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미지 않은 시'라고 쓰기 전에, 그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잠시 고민해보았다.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그러지 않는가. 문학을 하는 사람이 해야하는 일 중 하나가 '정확한' 표현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문학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말에 공감했다). '꾸민다'고 하면 한자의 '장식'의 의미에 더해서 '조작'의 느낌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꾸민다는 것을 꼭 이렇게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 꾸미지 않은 시라고 하지 말고 솔직한 시, 수수한 시라고 해야했을까.
그녀의 시집은 다 사서 읽었다고 생각했었다. 처음 이 시인의 시를 읽은 건 2005년. 신문에 소개된 그녀의 시를 보고 처음 구입한 시집은 <아이들의 풀잎 노래 (1993)> 였는데 이 시집은 친정 엄마께 읽어보시라고 드려서 지금 내겐 없다. 중학교 교사인 시인이 현장에서 아이들과 겪은 일들을 마치 일기 쓰듯이, 때론 한숨 몰아쉬며 힘든 웃음 짓듯이, 솔직하게 써내려간 한편 한편이 한번 아니라 자꾸 읽게 만들었다. 같은 직업을 가지셨던 엄마도 공감하실 것 같아 보내드린거였다.
그보다 먼저 나왔던 시집, 이후에 나온 시집은 모두 구입해서 지금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의 풀잎노래>처럼 두번째 산 시집의 제목도 수수하다 <아내 일기 (1990)>. 소설도 아니고 시집의 제목이 이렇게 평범하고 소박해도 되나? 바로 연이어 구입한 시집은 <가장 쓸쓸한 일 (2000)>이다.
교직에서 정년 퇴임을 했을텐데 그 이후로 한동안 후작 시집이 안나온다 싶었는데 이 시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기가 살짝 엿들은 말> 제목을 보고 또 넘겨짚는다. 그 연세에 아기 얘기를 쓴 것을 보면 손주를 보았나보다, 학교는 정년 퇴직 하셨겠지. 그래서 학교에서 보는 아이들에서 손주들로 관심사가 옮겨졌나보다 라고. 이 시인의 시는 그렇다. 생각이나 관념에서 만들어지는 시라기 보다, 생활 속에서 나오는 시, 본인이 겪어서 만들어지는 시. 그래서 꾸밈이 없고 화려하지 않다. 그런데 뭉클하다. 이 시인이라고 해서 남들은 겪지 않는 특별한 경험을 해서가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일에서도 보통 사람들은 맨 처음 느낌만 알아차리고 지나칠 것을 시인은 그 일차적인 느낌이 지나가고 난 후 슬며시, 천천히 밀려왔다 사라지는 이차적인 느낌을 놓치지 않는다.
아무리 잘 쓰여진 시라 할지라도 우리 삶의 생생한 경이로움을 다 표현해낼 수는 없다. 위대한 시는 삶 그 자체일 터이므로, 진짜 시인이란 삶의 진짜 주인으로서 하루하루 투쟁하듯 어렵게 운명을 개척해나가며 살아가는 우리 장삼이사(長三李四)들, 우리들 평범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112쪽, 시인의 말에서 인용)
어린 손주들을 보며 쓴 시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인지 이 시집엔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시들이 많다.
어제 남편에게도 읽어준 시,
요즈음 제법 긴말 배우기 시작하는
호기심 많은 우리 아기
할머니 방 장롱 서랍 어느 구석에서인가
구리로 만들어진 옛 귀이개 찾아내선 묻는 말
"할머니, 이거 누구 숟가락이에요?"
(42쪽, '귀이개' 전문)
아이들은 저절로 시인이다.
시집의 발문을 쓴 사람이 소설가 '현기영'이다. 소설가가 시집의 발문을 썼나 하고 읽어봤더니, 양정자 시인의 부군이시란다. 시 중에 남편 이야기가 간간히 나오고, 특히 시인이 40대에 쓴 시집 <아내일기>중에 나오는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며 발문을 읽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 아내의 시에 대한 특별한 감상, 무기교가 특징인 그녀의 시에 대해 쓴 글 속에 담담하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내에 대한 애정과 정성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시인의 이전 시집에 실린 사진과 같은 얼굴, 같은 미소이지만 이번 시집 속의 사진엔 그녀의 머리가 하얗게 쇠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