다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무엇일까? 그것은 학문 분과들간의 통섭적 가로지르기를 상징한다. 그리고 테세우스는 인류이며 미노타우로스는 우리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비합리성이다. 겨험 지식의 미로 입구에는 물리학이 한 통로를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에는 모든 탐구자들이 따라가야만 하는 몇몇 통로들이 갈라져 있다. 깊은 안쪽에는 사화과학, 인문학, 예술 그리고 종교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 만일 인과적 설명들을 이어 주는 실타래가 잘 풀려져 있다면 어떤 통로에서든 되돌아올 수 있다. (...) 하지만 우리는 미로를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복병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곧 발견한게 된다. 예를 들어, 경험 지식의 미로는 입구는 있지만 중심은 없으며 미로 내부의 깊숙한 곳에는 막다른 골목들이 수없이 많다.-134쪽

(11장.윤리와 종교 중에서)
제대로 보면 신은 과학을 포섭하지만 과학은 신을 포섭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특정 주제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서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을 세운다. 그들은 객관적 지식의 범위를 가능한 한 확장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어떤 가설은 받아들이고 다른 가설들은 기가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식은 단지 실재의 일부분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 특히 과학적 연구는 놀랄 만큼 다양한 인간의 정신적 경험 전체를 탐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이라는 관념은 모든 것, 즉 단지 측정 가능한 현상뿐 아니라 개인이 느끼고 잠재의식적으로 감각하는 현상들까지 설명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다. 여기에는 영적인 통로를 통해서만 소통될 수 있는 계시 현상도 포함된다. 왜 모든 정신 경험이 양전자 방사 단층 촬영을 통해 눈에 보여야만 하는가? 과학과는 달리, 신의 관념은 우리가 탐색할 수 있는 물질세계 이상의 것에 관계된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물질세계 바깥에 놓여 있는 것으로 향하도록 한다. 신앙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신비에 다다르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418쪽

(11장.윤리와 종교 중에서)
신의 물리적 영역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신이 과학자에게 부여한 능력 덕분이다. 과학이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 나는 종교가 인류의 정신에 엄청난 흡인력을 갖고 있고 종교적 확신이 대체로 유익하다는 점을 거리낌 없이 인정하면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종교는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번뇌들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과 헌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망의 자양분이다. 사람들은 종교가 제공하는 확실성을 갈망한다. 신이 모든 인간의 삶-심지어 노에의 삶마저도- 의 성스러움을 증언하면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왔다가 모든 이에게 영생을 약속하며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기독교 교리보다 정서적으로 더 강력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421쪽

(12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에서)
교양과목의 미래는 당황함이나 두려움 없이 인간 존재의 근본 물음들을 묻는 데 있다. 그런 물음들을 위에서 아래로 끌어 내려 더 쉬운 언어로 다루어야 한다.-464쪽

(12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에서)
우리는 아직 의지적인 진화의 시기에 들어서지 못했지만, 그러한 전망에 관해 생각해 볼 만큼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 있다. 정말 자유로운 최초의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를 만들어 낸 자연선택을 해체하려 하고 있다. 우리의 자유 의지 바깥에는 유전적 숙명도, 우리의 갈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별도 없다. (...) 진화는 이제부터 도덕적, 정치적 결정으로 조절되는 과학 기술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우리는 곧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어떻게 되고 싶은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은 끝났다. 이제 메피스토텔레스의 진짜 음성을 듣게 되리라.-475쪽

(12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에서)
현재 진행되는 생물 다양성의 손실은 6500만 년 전 중생대 말 이래로 최대 규모이다. 최근에 과학적으로 합의된 바에 따르면, 하나 이상의 거대한 운석이 지구에 떨어지고 그때 생긴 먼지가 대기를 혼탁하게 만들어서 지구 기후를 상당 부분 변화시키고 공룡을 멸종시켰다. 그리하여 진화의 다음 단계인 신생대 또는 포유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현재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발작적인 멸종 행위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완화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21세기에는 신생대의 종말을 볼것이며, 새로운 생명 형성이 아니라 생물학적 고갈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고독의 시대, 즉 "공생대 (空生帶)"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5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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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2-28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는 '사회생물학'이라는 분야의 개척자라는 명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생물학 박사이면서 이러한 책을 쓸 수 있는 바탕을 갖출 수 있었던 튼튼한 배경이 있었던 것. 얼마나 많은 책과 시간과 노력이 투여되었을지, 상상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