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이틀 앞두고 당일치기로 강릉에 다녀왔다.

차례를 우리 집에서 모시는 입장에서 추석이나 설 연휴에 장보러 마트가는 것 외에 다른 어딜 간다는 건 꿈도 못 꾸고 살았는데 올림픽이 뭔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인데 당일로라도 보러 갔으면 좋겠다는 아들의 제안때문, 아니 '덕분'이었다.

평창에서 하는 경기는 밤 경기 밖에 표가 없어서 그날로 돌아와야 하는 우리는 강릉 경기장에서 저녁 7시에 하는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표를 인터넷으로 구입하고 강릉으로 출발.

  

하늘이 잔뜩 흐려있건 말건, 다녀온 다음 날 하루는 앉을 사이 없이 차례 음식 몰아서 해야하건 말건, 일단 명절 연휴에 바깥 바람 쐬러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

 

 

 

 

 

 

평창 휴게소, 강릉 휴게소 푯말을 보고 감격하는 내 자신이 참 딱하기도 했다. 난 그동안 창살없는 감옥에서라도 살아왔던 건가? 그런 감옥이 있다면 그건 아마 내 손으로 만든 감옥이겠지 라고 생각하니 괜히 더 억울하고 더 한심하고.

나보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하시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행은 가슴이 떨릴때 해야지 다리가 떨릴때 하면 아무 소용 없다고. 몸이 건강할때, 다니는 것이 힘에 부치지 않을때 하라는 얘기다.

 

 

 

좌석에 앉아서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찍어본 경기장 전경.

 

 

 

 

훌륭하다!

 

 

우리 좌석 옆에 네덜란드 응원단이 많이 와 있었는데, 단체로 감귤색 옷을 입고 있어 눈에 확 띄었다. 등 뒤에 새겨넣은 저 사람이 누굴까 궁금했는데 궁금증은 경기가 시작하면서 바로 풀렸다. 이번에 네덜란드에서 출전하는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인데, 강력 우승 후보였나보다. 그런데 경기 중반까진 이 선수가 1위이다가 최종적으론 네덜란드 출신 다른 선수가 올림픽 신기록을 기록하면서 1위를 하고 이 선수는 4위에 그쳤다. 2, 3위는 모두 일본 선수가 차지, 우리 나라에서 출전한 김현영, 박승희 선수도 열심히 했으나 등위에 들지는 못했다. 열심히 해준 우리 선수에게도, 또 우승한 다른 나라 선수에게도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트랙을 다 돌고 모든 선수들이 한 바퀴를 더 돌면서 인사를 한다.

그때 찍은 우리 나라 김현영 선수.

 

 

 

 

바깥쪽 트랙을 돌고 있는 선수가 박승희 선수.

 

트랙의 직선 코스와 코너에서 선수의 손놀림, 발 동작 등 몸 자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금메달 획득한 네덜란드 선수.

우리가 앉은 좌석이 네덜란드 응원단 좌석과 가까이 있어서 앞에 와서 국기 들고 답례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찍을 수 있었다.

 

 

보는 대상이 그 무엇이든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은 기운과 의욕을 덤으로 준다. 잡념과 망상을 잊게 해준다.

 

경기를 다 보고 셔틀을 타고 주차장으로 와 집으로 향하는 시동을 건지 4시간 넘게 달려 집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 새벽 2시.

 

1988년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할때 나는 대학교 4학년. 온 나라가 올림픽으로 들썩 거렸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스포츠에 대해 잘 모르고 잘 못하는 나는 별로 즐기지 못했었다. 그저 무사히 잘 끝나기만 바랐던 기억이 있는데 나이 오십이 넘어 본 이번 2018년 올림픽은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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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8-02-18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tv로 본 나와 다르게 현장에서 본 후기를 보니 더 생생하네요!!♥
현장에서 느끼는 기운은 대단할 거 같아요. 감동도 더 크고 찐하게 오래 기억되겠어요. 덕분에 설 준비하는 손길도 즐거웠을 듯...^^

hnine 2018-02-18 11:5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tv로 보는게 더 가까이서 자세히 볼수는 있겠지만 현장에서 받는 그 기(氣)는 따라올 수 없는 것 같아요. 연극, 무대, 시장, 여기에 이제 스포츠 경기장을 더해야겠어요 삶의 의욕이 떨어질때 가보면 좋을 곳으로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딴 생각 할 여지를 안주거든요.

책읽는나무 2018-02-18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직접 가서 보셨다니 부럽습니다^^
열기가!! 열기가!!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합니다.
모든 경기가 마찬가지지만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들이에요.
선수들 다치지 않고 경기 잘 치뤘음 좋겠어요^^

hnine 2018-02-18 19:09   좋아요 0 | URL
직접 눈 앞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정말 오랜만에 보았지요.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또 언제 열릴지 모르느데 한번 가서 보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남편이 두말 않고 나서더라고요. 오전에 근무를 마치고 점심도 간단히 먹고 출발했답니다. 자고 오지는 못해도 경기 시작전에 근처 구경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바람이 그날 너무 많이 불어서 행사장도 다 폐쇄가 되었지요. 저녁도 경기장내 스낵 코너에서 간신히 요기만 했어요.
참가한 선수들 기록 차이가 대부분 1초 내외더라고요. 그 짧은 시간의 차이로 금메달부터 10위권 까지 차이가 나는 걸 보니 더 안타깝기도 하고 더 대단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운전하는 남편이 힘들었고 세사람이 움직이느라 티켓 값이 장난 아니었지만요 ^^

서니데이 2018-02-1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릉 아이스아레나 에서 직접 보셨군요. 부럽습니다.
사진을 보니 선수가 잘 보이는 가까운 쪽에서 관람하신 것 같은데요.
실제로 보고 오셔서 더 좋으셨겠어요.
오늘로 연휴 마지막 날이네요.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18-02-18 19:14   좋아요 1 | URL
아들이 가고 싶다고 안했으면 저나 남편이나 생각도 안했을 일을 벌이고 말았지요 ^^
덕분에 아주 좋은 시간이었답니다. 그것도 명절을 코앞에 두고 말이예요.
이제 연휴 마지막날 밤이 되고 나니, 비로소 본격적인 2018년이 궤도에 오른 느낌이네요. 심기일전! 1월1일 스타트가 좀 미진했다면 진짜 본격적인 출발을 해볼 기회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경기장에서 보니까 잘못된 출발로 인해 (false start 라고 하더군요) 다시 출발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제가 계획해놓은 일들이 대개 3월에 시작하기 때문에 저는 좀 더 여유를 부릴려고요 ^^
서니데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nama 2018-02-1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살 없는 감옥같은 ‘직장‘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네덜란드 사람들은 오렌지색을 선호해서 축구팀도 오렌지색을 사용한다나요. 발음이 비슷한 오렌지공인가 하는 실존 인물이 네덜란드 독립에 지대한 공을 세워서 그렇게 됐다고 하는데...여기까지만 알고 있어요.
스포츠는 역시 현장에서 즐겨야 되는가 봐요.
다리가 떨릴 날이 금방 옵니다. 가슴이 떨릴 때 부지런히 다니면 다리가 떨리는 날이 도래해도 덜 억울할가요?

hnine 2018-02-18 19:23   좋아요 0 | URL
직장도 아니고 내 집이 감옥이라는 생각이 들지 몰랐어요. 이제는 맘만 먹으면 언제고 나서면 되는데, 힘들게 뭘 가나, TV로 걸어서 세계속으로 보면 되지...이렇게 게으름 부린 제 탓인데, 같이 가자고 안해주는 남편 원망만 하고 있다니까요 ㅠㅠ
아, 네덜란드 사람들이 오렌지색을 선호하는군요! 몰랐어요. 그것도 처음엔 프랑스 사람들인줄 알았어요. 국기가 비슷해서요. 프랑스 국기가 세로로, 네덜란드 국기는 같은 삼색이 가로로 있다는걸 혼동했지 뭡니까.
nama님 덕분에 제 호기심이 더욱 발동. 검색해보니 Oranje-Nassau가문이라고 나오네요. 스페인으로부터 네덜란드 독립에 공을 세운 가문이라고요. 저는 우연히 이번에 단체복으로 채택한 색이 오렌지색인줄 알았는데 이런 배경이 있는 줄이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8-02-18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2-18 19:30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평소에도 워낙 오자 만발인 제 페이퍼이긴 하지만 덕분에 금방 고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자세히 읽어주시다니, 고맙기도 하고 감동이네요.
명절 준비 앞두고 지레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어요. 일도 일이지만 친정 아버지 생각도 나고 해서요. 그런데 하루 바람쐬고 오니 금방 기분이 나아지네요. 아들은 하루 정도 묵으면서 더 구경하고 싶어했지만 저는 당일치기로 다녀온것만 해도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요.
사진은 더 찍긴 했는데 사람들 얼굴이 너무 뚜렷이 나온것들이 많아서 저것만 올렸어요. 그리고 뭐 더 대단한 사진들도 아니고요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