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전에는 가끔, 결혼하여 남편과 떨어져 살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차리는 밥상. 내가 밥상을 차리는 방식이란 되도록 손을 덜 대고 먹을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화장에 자신이 없어 되도록 맨얼굴로 다니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요리에 별로 자신이 없으니 이렇게 조리고 볶고 뭘 더 넣고 해서 맛이 더 좋아지리란 자신이 없는 것이다. 과일로 샐러드를 만들기 보다는 그냥 깎아내어 간식이나 후식으로 먹게 하고, 고구마로 마탕을 하거나 부치거나 튀기거나 보다는 그냥 쪄서 내거나 밥할때 섞어 고구마 밥을 하는 식. 생선도 양념해서 조리거나 찌기보다는 그냥 비늘 떼고 씻어서 그릴에 구워 낸다. 두부를 계란 씌워 부쳐내는 적은 거의 없고, 잠깐 끓는 물에 데쳐서 양념간장과 함께 낸다 찍어 먹으라고. 바나나을 구워서 먹거나 심지어 사과를 초코렛에 풍덩 담갔다가 꺼내 굳혀 먹는 간식거리 (미국에서 흔히 보는) 들을 볼때 드는 생각은 '아니, 그냥 먹어도 너무나 맛있는데 왜 저렇게 수고를 해서 먹지?' 요즘 다른 분들의 블로그 구경하다가 밥상 차림을 사진 찍어 올린 것들을 보노라면, 내가 식구들에게 너무 성의없는 밥상을 차려 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가 우리집에 와서 같이 식사를 하면 음식 간이 너무 싱거워 소금을 찾곤 한다. 누가 오신다고 하면 나는 흰 쌀을 사다가 밥을 한다. 평소 현미밥을 먹는 우리 집에는 흰 쌀이 없으므로. 우리 식구들 먹는 밥상이라면 반찬 수도 여러 가지 하지 않는다. 밥과 국, 그리고 메인이 될만한 음식 한 가지, 그 외에는 김치나 밑반찬 한두가지 정도에서 끝.
그런데, 성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 음식에 대한 내 기본 바탕이 되는 생각 자체가, 화려한 밥상이 곧 좋은 밥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의 먹거리 문제는 몸이 원하는 음식이 아니라 '혀'가 원하는 음식을 먹어서 생긴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이모는 음식 솜씨가 매우 좋으셔서, 손님 초대상은 물론, 내 여동생 결혼할때는 이바지 음식도 이모께서 직접 해서 보내셨을 정도이시다. 김치 담그시는 것을 한번 옆에서 본적이 있는데, 배추, 고춧가루 등의 기본 재료 외에도 굴, 밤 등 내가 아는 재료란 재료는 아마 다 들어간 것 같다. 똑같은 음식을 해도 정말 맛있게, 한 그릇 먹고 나면 한 그릇 더 먹고 싶게 요리를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이종 사촌들은 키도 덩치도 또래에 비해 월등히 컸고, 동시에 성인이 되어가면서는 '비만'의 수준까지 이르고 있다.
필요하다면 개발시키겠으나, 현재로서는 내 음식 솜씨 개발에 별로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신선한 재료로, 되도록 조리 단계를 간소화한, 소박한 (솜씨없는?) 밥상을 고수하련다.
* 위의 책은 몇 년 전에 읽은, 김 수현 약사가 쓴 책이다. 내게 '과자, 달콤한 유혹' 책 만큼이나 식생활에 대한 아이 오프너 (eye-opener) 역할을 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