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새벽에 일어나 영화를 보며 두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한때는 새벽에 일어나 운동부터 하여 몸을 풀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새벽에 일어나 계속 이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이야 말로 한번에 읽어치울 책이 아니라 조금씩 매일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양보다 질로, 즉 페이지를 넘기는 것보다, 한줄 한줄 집중해서 읽으려 하고 있다.
위의 저 겉표지를 벗겨 내고 읽고 있는데 그래서 더 내게 눈에 익은 표지는 이렇다.
'쉴 휴 (休)'
오늘 읽은 것중 일부분을 발췌하여 올려본다. 대략 352쪽에서 380쪽 사이에 있는 내용이다.
삶을 바르게 살면, 삶을 진실로 살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진실로 사는 자는 죽음을 기꺼이 맞이 한다.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사람에게는 죽음의 두려움이 일어난다.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사람에게 죽음은 더 살아야 될 생과 시간과 기회를 앗아가는 저승사자가 된다. 여기에서 두려움이 떠오른다. 이 두려움은 죽음에서 오는 게 아니라 제대로 살지 못한 삶에서 온다.
왜 우리는 삶을 놓치는가? 왜 우리의 몸은 나이를 먹지만 정신은 나이를 먹지 못하는가? 무언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렸을 때 타협을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하여 자신의 존재를 판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데 타협을 한다. 거기서부터 그릇된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이런 사람이 되라 하고 아버지가 저런 사람이 되라 하며 사회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라 강요한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간다. 그러다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리라고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왜 저는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합니까? 이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라는 질문을 하는 그대는 두려움을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그저 없애려고 한다.
무조건 문제를 없애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가면을 벗으려고 노력하라. 누구의 말을 들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깨우치고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사실 그릇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좋은 증상이다. 사실 아무도 그대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없다. 어떤 인도자도 바른 인도자가 될 수 없다. 인도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인도를 맡기면 그는 그대 인생에 해가 될 것이다.
틀 없는 삶을 살라. 틀과 이론과 체계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라. 이 순간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라.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써 있는 두줄은 이 모든 내용을 집약하지 않나 생각된다.
무대에서 내려오라.
삶을 공연으로 만들지 말라.
-Osho-
보이기 위한 삶을 살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를 변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읽지 않는다.
그냥 읽는다.
그냥.
목적없이 읽지만
읽고 나면 차분해져서 좋다.
5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다 읽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조금씩 또 읽으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