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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물론 그가 어느 정도 나이대의 작가라는 것을 알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실제 나이보다 글에서 풍기는 연배가 더 들어보일 때도 있고, 반대로 실제 나이보다 글에서 풍기는 느낌은 훨씬 젊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 작가의 경우, 적어도 이 책에서 짐작되는 그의 나이는 딱 그 나이 정도였다. 글을 읽으며 작가의 나이에 그렇게 특별히 예민하게 추측해보는 편은 아닌데 지금 이렇게 운을 띄는 이유는, 아마도 처음의 기대보다 조금 못미치는 실망감을 둘러둘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 치고 김연수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처럼 그의 소설을 아직 한편도 읽지 않았다 할지라도 적어도 이름은 귀에 익었을 작가.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작가의 글을 처음 대하게 되었다. 아마도 작품보다 작가가 더 궁금했었나보다. 그래서 모르는 새 그만큼 기대도 높았기 때문일까? 에세이는 좀 더 있다가 냈으면 더 깊은 맛이 나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슥슥 넘어가는 페이지, 그다지 집중하지 않아도 읽어갈 수 있었다라는 것은 적어도 내 경우엔 오래 기억에 남을 책은 아니라는 얘기.
주제가 꼭 무겁고 독특한 것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용에서는 좀 더 자기 색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작가이니까 물론 문장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군데군데 재치와 감성이 엿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인상에 남을 정도는 아니어서 아쉬웠다. 하루키의 에세이의 경우 보통 두부, 와인, 옆집 이웃 등,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소재의 글임에도 읽다보면 어느 새 그 만의 독특한 시각과 해석에 신선한 자극을 받으며 한 권을 다 읽게 된다. 20, 30대, 흉내낼 수 없는 빛나는 감성이 반짝반짝 빛나는 글이 아니라면, 한 분야의 경륜이 무르익어, 그것이 세상을 보는 일관성있는 사고체계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깊은 맛이 나는 글이던지. 샐러드처럼 상큼하던지, 묵은지처럼 깊은 맛이 나던지. 통통 튀던지 진중하던지. 이 모든 구분을 무색하게 할 만큼 개성이 드러나든지.
덜 익은 김치를 맛보았을 때의 느낌이랄까.
그래도 그 중 제일 공감이 되었던 부분이라면, 개인적인 안좋은 일들로 거의 1년이라는 시간동안 경험하고 있던 어둡고 긴 터널에서 뜻하지 않게 빠져나오는 계기가 된 것은 아프리카의 뜨거운 햇살과 건기의 바람을 만나는 순간이었다는 252쪽의 내용이었다. 몸이 열리는 순간 마음도 열리게 되더라는 그의 경험담이었다. 절망과 좌절, 두려움, 공포 대신 땀과 거친 숨결의 세계가 그를 구원했다는 말이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시선을 제일 오래 붙잡은 문장이 아닐까 한다. 오래 달리는 댓가로 숙면을 보장하는 단순한 삶. 단순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할까? 나도 경험해보니 어느 정도는 맞더라고 고개 끄덕이면서.
40대 초반이라는 나이는 확실히 아직 젊은 나이인가보다. 그래서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이 충분히 많지만 그래서 또 그의 생각과 결론에 푹, 맘 놓고 빠져들기도 어려운.
애매한 나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