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 완성시킨 그림을 책상위에 쭉 펼쳐 놓고 검사를 받고 있었는데, 우리반 어떤 아이의 완성된 그림을 보고 미술 선생님께서는 네 그림은 마리 로랑생 그림을 닮았다고 하셨다. 밝고 아름다운 색채의 그 아이 그림은 내가 보아도 미술책에 나와있는 화가의 그림을 닮아 있었다.

그런데 미술 선생님의 그 말씀에 그 아이는 상당히 기분 나빠하는 것이다. 미술 교과서에도 소개된 화가의 그림을 닮았다는데 잘 그렸다는 뜻 아닌가? 그때 나는 그 친구가 왜 기분 나빠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래전 고등학교때 기억을 떠올리며 전시장을 찾았다

 

마리 로랑생

프랑스 파리의 벨에포크 시절을 대표하는 화가이며 "미라보 다리"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기욤 아뽈리네르의 연인이기도 했던 여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12월 9일에 시작한 마리 로랑생 전시는 우리 나라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도착해보니 도슨트 설명 시간을 한참 놓쳤는데, 전시장 내부에서는 사진도 거의 못찍게 해서 전시장 내부 설명을 노트에 적어오는 수 밖에 없었다.

 

 

 

어떤 건 그림까지 (^^)

 

 

 

 

<세 명의 젊은 여인들> 캔버스에 유화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락되었던 작품)

 

 

 

 

 

 

 

 

다른 작품들은 전시장을 나와 기념품 샵에 걸린 포스터나 액자를 찍는 수 밖에.

위의 그림 역시 자화상.

 

 

 

 

 

 

 

<책 읽는 여인> 1913

기억해두고 싶어 전시장 내에서 노트에 대충 스케치해왔던 그림인데 전시 보고 나오니 전시장 기념품샵에 액자가 걸려 있어 사진 찍을 수 있었다.

 

 

 

 

마리 로랑생의 자화상이 여러 작품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

표정이 매혹적이다.

 

 

 

 

 

 

 

 

 

 

 

 

▼ 다음은 전시상에서 노트해온 마리 로랑생에 대한 것들  ▼

 

 

 

마리 로랑생 (1883-1956)

 

 

 

 

1. 청춘 시대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기혼자이자 부유한 정치인.

어릴 때부터 정신적 갈등을 겪으며 자랐으며 교사가 되기를 원했던 엄마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가의 길로 들어선다.

 

"매일이 결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스무살이었다. 당시의 나는 슬프고 못생기고 하여튼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1905년 당시 파리 화가들의 공동 작업실이었던 아틀리에 '세탁선 (Bateau-lavoir: 아틀리에 이름이 재미있다)에서 피카소, 아폴리네르, 장 콕토, 모딜리아니 등을 만나고 그들의 영향을 받는다.

 

 

2. 열애시대

 

세탁선에서 피카소의 소개로 만나게 된 시인 기욤 아플리네르와 사랑에 빠지면서 마리 로랑생의 작품은 서서히 그 스타일을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1911년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사건"의 범인으로 아폴리네르가 연루되면서 이들의 사랑은 식어간다.

31세때 처음으로 파리에서 개인전.

이 당시 유럽 화단의 주류였던 야수파, 입체파의 영향 속에서 자신만의 특색인 여성스러움, 우아함, 서정적 화풍을 지켜나갔다.

 

"나는 아주 슬펐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검은색과 흰색이 주조를 이룬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분홍색과 푸른색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3. 망명시대

 

 

파리에 유학중이던 독일인 남작이자 화가 오토 폰 뷔체와 결혼한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하고 스페인에 망명한다.

남편과 결국 파국을 맞이하고 고독감과 비애에 빠진다.

 

"내가 다른 화가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모두 남자들이어서일지 모른다.

남자들이란 내게 풀기 어려운 문제와 같다"

 

마드리드에 머물면서 고야의 영향을 받는다.

그녀는 화가이지만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잊혀진 여인 (진정제)

 

 

 

지루하다고 하기 보다 슬퍼요

슬프다기 보다불행해요

불행하기 보다 병들었어요

병들었다기 보다

버림받았어요

버림받았다기 볻

나 홀로

나 홀로라기 보다

쫓겨났어요

쫓겨났다기 보다

죽어있어요

죽었다기 보다

잊혀졌어요

 

 

잊혀진다는 것은 여자에게 있어 비극의 절정인가보다. 고독보다도, 죽음보다도.

 

38세 나이에 과거의 연인 아폴리네르는 마리 로랑생에게 마지막 전보를 보내고 사망한다.

 

 

4. 열정의 시대 1920

 

 

남편과 이혼후 겨우 국적 회복. 망명시대를 끝내고 1921년 정식으로 파리로 돌아온다.

망명시대의 음울함 사라지고 화풍에 변화가 오는데 아름답고 밝은 색채에 퇴폐적 분위기마저 풍기게 된다.

아름다운 파스텔 컬러 등장. 현재 많은 사람이 마리 로랑생의 화풍으로 인식하게 된 감미로운 작품이 자리잡는 시대이다.

이때는 마리 로랑생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하는 것이 유행일 정도로 많은 초상화 제작을 의뢰받았는데

코코샤넬의 초상, 헬레나 루빈슈타인의 초상 등이 유명하다.

 

<코코샤넬의 초상>

 

발레 의상 디자인으로 코코 샤넬과 처음 만난 마리 로랑생은 동갑내기로 친분을 다졌다.

마리 로랑생은 코코샤넬의 초상을 부탁받아 그렸는데, 완성된 초상화를 본 코코 샤넬로부터 너무 나약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작품 인수를 거절당하고 수정해달라는 요구를 받지만 마리 로랑생은 수정을 거부한다.

이번 전시엔 오지 못했지만 자료 화면에서 보니 너무나 마리 로랑생 다운, 아름다운 초상이었으나 동시에 코코샤넬이 나약하게 묘사되었다고 불만을 가진 이유도 수긍이 가는 그림이었다. 의뢰자는 거부했지만 지금까지도 마리 로랑생의 대표적인 초상화로 알려져 있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우아함은 콘트라스트의 미묘함에서 시작된다"

 

발레 <암사슴들>

프랑시스 풀랑크가 작곡하고 디아길레프가 감독, 장 콕토가 구성한 발레 <암사슴들>의 무대와 의상, 장식 디자인을 담당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마리 로랑생의 명성을 드높이는데 기여하여 서머셋 모옴을 비롯한 영국에서도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게 되었다. 

발레 <춘희>

 

 

5.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20권이 넘는 책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앙드레 지드 <사랑에 대한 시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 책 아래 Kathering Mansfield 작품이라고 이름 붙어 있어서 안내하시는 분께 말씀드렸다), 캐서린 맨스필드 <가든파티> 등이 그 예이다.

 

훗날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의 예로서 코코샤넬의 수석디자이너였던 칼 라커펠트가 2012년 F/W 오트쿠튀르에서 마리 로랑생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의상을 발표하였고, 니나 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욤 알리는 2017년 F/W 레디 투 웨어에서 마리 로랑생의 작품이 프린트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6. 성숙의 시대

 

이 시기 대공황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서는 듯 마리 로랑생의 작품은 더욱 화려해지고 관능적 스타일로 발전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런 마리 로랑생의 고립은 하녀로 들어와 점차 주인 노릇을 하며 그녀를 주변인들로부터 격리시켰던 '수잔 모로'의 영향도 컸다.

 

"고독은 하나의 왕국입니다"

 

195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73세. 한 손엔 장미, 다른 한 손엔 한때 연인이었던 아폴리네르의 편지 한통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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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의 그림을 닮았다는 말에 기분 나빠했던 고등학교때 그 친구는 대학 졸업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가서 지금은 연락도 주고 받은지 오래 되었다.

코코 샤넬이 자기를 그린 초상화를 마음에 안들어 했던 그 이유처럼 미술 선생님의 말씀을 자기 그림이 나약해보인다는 뜻으로 알아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밝고 화사한 색채로 그린 것이 어딘지 가벼워보인다는 뜻으로 알아들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상당히 앞서가던 친구이다.

 

 

 

마리 로랑생 전시를 본 후 두 층 올라가서 알렉산더 지라드 전시도 보고 왔다. 이건 다른 페이퍼로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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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27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부지런 하십니다.
어제 저도 친구와 약속이 있어 외출을 했는데
꽤 춥더군요.
전시회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피카소스러우면서도
또 다른 분위기라 관심이 가더군요.^^

hnine 2017-12-27 15:51   좋아요 0 | URL
예, 춥더라고요. 제 아이 일 때문에 서울 갈일이 있었어요. 간 김에 보고 싶던 전시를 보고 온거죠.
피카소스럽다고 보신게 맞아요. 그 시대가 워낙 입체파가 주름 잡던 시대이기도 했고, 마리 로랑생 그림에서도 어딘가 그런 느낌이 나지요.
분홍색과 회색, 초록, 검은색. 아주 특이한 색채의 세계를 구축해서, 처음 보는 그림일지라도 색깔을 보면 마리 로랑생 그림 아닌가? 하게 만드는 그림 세계를 갖고 있는 화가랍니다.

프레이야 2017-12-2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픈 전시 다녀오셨네요. 친구분은 누구의 그림을 닮았다는 말 자체가 싫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자화상 멋지군요.

hnine 2017-12-28 21:05   좋아요 0 | URL
제가 특별히 좋아하고 있던 화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늘 그렇듯이 전시를 보고 나면, 그 화가를 더 알고 나면 이전보다 더 좋아하게 되더군요. 마리 로랑생도 그렇고요. 마리 로랑생은 풍경이나 정물보다 특히 인물 그림이 많아요 그것도 남자보다는 완전 여성 편향적. 어릴 때부터 정신적 갈등을 겪고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개인사적으로도 아픔이 많았던 사람이라는 티가 그림에서는 별로 안 나타나는 것도 특이하다고 생각했답니다.
제 친구는 아주 모범생에 속하는 친구였어요. 저랑 달리 그림도 잘 그리고 체육도 잘하고...결혼하고도 한동안 연락이 되었었는데 지금은 저의 무심함으로 연락이 끊긴지 오래 되었네요.

qualia 2017-12-27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5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73세. 한 손엔 장미, 다른 한 손엔 한때 연인이었던 아폴리네르의 편지 한통이 들려 있었다.
·····················
정말 가슴 저리네요. 자신의 자화상처럼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은 정말 고독한 여성이었네요. 좀 엉뚱한 얘기일지 몰라도 저는 인간의 이런 속성은 인공지능과 로봇은 결코 지니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인공지능이나 로봇도 한 손엔 장미, 다른 한 손에 한때 연인이었던 아폴리네르의 편지 한 통을 쥔 채 고독에 몸부림치거나 죽어갈 수 있을까요? 고독과 같은 절절한 감정이나 그리움과 같은 애끓는 감정이 한낱 신경세포들의 발화 패턴이나 디지털적 계산(computation)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렇게 주장하는 물리주의자·기능주의자·강인공지능주의자들조차 복잡미묘한 감정의 지배를 받는 나약한 인간 존재일 뿐이죠. 발화 패턴이나 컴퓨테이션으로 인간 감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설명자의 마음 속엔 끝내 설명되지 않은 진한 감정의 흔적들이 남아 있을 겁니다.

한데 미술 선생님한테서 그림이 마리 로랑생 그림을 닮았다고 칭찬받고 기분 나빠했다는 hnine 님 친구분은 분명히 그 까닭이 있을 거예요. 예컨대 칭찬에 반응하는 방법이 서툴러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청소년기 때는 칭찬을 받고도 (속은 은근 기분 좋지만) 정반대로 표출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건 의도적으로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속마음과는 정반대로 반응하는 청소년기 특유의 반응 기제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혹은 그 친구분과 미술 선생님 사이에 개재된 어떤 사적 감정 때문에 그런 뜻밖의 기분 나쁜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겠죠. 혹은 친구분이 미술 선생님의 칭찬을 공치사로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자존심이 무척 세거나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독자파적 기질이 일찍부터 농후했던 친구분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혹은 이런 말씀은 드리기가 좀 껄끄럽지만, hnine 님께서 친구분이 기분 나빠하는 것으로 봤다는 것은 일종의 지각·감각·인지 상의 오류였을지도 모릅니다. 즉 그 친구분 표정이 실제로는 내심 기뻐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는데 당시 분위기나 여러 환경적 요인 때문에 지각·감각·인지 상의 오류가 빚어져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런 얘기들은 너무나 흔하게 교양 심리학이나 뇌과학 책에 널려 있는 얘기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꽤 설득력이 있기도 한 얘기죠. ㅎㅎㅎ 아무튼 hnine 님 윗글은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줘요. 해서 함 상투적인 상상을 해봤습니다.

hnine 2017-12-28 21:11   좋아요 0 | URL
그런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정말...휴...인간을 완벽하게 대체 가능하겠군요. 아닐까요? 그런 감성까지 갖춘 인공지능이라면 오히려 나을까요?
저는 칭찬해주면 일단은 헤벌레~ 좋아하기만 해서 친구의 내면 심리는 생각도 못해봤어요. 미술선생님도 좀 특이하신 분이었는데, 학생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그림만 보고도 그 학생의 성격을 아주 잘 알아맞추셨거든요. 친구는 아마 그림을 보고 미술 선생님이 그 친구 내면을 꿰뚫어보았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래서 기분 나빠했는지도 모르고, qualia님 말씀처럼 내심으로는 기뻤을지도 모르고요. 수십년전 일이네요.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는 제 심리는 또 뭔지... 저의 별스럽지 않은 글로도 상상의 나래를 펴주시는 qualia님도 멋지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