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지방광역시이지만, 버스 타고 조금만 벗어나도 소위 말하는 '시골'이 나온다.

아침 첫 버스가 8시인 것을 확인하고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섰다. 7시 20분.

갑사가는 버스를 타는 곳엔 5~60대 쯤 되는 아주머니들 대여섯분이 앉아계셨다.

작은 배낭을 메고 계신 저분 배낭엔 뭐가 들었을까.

모두 편한 바지에 운동화 차림. 나만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있었다.

평소에 치마를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비오는 날엔 치마, 그 중에서도 원피스가 제일 편하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입고 나온거였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더니, 40여분 버스가 달리는 동안 자리가 들썩 들썩.

논이 보이고 밭이 보이고, 일하는 사람은 그 속에서 드문드문 보일뿐.

사람의 물결, 높은 건물, 바쁜 걸음. 도시의 풍경과 얼마나 다른가.

가는 동안 읽으려고 가지고 갔던 책은 꺼내지도 않았다.

버스 창 밖으로 능소화, 배롱나무, 나리꽃, 접시꽃 등 구경하는게 더 재미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10여분 쯤 걸어올라간다.

아직 손님있을 시간도 아닌데 입구의 음식점들은 벌써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예전에 아이를 데리고 왔을 때 생각이 났다. 길에서 파는 군밤 사달라, 음료수 사달라, 공룡 장난감 사달라 졸라댔었지.

비는 오지 않고 있었지만 길은 젖어 있고, 나무도 젖어 있고, 물소리가 더 맑고 크게 들렸다.

 

종무소 들어가기 전에 가방에서 양말을 꺼내 신느라고 앞마루에 잠시 앉아 앞을 보니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이 참 소박하고 고즈넉하고, 그냥 그렇게 앉아 있고 싶었다.

종무소에서 나와 대웅전에 들어갔다. 들어왔으니 절을 올렸는데 이번에도 역시 아무것도 빌지 않았다.

 

경내를 한바퀴 주욱 둘러보고, 버스 시간에 맞춰 방금 올라왔던 길을 내려왔다.

 

 

 

 

 

 

 

 

 

 

오늘 좀 이상하네.

'갑사에 다녀왔다' 이렇게 한줄이면 될 것을

이렇게 죽죽 늘여쓰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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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5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07-15 08:29   좋아요 0 | URL
네, 이번 여름은 단순하고, 조용하고, 천천히 가고 있네요 아직까지는. 이렇게 가는 시간들도 마음 속에 어떤 결을 남길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제가 원래 더위를 무척 많이 타는 편이었는데, 해가 갈수록 더위를 느끼는 정도가 점점 약해지네요. 요즘은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서늘함을 느끼기 시작해서, 잘때는 영낙없이 이불을 덮고 잔답니다.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섰더니, 왔다 갔다 두시간이 걸리는 거리지만 집에 돌아온 시간이 오전 11시가 채 안되더군요. 연꽃은 칼라 사진이 더 예쁘긴 한데 그냥 여기엔 무채색으로 올리고 싶었어요.

파란놀 2013-07-15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것도 빌지 않은 마음을 빈 셈 아닐까요? ^^;
느긋하게 즐거웠으니
여러모로 느긋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되었구나 싶어요.

hnine 2013-07-15 08:32   좋아요 0 | URL
저도 뭔가 빌어보고 싶은데 막상 절을 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머리 속에 떠오르지가 않아요. 이상하지요.
이제 버스편도 잘 알아놓았으니 앞으로도 저곳은 자주 가게 될 것 같아요.

상미 2013-07-15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즈넉한 느낌이 나는걸~~
혼자 다녀온거야?
우리 한번 봐야지? 언제쯤 볼까나??

hnine 2013-07-15 13:07   좋아요 0 | URL
응, 혼자~ ^^

icaru 2013-07-15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홀로 우연히 다녀온 외출이었는것 마냥, 홀가분하고 고즈넉하니 좋네요.
시내 버스 잡아타면, 괜찮은 절이나 산이 나오는 광역시 정말 근사해요! ㅎ

hnine 2013-07-15 20:28   좋아요 0 | URL
일단 집을 나서면 되는데, 그 한발자국 떼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홀가분, 고즈넉, 그 두 단어가 정말 딱 맞는, 짧은 외출이었어요.

안녕미미앤 2013-07-15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시선따라 움직임따라가니 잠깐이지만 조용하고 근사한 시간이 되는군요^^ 감사해요 앞으로도 늘여써주세요 히히

hnine 2013-07-15 20:30   좋아요 0 | URL
종교와 상관없이 가끔 산사로의 외출, 저는 좋더라고요. 가는 길에 꽃구경도 많이 했는데 사진을 미처 못 찍었어요. 여긴 벌써 목백일홍 (또는 배롱나무)이 피기 시작했더군요. 이게 핀걸 봐야 저는 진짜 여름 같아요.

세실 2013-07-1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린이랑 함께가 아닌 혼자....
가끔은 혼자만의 여행도 필요하지요.
전 요즘 커피숍에서 혼자 책 읽기 하고 있습니다.

hnine 2013-07-16 10:04   좋아요 0 | URL
일부러 혼자 하지는 않지만 가끔 혼자해보는 것도 잘 하는 편이어요.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지요.
커피 좋아하시고, 책 읽기 좋아하시니, 커피숍에서 혼자 책 읽기,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전 커피숍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 구경하느라 책 잘 못 읽어요 ㅠㅠ

안녕미미앤 2013-07-19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종교와 상관없이 hnine님 시선따라 움직임따라 산사로의 외출^^
다시한번 갔다오니 또 하루가 풍성해지는 느낌이에요, 감사해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