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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몇권 되진 않지만 근래 읽은 일본 작가들의 소설엔 모두 작가들의 삶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어떤 인생 경로를 걸어왔는지.
순탄치 않았던 삶이 소설을 쓰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소설 속에 작가의 삶이 인용 된 것일까.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읽는 사람은 그런 배경을 알고 읽다보면 작품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푹 빠져봐도 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게 사실이다.
엔도 슈사쿠. 이 작가 역시 1923년에 태어나 1996년 세상을 뜨기 까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생을 보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3살때 만주로 떠났다가 7년 후 부모의 이혼으로 일본으로 귀국. 세례를 받고 일본에서 대학을 마친후 프랑스 카톨릭 대학으로 유학. 건강이 좋지 않아 귀국하여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 건강이 계속 안좋아져서 이 책 <깊은 강>을 집필하는 동안에도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하여 결국 마지막 장편 소설이 되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관속에 함께 넣어졌다는 이 책.
이 책은 시작이 인상적이다. 가망없다는 선고를 받고 병실에 누워있는 아내 옆을 지키는 남자의 귀에 병실 창 너머로 들리는 군고구마 장수의 군고구마 사라는 소리로 시작하는데, 웬지 일부러 지어낸 상황같지가 않다. 오래 병실 생활을 했던 작가이니 실제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들은 적 있던 군고구마 장수의 소리가 인상 속에 남아있다가 이렇게 소설의 첫머리로 등장시키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한 생명이 꺼져가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먹고 살기 위해 땀 흘리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이 세상은 엄연히, 무심하게, 어쩌면 냉혹하게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군고구마 사라는 외침은 얼마나 간절하고 아쉽게 들릴 것인가.
아내는 눈을 감으며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다시 태어나겠으니 꼭 자기를 찾아달라고.
남자에게 그녀는 무던한 아내였지만 살아있을 당시 한번도 잘 해 준 기억이 없는 아내의 그 말이 남자의 마음에 새겨진다.
이 남자 이소베 외에 이 작품엔 세 명의 다른 주요 인물들이 나온다.
동화작가 누마다는 외로웠던 어린 시절, 유일하게 자기의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통해 준 개와 억지로 이별한 후로 동물들에게 애틋한 정을 가지고 되어 주로 동물들의 이야기를 쓰는 동화작가가 되었다. 그가 큰 병을 얻어 수술을 받는 도중 위기의 순간이 오게 되고, 바로 그 순간에 그가 키우던 새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새의 죽음이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 한사람의 인물, 기구치라는 남자가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동료와 둘이 살아남게 되었는데 서로 의지하여 버텨나가는 상황에서 누구 하나라도 먼저 죽어 혼자 남게 되면 남은 사람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에 옆의 동료는 인육까지 먹고 버틴다. 그가 먹은 것이 죽은 다른 동료의 인육이었던 것을 알고 그는 평생을 죄책감으로 시달리다 병을 얻어 죽게 되었다는 것을 기구치는 뒤늦게 알게 된다.
대학 시절, 신부가 되려던 남자를 장난 삼아 유혹하고 다시 버려서 신부의 꿈을 흔들리게 만들었던 일이 있는 여자 미쓰코. 짧은 결혼 생활도 끝장이 난후 예전에 자기가 버렸던 남자가 신부가 되어 머물고 있다는 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이들 넷이 공통으로 향한 곳은 인도이다. 모두 어느 정도 인생의 깊은 속까지 들어가 본 경험을 한 사람들이 인도의 갠지스 강, 삶과 죽음이 어우러져 있는 그 강을 보며 각자 자기의 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오랜 투병 생활을 해왔으며, 카톨릭 세례를 받고 신의 존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는 작가의 생각이 네 사람의 행로와 생각으로 분산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여러 각도에서 해석 가능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작품 자체가 '깊은 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예술상 수상을 하기도 했다는 이 소설.
작품 속 인물의 경험과 생각이 직접 서사로 드러나기 보다는 상징과 은유로 전달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때문에 별점 네개에 체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