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신문 보기가 겁난다.
전주의 어느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생활고에 시달린 가장의 절망적인 선택'이라는 제목을 달고있는 기사 내용을 읽어보니 남자는 33살, 그의 아내는 이제 31살이다. 그리고 초등학생인 9살, 10살 아들 둘.
한숨이 나온다. 이제 30대 초반의 나이에 결국 그 선택 밖에 없었을까. 9살 10살 아이들은 또 왜 그렇게 부모따라 가게 해야했을까.
보증금 300만원, 월세 15만원 단칸방에 살았었다고 한다. 두달 전 남자가 직장을 잃은 후 월세도 제대로 못내며 살았고, 빚만 자꾸 늘어가서 부인과 가정불화가 커져갔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막이야 어찌 알랴. 

가난이란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가난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듣고 자랐다. 늘 배가 고파있었다는 이야기, 시험날 학교에 갔더니 등록금이 밀려 시험 볼 자격이 없다고 교실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해서 교실 밖에 서서 시험 보는 친구들 구경만 해야했었다는 이야기, 전차 요금이 없어서 매일 1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통학하셨다는 이야기.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 못지 않다.
지금까지 한번도 배고파 본적도, 등록금 없어 학교에서 쫓겨날 뻔 한 적도 없는 내가 무슨 가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으랴 싶지만 그런 설움을 당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영원히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서도 안될 것이다. 

5년 전 쯤 되었나? 부모님께서 미국에 있는 남동생 집에 방문차 여행을 가신다고 하셔서 모시고 가진 못하지만 여행비로 보태쓰시라고 돈을 얼마 봉투에 넣어서 드린 적이 있다. 이런걸 왜 주냐며 안받으시겠다고 막무가내이신걸 억지로 찔러 넣다시피 해서 드리고 왔는데, 결국은 다시 내 통장으로 그 돈을 돌려보내셨다.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고 하시면서. 아주 큰돈을 드린 것도 아닌데 그냥 받으셔도 좋을 걸, 서운했지만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여동생과 전화하다가 그 얘기를 했더니 그때 여동생 내외도 부모님께 경비하시라고 돈을 드렸는데 그것은 받으셨다는 것이다. 여동생네에 비해 넉넉치 못했던 내 형편을 생각해서 그러셨겠지만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이전까지만 해도 남들이 어떻게 보던지 내 형편에 대해 전혀 부끄럽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갑자기 그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적은 돈 마저 부모님께서 마다하실 만큼, 내 사는 모양새가 그 정도였나 싶어 울고 싶었다. 이런 작은 사건 하나도 속상한 마음이 한동안 가시질 않았는데 말이다.

몸이 건강하다면 새롭게 마음 먹고 다시 일어설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자기를 믿고 결혼을 한 아내, 그리고 엄마 아빠 그늘에서 쑥쑥 자라고 있는 두 아이들을 보고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가난이 죄는 아닌데, 정말 죄인들은 죄인인줄 모르고 살기도 하는데.
가난을 죄로 여기기보다는 차라리 가난에 복수하겠다는 오기로라도 버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버텨서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다른 세상,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0-10-20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10-20 18:47   좋아요 0 | URL
'마음의 가난' 운운하기도 웬지 사치스럽게 들릴까봐 안쓰게 되더군요. 물질과 기계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살면서도 이 세상 순탄히 살다 가는 것이 참 힘든 일인가 봅니다.
편안한 저녁 되세요.

마녀고양이 2010-10-20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이란게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드는게,
저는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집안에서 자랐어요.
그런데 대학 때 같이 붙어다닌 친구의 집안은 꽤 부유했거든요.
그 친구의 무스탕 코트, 브랜드 청바지에 그렇게 기가 죽은거지요.
왜냐면 저는 안 하는게 아니구, 못 하는 거였으니까.
접하지 못 한 분야이니까.

제가 돈을 벌고, 구매 가능한 환경이 되자,
옥션의 제일 싼 청바지 뽀대도 멋지더라구요. 굳이
브랜드 안 사게 되고 말이죠. 제게........
가난은 컴플렉스와 동의어였나봐요.

hnine 2010-10-20 20:59   좋아요 0 | URL
무엇이든지 그것을 극복하고 나면 그 난관을 넘어서는 동안의 경험이 더 자신을 강하게 만들수도 있다 생각할수는 없는걸까, 그러기엔 가난은 너무나 큰 고통인데 내가 뭘 잘 몰라서 그렇게 쉽게 말하나, 저 페이퍼를 쓰며 그렇게 생각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가난은 컴플렉스와 동의어라는 말씀의 뜻도 이해가 가네요.
요즘은 뭐라고 한마디로 말하는 것이 참 조심스러워요.

프레이야 2010-10-2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정말 안타까운 뉴스네요.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랬을까 싶은데 정말 마음 아픈 일입니다.

hnine 2010-10-20 22:39   좋아요 0 | URL
희망이 없다, 가망이 없다 생각했겠지요.
그래도 이제 서른 셋인데.
어린 두 아들도 그렇고, 참 사람 목숨이 뭔가 싶네요.

2010-10-21 0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1 0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1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1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0-22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울컥하는 밤인데..

어쩌면 가난의 대물림, 그런 것밖에 보이지 않는 사회가 더 무서운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아이들까지 함께 가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저만의 짧은 생각을 해 봅니다.

얼마전 어디 신문인가에 난, 하루 자살자 수 통계를 보니 제 생각보다 꽤 많던데 이런 소식을 들으니 씁쓸하고,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hnine 2010-10-22 05:20   좋아요 0 | URL
대물림까지는 되지 말아야 하는데. 자기가 아무리 열악한 형편에 있어도 내 자식에게만큼은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은게 부모 마음인데 말이지요.

바람결님, 요즘 일교차가 심한데 건강 조심하고 계시지요? 전 자고 일어났더니 침 삼키는데 목이 심상치 않군요. 음...
가을이 가기전에 좋은 영화나, 좋은 연주회라도 한번 다녀오고 싶다 생각하다가 갑자기 오늘 아침 밥상에 뭘 차려내나로 생각이 급전하는, ㅋㅋ 재미있는 아줌마네요, 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