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학교에서는 1년에 몇 차례 학부모를 학교로 오게하여 공개 면담 혹은 상담을 한다. 어제가 바로 이 날이었기에 남편과 함께 아이 학교에 다녀왔다. 과목별로 면담을 마치고 나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대체 이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어떤 과목은 수업 시간에 좀처럼 집중을 안하고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아서 숙제를 내줘도 뭘 해오라는 것인지 이해를 못해 엉뚱하게 숙제를 해올때가 있다고 한다. 반면, 어떤 과목은 매우 재능이 있어보여서 눈여겨 보고 있다고 하신다. 제일 끝까지 남아서 하고 있는 아이가 바로 이 아이라고. 또 어떤 과목은 수업 시간에 옆의 아이와 떠드느라고 그 시간에 충분히 마칠 수 있음에도 다 못해서 숙제로 떠안고 갈 때가 많다고 하신다. 더 잘할 수 있을텐데 급하게 마무리 짓는게 안타깝다고 하는 과목이 있는가하면, 지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서 가끔 과민 반응을 보일때가 있다고 한다. 이게 모두 한 아이에 대한 과목별 소견이라면 그 부모가 황당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 아이가 바로 내 아이고 내가 그 부모.
어릴 때부터 좋고 싫은 것에 대한 반응이 뚜렷이 달랐지만,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 이렇게 생각했었다. 2년 전 적성검사 결과를 가지고 상담 선생님과 얘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선생님 말씀이, 자기가 앞으로 하고 싶은 걸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은 하기 싫어도 해야할 필요가 있음을 집에서 엄마도 얘기해주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름 그런 잔소리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성향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나보다.
싫어도 싫다 소리 못하고, 해야한다고 하면 군소리 없이 참고 해야하는 줄 알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이런 나를 닮지 않은게 오히려 다행스런 생각도 없잖아 들지만, 그래도 이 세상 살아가려면 싫은 것도 해야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아이가 알아야 하는데.
그건 그렇고, 어제 학교에 갔다가 어떤 엄마로부터 들은 말이 나를 두번 주저앉게 만들었다.
아이의 사춘기와 엄마의 갱년기가 겹치는 경우, 바로 최악의 경우라고.
내 얘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