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계몽사상 중에서) 중국에서는 왜 데카르트나 뉴턴과 같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 중국인들에게는 추상적으로 체계화된 법칙에 대한 혐오감이 있었다. 이것은 진 왕조 시기에 봉건제가 군현 제도로 전환될 당시, 엄격한 통치 법률을 제정한 법가 사상가들이 중국 지식인들에게 안겨준 비참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의 엄격한 법치 주의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이어서 개인의 욕망보다 국가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법률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중국 학자들의 우주에서 자연을 창조한 이성적인 존재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꼼꼼하게 기술한 대상들은 보편 원리를 따르지 않으며, 우주적 질서내의 존재자들이 따르는 특별한 규정 안에서 움직인다. 말하자면, 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 즉 일반 법칙이라는 개념이 꼭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탐색하려는 시도 또한 거의 없었다.-76쪽
(3장.계몽사상 중에서) 진화의 오메가 포인트, 즉 인류와 외계 생명 형태가 수렴하여 완전한 통일성과 완전한 지식을 이루는 마지막 시점.-78쪽
(5장.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중에서) 미로는 미지의 물질세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미로의 기원, 즉 선사 시대의 크레타 섬과 아티카 간의 충돌은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인류의 모습에 대한 신화적인 이미지다. 그렇다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무엇일까? 그것은 학문 분과들간의 통섭적 가로지르기를 상징한다. 그리고 테세우스는 인류이며 미노타우로스는 우리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비합리성이다. 겨험 지식의 미로 입구에는 물리학이 한 통로를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에는 모든 탐구자들이 따라가야만 하는 몇몇 통로들이 갈라져 있다. 깊은 안쪽에는 사화과학, 인문학, 예술 그리고 종교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 만일 인과적 설명들을 이어 주는 실타래가 잘 풀려져 있다면 어떤 통로에서든 되돌아올 수 있다. (...) 하지만 우리는 미로를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복병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곧 발견한게 된다. 예를 들어, 경험 지식의 미로는 입구는 있지만 중심은 없으며 미로 내부의 깊숙한 곳에는 막다른 골목들이 수없이 많다.-134쪽
(11장.윤리와 종교 중에서) 제대로 보면 신은 과학을 포섭하지만 과학은 신을 포섭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특정 주제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서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을 세운다. 그들은 객관적 지식의 범위를 가능한 한 확장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어떤 가설은 받아들이고 다른 가설들은 기가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식은 단지 실재의 일부분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 특히 과학적 연구는 놀랄 만큼 다양한 인간의 정신적 경험 전체를 탐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이라는 관념은 모든 것, 즉 단지 측정 가능한 현상뿐 아니라 개인이 느끼고 잠재의식적으로 감각하는 현상들까지 설명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다. 여기에는 영적인 통로를 통해서만 소통될 수 있는 계시 현상도 포함된다. 왜 모든 정신 경험이 양전자 방사 단층 촬영을 통해 눈에 보여야만 하는가? 과학과는 달리, 신의 관념은 우리가 탐색할 수 있는 물질세계 이상의 것에 관계된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물질세계 바깥에 놓여 있는 것으로 향하도록 한다. 신앙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신비에 다다르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418쪽
(11장.윤리와 종교 중에서) 신의 물리적 영역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신이 과학자에게 부여한 능력 덕분이다. 과학이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 나는 종교가 인류의 정신에 엄청난 흡인력을 갖고 있고 종교적 확신이 대체로 유익하다는 점을 거리낌 없이 인정하면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종교는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번뇌들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과 헌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망의 자양분이다. 사람들은 종교가 제공하는 확실성을 갈망한다. 신이 모든 인간의 삶-심지어 노에의 삶마저도- 의 성스러움을 증언하면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왔다가 모든 이에게 영생을 약속하며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기독교 교리보다 정서적으로 더 강력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421쪽
(12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에서) 교양과목의 미래는 당황함이나 두려움 없이 인간 존재의 근본 물음들을 묻는 데 있다. 그런 물음들을 위에서 아래로 끌어 내려 더 쉬운 언어로 다루어야 한다.-464쪽
(12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에서) 우리는 아직 의지적인 진화의 시기에 들어서지 못했지만, 그러한 전망에 관해 생각해 볼 만큼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 있다. 정말 자유로운 최초의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를 만들어 낸 자연선택을 해체하려 하고 있다. 우리의 자유 의지 바깥에는 유전적 숙명도, 우리의 갈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별도 없다. (...) 진화는 이제부터 도덕적, 정치적 결정으로 조절되는 과학 기술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우리는 곧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어떻게 되고 싶은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은 끝났다. 이제 메피스토텔레스의 진짜 음성을 듣게 되리라.-475쪽
(12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에서) 현재 진행되는 생물 다양성의 손실은 6500만 년 전 중생대 말 이래로 최대 규모이다. 최근에 과학적으로 합의된 바에 따르면, 하나 이상의 거대한 운석이 지구에 떨어지고 그때 생긴 먼지가 대기를 혼탁하게 만들어서 지구 기후를 상당 부분 변화시키고 공룡을 멸종시켰다. 그리하여 진화의 다음 단계인 신생대 또는 포유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현재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발작적인 멸종 행위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완화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21세기에는 신생대의 종말을 볼것이며, 새로운 생명 형성이 아니라 생물학적 고갈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고독의 시대, 즉 "공생대 (空生帶)"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5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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