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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길을 걷다, 제주올레 - 행복한 동행
임후남 지음, 이재영 사진 / 생각을담는집 / 2010년 7월
평점 :
아이가 생기기 전에 아이가 있으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을 꼽아 보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그랬는데 그 중 하나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비행기 타고 멀리 가는 그런 여행보다 함께 걷는 여행. 아이가 너무 어리면 무리이기 때문에 열살은 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러면서 나는 나이가 들어가 체력이 자꾸 떨어지는 것은 생각을 못했다. 조만간 한번 시도해봐야 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이 책으로 만들어져 나오기 전, 저자가 일부 내용을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부분 부분 올리던 때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다. 하나 밖에 없는 아이이니 부모가 얼마나 관심과 애정을 쏟을지는 역시 아이 하나만 낳아 키우는 부모들은 다 알리라. 저자 역시 남들보다 늦게 가진 아이를 잘 키워보자고 나름 이런 저런 노력을 아끼지 않는데 어디 자식 키우는게 내 맘 같은가. 더구나 일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늘 아쉽고 미안한 존재이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그 아쉽고 미안함이 일방적인 애정 공세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갈등이 서서히 두드러져 갈 무렵인 아이가 열 세살, 초등학교 6학년 되던 해에 저자는 아이를 데리고 제주 올레 길 여행에 나선다. 다행히 걷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이미 아빠와 함께 지리산 종주를 경험한 상태. 제주 올레 길 걷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아이와 함께 제주 올레길을 걸은 처음 4박 5일과 두 번째 3박 4일 동안의 여정의 기록이다. 제주의 모든 올레를 걸은 것도 아니고, 그리 오랜 기간의 여정도 아니다. 그럼에도 감동이 있다. 엄마가 모르던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모르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기쁨보다는 울음이 치솟는 과정이다.
'내가 열달 동안 배 불러 낳은 아이, 내 손으로 키운 아이, 내가 좀 잘 알아?' 어미로서의 이 본성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아이는 내 손을 떠나야 한다. 떠나고 싶어 한다. 그것을 인정하고 준비하는 것은 어미로서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에 어렵다. 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또한 그렇게 우리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오지 않았던가.
언젠가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부모로 기억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시골의사 박 경철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운' 부모가 되고 싶다고. 나는 어떤 엄마로 기억되고 싶은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잘 모르겠다. 나를 끝까지 믿어주고 사랑해준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만족을 위한 것. 아이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이어야 하는데 대부분 그러질 못하고 있다.
이 책의 글은 엄마가, 사진은 모두 열세살 아들이 찍었다. 사진을 찍는 아들을 뒤에서 보는 엄마는 무엇을 느꼈을까.
자식과 함께 할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함께 걸으며 여행할 기회는 맘 잡고 만들지 않는 한 저절로 생기긴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제주 여행 책이라기 보다는 아이와 함께 커가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