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있는 대전에서 시아버님 산소가 있는 평택까지, 보통 두 시간이면 가는데 이번 추석날은 5시간 걸려 갔다.
남은 연휴동안엔 아파트 주변 산책하며 사진도 찍고, 가까운 미술관에도 잠깐 다녀오기.

이 식물의 봄, 여름 모습을 기억한다.
달개비, 또는 닭의 장풀.

지금 이 모습으로도 너는 여전히 달개비, 또는 닭의 장풀이야.

명아주. 키가 이렇게 큰 명아주는 처음 봤다 싶을 정도로 훌쩍 자라 있었다.
6.25땐 이것도 뜯어 먹었다고, 엄마가 늘 말씀하시던 그 명아주인데 이렇게 자란 건 억세서 못 먹었을 것 같다.

꽃 오래가기로 유명한 배롱나무도 이젠 이렇게 열매로 남고.

단풍이 꽃보다 더 아름다운 대표적인 예가 되는 화살나무.

예전엔 도토리를 말리시더니, 같은 자리에서 이번에 고추를 말리시는 분이 계시네.

고추 옆엔 땅콩이.


이른 바 버섯의 계절.

정읍에선 지금 구절초 축제가 열린다던데, 난 그냥 우리 집 앞 정원에서.



어떻게 이 여리여리한 식물에 Cosmos란 이름이 붙었는지. 한번 찾아본다고 하고 늘 잊어버린다.


극사실주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대전시립미술관으로.
극사실주의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울이라면 골라서 갈텐데, 이럴 때 지방에 사는 아쉬움이 살짝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극사실주의는 영어로 뭐라고 할까? Extreme Realism 이라고 주워 섬기다가 그건 절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가는 길에 본 깃발에 써있다 Hyperrealism 이라고. 아, 그렇구나.
나중에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니 이 분야의 미술을 Photorealism 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그래, 그게 더 귀에 익다.

미술관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동상.
나 저 자세 안되어서 중학교 체육 시험 볼때 애먹었는데.
아직도 못한다 ㅠㅠ

놀라셨나요?
극사실주의 작품이란 바로 이런 것.

여기서부터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그대로 옮겨 놓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것도 창작 행위라고 부르는 근거는 무엇일까?


너 낳아놓으니 딱 저만하더라, 옆에 있는 아이에게 한 마디 해주고.

나무 가지고 만든 것 같은데 나무가 아니란다.

꼼짝 안하려고 하는 이 두 남자 끌고 나오느라 휴...
도슨트의 설명에 의하면 별로 예술성 없어보임에도 극사실주의가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우선 복잡하지 않고 별다른 난해한 해석없이 친숙하게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 세상이 워낙 복잡해져가다보니 어느 한 구석에서는 이렇게 복잡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들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 개인적으로는 그리 큰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작년, 재작년 추석 무렵 찍은 사진들을 다시 들춰 보니 비슷비슷한 대상들이 담겨 있다.
내년 사진엔 좀 다른 곳, 다른 풍경, 다른 대상을 내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생각, 너무 안 움직이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