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 주인
문 정희
시인을 꿈꾸다가 시 대신 땅에 나무를 심어
식물원 주인이 된 그가 말했네
상처없는 시가 없듯이
지상에 상처 없는 나무는 한 그루도 없더라고 했네
살아서 바람 앞에 흔들리는 목숨에
상처는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빛나는 증표
쓰라린 아픔으로 진물을 흘리지만
깊은 성찰을 던진다네
시건 나무건 상처가 있어 가엾고 사랑스럽지, 그러니까
상처는 그 자체로 참혹하고 아름다운 생명!
그것을 알아본 식물원 주인! 그는 벌써 빛나는 시인이었네
그가 키운 저 푸른 상처를, 바람 앞에 나풀거리는 생명들
뿌리의 감옥에 갇혀서도 자유롭게 흔들리며
하늘로 치솟는 나무들을 보며
누가 보라고 저리 푸르렀을까 물었더니
주인이 없지! 보는 사람이 보는거지! 라고 대답하네
시도 시인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다 가지듯이
: 시어로서 '상처'라는 단어가 저렇게 직접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시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 같기도 하고, 상처를 미화시키는 방식도 식상 해서, 아주 마음에 드는 시는 아니다.
그래도 라디오에서 시인이 직접 이 시를 소개하는 것을 들은 날 나는 무엇이 떠올라 끄적이게 했으니 고마와해야할 시라서 적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