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이 어머니께
-어버이 날에  

 

민이가 여섯 살 때
민이 아버지와 싸우고서
어디론가 떠나셨다지요?
그러니까 벌써 세 해째가 되겠네요.
이렇게 함부로 물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나요? 


어머니가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겠다는 민이가
오늘 글씨 물어 가며 비뚤비뚤
어머니에 대한 글을 썼어요.
딱 한 줄
뭐라 썼는지 궁금하지 않으셔요? 


아이 손톱을 깍아 주며
동무들이 잘 놀아 주느냐 물으니
아니라는군요.
맨날 똑같은 옷만 입고 온다고
아무도 가까이 와 주지 않는대요. 


민이 어머니 들리세요?
민이가 부르는 소리 


"엄마는 밥을 해 주었습니다." 

 

할 말 

 

현숙이가
내가 서 있는 쪽으로 오더니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래 무언데? 


선생님, 있지요,
이번에 나 청군 좀 시켜 주세요.
4학년 올라올 때까지 한 번도 청군을 못 해 봤어요.

 

 

새앙쥐  

 


식구들 잠든 사이
새앙쥐 한 마리가
부엌으로 나왔다. 


이 추운 겨울 밤
무슨 사정 생겼을까.
내쫓지 말아 달라는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러나 새앙쥐야,
우리 부엌엔
네가 가져갈 게 아무것도 없어.
누룽지마저 일기 쓸 때
내가 다 먹은걸. 


아니야, 있다.
그래 맞아,
어머니가 불 지핀 부뚜막이
아직은 따뜻할 거야. 


새앙쥐야,
한겨울 밤 새앙쥐야,
남은 그 불기라도 가져가렴.
온 식구들 불러다
한껏 안아 나르렴. 

  

사랑스런 아이들아......

 

 

 

 

 

 

 

 

 

 

임 길택.
1952년에 태어났고 강원도 탄광 마을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다.
가난에 찌들었어도 순수하기만 한 아이들을 보는 애처로움과 사랑이 그의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려고만 하지 않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주고 손톱을 손수 깎아주던 선생님 임  길택 시인은 1997년 마흔 여섯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08-30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시네요! 저도 이 책 빌려서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hnine 2011-09-01 11:28   좋아요 0 | URL
말없는 수다쟁이님, 미소 짓게 만드는 시도 있고 마음을 적시는 시도 있고 그래요. 꼭 한번 빌려 보세요.

순오기 2011-08-3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임길택 선생님~~~~~~~
'엄마는 밥을 해주었습니다' 딱 한 줄 글이 눈에 밟히네요.

hnine 2011-08-31 19:29   좋아요 0 | URL
뭉클하지요. 모르는 글자 물어물어 썼다니 쓴 글은 딱 한줄이지만 그날 따라 엄마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던 모양이어요.

2011-09-01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1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11-09-01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오덕 선생님 글을 보는 것 같았어요^^

현숙이 귀여워~ㅋㅋ
현숙아 나도 그 기분 알아~~ㅋㅋ

hnine 2011-09-01 17:26   좋아요 0 | URL
진주님, 그렇지요? ^^
이 시집엔 현숙이 외에도 여러 명의 아이들이 나와요. 유순이, 영미, 영근이, 순덕이, 종희, 혜숙이, 혜란이...시 속의 그 아이들, 지금쯤 어른이 되었겠지요.

bookJourney 2011-09-0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이 어머니께 ... 마음이 아려요.

hnine 2011-09-01 19:57   좋아요 0 | URL
이분 임길택 시인의 시집엔 그렇게 마음 아린 시들이 많이 들어있어요. <탄광마을 아이들>이라는 시집도 그렇고요.

같은하늘 2011-09-0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짠하다가 현숙이 때문에 웃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