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모자 울음을 터뜨리다 - 독일 올덴부르크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 십대를 위한 눈높이 문학 10
베아테 테레자 하니케 지음, 유혜자 옮김 / 대교출판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읽은 빨간 모자 이야기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어린 여자 아이가 편찮으신 할머니에게 심부름을 가는 데 이미 할머니까지 잡아먹은 늑대가 이 여자 아이마저 잡아먹으려고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 흉내를 내며 기다리고 있다는, 좀 무서운 이야기였다. 그런데 만약 이 여자 아이에게 정작 위험한 것이 늑대가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면?
우리에게 가족은 무엇인가?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물리적인 공간으로서 집이 언제나 우리에게 안식처이고 휴식처가 아니듯이, 가족 역시 항상 나의 보호막이 되어 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 안에서 더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어려서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를 때 그런 상처를 입은 아이 말비나는 이제 겨우 열 몇 살 된 키만 크고 삐쩍 마른 여자 아이이다. 어릴 때 겪었던 일이 뭔가 잘못 된 일이었다는 것을 자라면서 알게 되고, 그것이 한때의 사건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말비나에게 강요되는 것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지자 가족을 향해 조심스레 도움을 요청하는 손짓을 지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과 은폐. 조용히 너만 알고 있으라는 암묵적인 지시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들 아닌가? 왜 그랬을까. 읽으면서 나의 관심은 어린 말비나에게 처음 일어났던 일 보다 오히려 그 후 말비나에게 주어진 압력과 강요로 더 쏠렸다. 결국 말비나는 가족이 아닌, 친구, 친구의 엄마, 이웃 아줌마 등, 보다 더 말비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그 침묵 속에 은폐되어 있는 자아를 끄집어내기 위해 마침내 입을 연다. 그동안 말비나가 혼자서 겪었을 마음의 고통, 그 고통의 사슬을 스스로 끊어내기까지 필요했던 것은 바로 용기였다. 모두가 침묵을 지킬 때 사실은 이렇다고 당당히 입을 열 수 있는 용기.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 그것은 결단이고 의지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이며 사랑이다. 내가 진실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함으로써, 이 세상에 알림으로써, 조용하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두려운 것인가. 아니면 그로 인해 내 자신이 이목 집중의 대상이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인가. 아마도 제일 두려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내가 그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또 한번 외면당하고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와 뜻을 같이 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없을까 기다리며 아쉬워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이 나와 제일 가깝다고 생각되는 가족 중에 있으리란 법이 없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놀란 것 중 하나였다. 가족이 항상 나에게 호의적이진 않음을, 오히려 선과 악이라는 양날을 모두 가지고 있을 수 있음을 말이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고, 내게 다가오는 관심과 사랑의 손짓을 외면하지 말자. 의외로 나의 지지자는 가족이 아닌 그 누군가 중에 있을지 모르니까.
필요한 순간에 말비나처럼 용기를 낼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야한다. 살다보면 그런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분명히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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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2 1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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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2 18: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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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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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1-02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이라 말이 필요없는, 좋은 리뷰입니다.
결단, 의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사랑, 그리고 용기.

hnine 2010-11-03 04:43   좋아요 0 | URL
지금 저에게 부족한 것 다섯 가지이기도 하네요.
위의 책은 읽는 동안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결말이 지어져 마음이 놓이기도 했어요.

순오기 2010-11-02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리뷰를 쓰셨네요~
책표지에 쓰인 이름 석자도 반가웠어요.^^
온실에서 키울 수 없는 사회가 되었으니, 이 책을 많은 청소년과 부모들이 읽고 각성과 더불어 대비책과 해결책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대박을 기원하며...

hnine 2010-11-03 04:45   좋아요 0 | URL
초고 받아 읽고는 리뷰를 써두었거든요.
저도 반가운 이름들 보고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면서 기분이 좋았어요.

2010-11-02 2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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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04: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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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0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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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11-03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긍심을 가질때 더 당당해질수 있겠죠.
리뷰를 미리 써놓으셨다니 님은 참......
멋져요~~

hnine 2010-11-03 14:23   좋아요 0 | URL
처음 다 읽고 났을 때 그 느낌이 제일 생생할 것 같아서 미리 써놓았어요.
세실님 성함도 보고 반가왔습니다. 우리가 다 한식구가 된 느낌이었어요 ^^

2010-11-03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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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17: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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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0-11-03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분 서재에서 이 책의 리뷰를 보고 <빨간모자 울음을 터뜨리다>라는 제목이 동화 빨간모자에서 왔을까 생각했어요. 가족중에 있는 사건들로 힘들었겠지만, 진정한 용기를 지닌 말비나, 말비나를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해요.

hnine 2010-11-03 21:16   좋아요 0 | URL
내용상 동화 빨간 모자와 연관이 있지요. 그렇게 연관시켰기 때문에 작품성이 더 돋보인 것 같아요.

2010-11-06 05: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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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6 10: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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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6 2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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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6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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