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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멈추지 않네 - 어머니와 함께한 10년간의 꽃마실 이야기
안재인 글.사진, 정영자 사진 / 쌤앤파커스 / 2015년 5월
평점 :
40대 후반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전국의 절터를 찾아다니며 꽃 사진을 찍었다.
다 큰 아들이 굳이 어머니와 동행한 이유는 처음에 불목하니, 즉 절에서 밥 짓고 물 긷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서였다고 한다. 불교 방송 PD였으니 불교와 전혀 연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넉살 좋은 편 아닌 아들에게 있어 절집을 방문하고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찍는 작업을 하는데 평소에 절에 꾸준히 다니시는 어머니와 함께 다니는게 더 편했으리라.
이렇게 다니길 10년. 400여 곳의 절터를 다녔다고 한다. 처음엔 절과 그 주위의 자연을 찍었으나 언제부터인가 그 속에 어머니를 넣고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꽃을 매만지는 어머니, 기도하는 어머니, 걷고 있는 어머니, 절 앞마당을 비로 쓸고 있는 어머니, 낙엽을 줍고 있는 어머니, 등등 자연스런 어머니가 자연 속에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들어가자 사진의 화면이 덜 심심해보였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덜 심심해보이는 정도를 넘어서 사진에 감동이 몇배 더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진 속 어머니의 모습은 때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아주 작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연 속에 한 점으로 들어가 있을 뿐이다.
서산 개심사, 공주 마곡사, 부안 내소사, 부여 궁남지, 예산 수덕사, 양산 통도사 등, 내가 가본 절도 있지만 아직 못가본 절의 사진이 더 많다. 특히 절이라기 보다 암자라고 해야할 오대산 염불암의 모습은 몇번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했는데 저자의 어머니도 처음에 아들 혼자 가서 찍어온 사진을 보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나보다. "우리나라에 이런 절도 있나?" 하며 신기해하셨다가 어느 날 그러시더란다. "그 좋은 데는 맨날 혼자만 다니나? 나도 같이 가면 안 되겠나?"
이 책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이 절집의 모습, 가을 수목에 들러싸여 소꼽장난 집처럼 놓여있는 염불암과 댓돌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는 사진을 한번 보아주시라 아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나무에 둘러싸여 세월 가는 것을 겪어내며 낡아가는 절집, 그리고 사람. 결국 사는게 그런거 아니던가.
꽃, 나무가 있는 자연 풍경, 절집 사진을 한 두번 보았던게 아닌데 왜 이 책의 사진들은 특히 더 뭉클한가. 잘 모르겠다. 최근에 보았기 때문에? 가장 나이가 들어 보았기 때문에? 가까이서 찍지 않고 멀리서 조용한 모습을 찍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그곳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 본능일텐데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내가 아주 멀리서 그 풍경을 바라보고 서 있는 느낌이다. 제목처럼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아무 소음 없는 조용하고 솔직하고 무던한 자연 앞에 마치 내가 말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맺힐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바람이 멈추지 않네라는 제목. 그래, 바람이 멈추기를 기대하지 말자. 한두번이면 몰라도 바람을 피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바람이 들고 남을 느낄 뿐이지.
거의 매일 고속버스를 타야할 일이 생긴 요즘, 책 읽을 시간도 많아졌다.
어딘가 길을 나서게 하고 더불어 나의 생각을 남기는데 사진이 얼마나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는지, 기록이 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