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을 다시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또다시 병을 이겨냈다는 기쁨에,

할 일이 또하나 생겼다는 사실에,

흐르는 물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모습에,

재난과의 싸움에서 잠시 휴식할 수 있다는 생각에... (44쪽)

 

이럴 때 당신은 얼마나 부자처럼 느꼈던가요, 라는 물음이 나온다.

우리는 어떤 때 부자처럼 느끼는가?

부자가 되는 느낌이라기보다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 때와 비슷한 것 같아 내 경우를 적어본다.

-아침에 눈을 뜸과 동시에, 어제의 모든 실수, 모자람, 사건들을 딛고 또 새로운 하루가, 새로운 기회가 내게 주어졌구나 라는 생각에 느닷없이 누구에겐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을 때가 있다.

-희망이 없다, 변할게 없다, 점점 나빠진다 등등, 부정적인 생각에 묻혀 힘들게 힘들게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거기서 박차고 나오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행복하다. 눈물나게.

-나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데 서툰 나는 누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주어질 때, 그때서야 나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 행복하다.

 

 

 

그녀는 모았다. 재난도 상처도 다 찾아내어 차곡차곡 쌓았다. 상처란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참 후에야 얻게 되는 흔적이다. "아! 그는 내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나!" 라고 말할 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준다'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받은 것들을 조금씩 조화롭게 정리하며 언제 받았는지, 얼마나 받았는지 헤아려본다. 받은 보물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녀는 뒷걸음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보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처럼. 그녀는 뒷걸음친 후 다시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는 다시 뒷걸음치면서 터무니없고 수치스런 이야기들은 자신이 있던 먼저의 자리로 밀어내고, 어둠에 묻힌 추억들은 밝은 곳으로 끄집어낸다.  (45쪽)

 

모을 수 있구나. 재난도 상처도.

모아서 이렇게 조화롭게 정리할 수도 있구나.

뒷걸음치기, 밀어내기, 끄집어내기의 표현이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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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1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이 소설, 블랑카님의 리뷰로 마음에 들어서,
읽고는 가슴에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리뷰를 보니 다시 반가워요.
요즘 왜 이리 풀어내지 못하는 말들이 많은가 몰라요.^^ 제가요.

hnine 2012-12-17 20:59   좋아요 0 | URL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책을 선뜻 읽을 생각을 한건 순전히 알라딘 서재에 들락달락 거린 덕이지요.
아직 반 정도 밖에 못 읽었어요. 표지 디자인이 무거워서 그런지 부피도 꽤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두꺼운 책은 아니더군요.
풀어내지 못하는 말들...저도 그래요. 그러다가 제가 풀어내지 못하고 있던 말을 누군가가 아주 정확하게 짚어낸것을 글이나 말에서 발견할 때의 시원함과 동시에 살짝 열등감이란...

blanca 2012-12-1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책 너무 좋았어요. 나인님의 페이퍼로 다시 그 아름다운 대목들을 되새기게 되네요

hnine 2012-12-17 21:01   좋아요 0 | URL
아직 다 못읽었지만 지금까지의 느낌은 이 책은 스토리를 따라 읽는데서 재미를 찾기보다 이렇게 숨어 있는 표현들, 묘사의 뛰어남, 이런 것을 찾는 것에서 더 즐거움을 느끼는 류의 책 같아요. 얼른 읽어야지요~ ^^

스파피필름 2012-12-1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 hnine님, 연말이 다가옵니다. 늘 그러한 연말이지만, 한해 잘 마무리 지으시고 또 밝은 새해를 맞기를... 빌어봅니다.

hnine 2012-12-17 21:05   좋아요 0 | URL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것이 있지요? 우리 나라에서 많이 알려져있지 않은 작가라는데 저도 처음 접하는 작가랍니다. 그래서 비교적 선입관이나 편견 없이 읽을 수 있네요.
한 해 마무리라...저 오늘 서울 다녀오는 고속버스 속에서 생각했답니다. 마무리는 생을 마칠 때쯤 딱 한번만 해야겠다 매년 하기 귀찮아서요 ^^ 스파피필름님 말씀은 무슨 뜻인지 압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잊지않고 이렇게 들러주시니 더 마음이 따땃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