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ㅅ아, 나 진짜 멋있는 가수 알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가 내게 말했다. 그당시 언니는 중학교 2학년,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맏이인 내게 친언니는 아니었고 이종사촌 언니였는데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 잠시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면서 흥얼거리는 노래는 내가 듣기엔 영 아니었다.
"언니, 가사가 꼭 옛날 노래 같애."
"옛날 노래라니~ 실제로 들어보면 얼마나 좋은지 알아? 노래도 진짜 잘 불러."
나중에 TV에서 그 가수가 직접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어보았다. 그래도 나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지만 그런 쪽으로 앞서 가던 나는 당시 유행가는 물론이고 흘러간 옛노래까지 가사를 다 외워 부르고 다닐 정도였다.
그 언니는 예정대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내가 그 언니 나이쯤 되었을 때 비로소 그 가수의 노래가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어왔다.
그의 노래중 지금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이 노래이고,  youtu.be/KWghopHrTHs
그때 언니가 흥분해서 흥얼거리던 노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친언니가 없던 나는 언니뻘 되는 사람은 누구든지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큰아버지의 둘째딸인 사촌 언니는 가끔 취직 문제로 서울에 올때면 우리집에서 자고 갔다.
그때 그 언니는 고3, 나는 역시 초등학생이었다.
이번엔 그 언니가 알려준 가수이다.
"얼굴은 진~짜 못생겼거든. 그런데 목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 노래도 좋고."
"언니, 여기에 가사 좀 적어줘."
언니가 적어준 가사를 보니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나중에 TV에서 보았는데 언니 말대로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가수의 마스크가 아닌 것이다. 마치 옆집 아저씨 같고 촌스럽기 그지 없는 모습. 그런데 목소리가 정말 곱다. 무슨 남자 목소리가 저리 고울 수가 있나 싶었다.  youtu.be/6wgL-zzDzkg 
그 수수하고 꾸밈없어 보이던 그 가수가 지금의 거물급 사장님이 될 줄이야.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버지께서 조그만 탁상용 라디오를 사주셨다. 이제는 언니들로부터 새로운 노래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TV에서 보게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끼고 살던 라디오에서 듣고 따라 부르게 되었다. 한번 듣고 마음에 꽝 박히는 노래들이 간혹 있었는데 이 노래는 얼음같은 차가움과 절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도 애잔했고 가사는 더욱더 그랬다. 혼자서 흥얼흥얼 많이도 불렀던 이 노래를 지금도 혼자 길을 걸을 때 나도 모르게 흥얼 거리고 있다. 작정하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가 먼저 나오고 내가 지금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는 노래.  youtu.be/7Cj_hDwaJHM  

 

학교 졸업하고 처음 자리잡은 직장이 대전으로 이전하여 나도 같이 따라 내려갔다.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주말이 되면 서울의 집으로 올라갔다가 월요일 새벽에 내려오는 생활을 했다. 나중엔 귀찮아서 그만 두었지만.
실험을 의뢰한 사람과 그것을 맡아 해주는 사람으로 알게 되어 조금씩 친해지던 사람이 있었다. 아주 순박한 외모에 키도 작았지만 나는 좀 특이하게 예나 지금이나 외모를 별로 따지지 않는 사람이라서 부담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문제는 항상 내가 그 '부담'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 발생한다. 어느 날 저녁을 함께 먹고난 후 그 사람이 내게 자기의 꿈을 얘기하는 것이다. 자기와 같은 전공을 가진 여자와 결혼을 해서, 같은 실험실에서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것이 꿈이란다. 나는 왜! 그 꿈을 내게 말하는 그 사람의 의도를 그리도 부담스럽게 여겨야 했던 것일까.
어느 주말, 만나자는 말에 서울 가야한다고 했더니 가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들으라고 테이프에 노래를 잔뜩 녹음해서는 나의 일터 정문 수위실에 맡겨 놓고 갔다. 그 테이프에 들어있던 노래중 제일 좋던 노래는  youtu.be/ADHIFTFESQY 
지금도 눈이 오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생각난다. 그 사람은 지금 나의 모교의 교수님이 되어 계시다.



요즘은 그때 만큼 노래를 잘 못 듣고 있어 아쉽다. 더구나 요즘 그룹들은 이름도 얼마나 특이하게 짓는지, 따로 공부해서 알아낼 수도 없고 참... youtu.be/oIHikjAGy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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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1-10-01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는 대학가요젠지 무슨 가요제에서 두번째 상을 받았잖아요. 저는 처음 듣는 순간 그 노래에 쀨이 팍 꽂혀서 이 노래가 반드시 대상을 받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대상은 인상좋게 생긴 유열인가 그 사람이었나? 바윗섬? 암튼)큰상을 못 받아서 막 아쉬워하고 그랬었던 기억나요. 나중에 이 노래 음악다방 가면 종종 신청하고 그랬었죠. 간만에 옛날 생각도 하고 좋군요^^

hnine 2011-10-01 20:56   좋아요 0 | URL
쀨~ ㅋㅋ
노래와 사연이 잘못 링크되어 있는 것을 지금 수정했어요. 이 정석 노래 좋지요. 조금 있으면 첫눈이 올 것이고 그 노래 생각이 날 거예요 노래에 얽힌 사람 생각도 잠시 날 것이고..^^

노이에자이트 2011-10-0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당시 청소년이나 20대보단 기성세대가 더 좋아했지요.이미자 나훈아 노래 좋아하던 사람들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좋아했을 거에요.동영상은 Q지요?

'행복'이나 '그것은 인생'은 당시 기성세대에겐 좀 생소한 풍이었죠.젊은이 위주...지금의 청소년이나 대학생에겐 그 당시의 기성세대나 젊은 세대 모두 기성세대...

hnine 2011-10-01 21:04   좋아요 0 | URL
어이쿠, 우리 가요평론가 선생님 방문해주셨군요 ^^
이런 날은 가만 두면 연줄연줄 계속 노래만 듣게 돼요. 나쁘지 않지요.
생각해보니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한동안 금지곡으로 묶였던 적도 있었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10-01 21:21   좋아요 0 | URL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내고 얼마 안 되어 조용필이 마약복용으로 5년 정도 연예계에서 퇴출되었죠.노래 자체는 금지곡이 된 적은 없었을 겁니다.그리고 재기하여 '촛불'을 내고 성공했죠.'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일본군국주의자들이 다시 부산을 통해 한국을 재정복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 있긴 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괴담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hnine 2011-10-02 09:24   좋아요 0 | URL
아, 노래가 묶여있던 것이 아니라 가수가 묶여있던 것이군요. 조용필 대마초 복용 사건도 기억이 나는데 저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것과 별개로 말씀하셨다시피 가사가 의미하는 것이 일본에 대한 향수를 그리고 있다고 해서 금지곡이 되었었는 줄 알았어요.

잘잘라 2011-10-01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마지막 연주곡이 참 좋아요. 테마는 봄인데 아까 낮에 밖에 나가서 제대로 느끼고 온 가을 햇살이 떠올라요. 어? 플레이 해놓고 댓글 쓰는데 벌써 끝났어요. 아쉬워서 한 번 더! ^^

hnine 2011-10-02 09:22   좋아요 0 | URL
에피톤 프로젝트, 좋더라고요. 이름에 관심이 많은 저는 또 막 궁금해져요. 이 이름의 유래는 무엇일까하고.

2011-10-02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2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10-03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에 얽힌 hnine님의 성장기 & 연애담(이라고 하기엔 좀 어울리지 않나요? ㅎ)이군요~
아마 제가 산 물건 가운데, 현재 가장 많이 쓰고 있는 것이 라디오 일거예요. 병원에서 두 번 입원해야 된다는 소식듣고 그간 몇 년동안이나 뒷전에 밀어두고 있던 거 바로 샀지요.

라디오는 전자기기로도 들을 수 있겠지만, 아날로그 방식으로 채널 살살 돌려가며 듣는 맛이 좋더라고요. 라디오 말고 컴퓨터용 스피커는 2만원도 안되는 것이라.. 음반들을때도 유용하고요~


hnine 2011-10-03 09:43   좋아요 0 | URL
오래 전 짐가방 들고 혼자 외지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구입한 것이 주방 도구, TV, 이불, 이런 것 아니고 라디오 겸용 CD player였어요. 그당시 저에게는 거금 110 파운드나 주고서요.
지금 쓰고 있는 라디오도 채널 살살 돌려가며 듣는 것인데 성질 급한 저는 바람결님처럼 살살 돌리기보다는 확 확 돌려서 채널 잡으려면 몇번을 왔다 갔다 해야하지요 ㅋㅋ
그런데 병원에 두번 입원해야한다고 했으면 한번 더 입원하셔야 하나요??

비로그인 2011-10-03 10:09   좋아요 0 | URL
한번은 올해 사월 그리고 얼마 전인, 팔월이었어요 ^^ 날이 추워지니깐 라디오 사러 조금 멀리 전철타고 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꽤나 추웠는데, 집에 가져 오니 연하게 겉에 습기가 묻어나던 장면. 그리고 맨 처음 연결해서 라디오를 듣던 기억.

아 벌써 10개월이 후다닥 지나갔습니다 :)

hnine 2011-10-03 13:52   좋아요 0 | URL
입원 얘기가 나오면 읽는 저도 일단 긴장이 되어서요.
건강만큼 소중한게 어디 있나요.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나니 매일 어떤 '별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별일 없이' 무사히 지내는 것도 감사하게 되네요.
또 입원하시는 일은 없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