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쓰는 모든 시들이 유서같다가 그것들이 모두 연서임을 깨닫는 새벽
아직은 조금 더 실패해도 좋다고
네가 켜든 슬픔 한 덩어리의 시도 시들고 시들면 알뜰히 썩을 운명이라고
크나큰 실패마저도 그렇게 잘 썩어갈 거라고
모든 연서는 죽음과 함께 동봉되어오는 유서라고
외롬이라고
음악이라고
왜 음악은
항상 고장난 심장에도 누군가와 함께 도착하고
이미 죽어버린 자들을 느닷없이 호출하는 것인지 

작년에 구입하여 늘 책상 옆에 두고 있는 안현미 시인의 시집 <이별의 재구성>에 손을 뻗는 날이 있다. 그녀의 시 '불멸의 뒤란'에서 밑줄 그은 부분만 다시 재구성하여 올려 보았다. 시인 허락도 없이 그래도 되는지 3초 쯤 망설이다가 결국 바로 옆 페이지의 시 '리라들'까지 비슷한방식으로 올려 보기로 한다. 

녹슨 호미를 들고 뒤란 꽃밭의 잡초를 솎아낼 때, 슬픔은 슬픔의 얼굴을 버려두고 아리랑을 부른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마루 기둥의 자명종 새로 두시를 알리고 녹슨 리라의 현을 뜯듯 한때의 소나기가 다녀가는 마당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시 쓴다 개미처럼 쓴다 까맣게 까맣게 쓴다 까맣게 까맣게
언어는 언어를 버려두고 아리랑을 부른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일곱 개의 낮과 일곱 개의 밤이 매일매일 공평하게 배달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마무리도 그녀의 싯구절을 재구성하여. 

겨울이 지나간다 
비가 지나간다
내 슬픔에 접붙이고
그 속의 돌덩이를 다 헤집고
겨울이 지나가고
비가 지나간다

 

그녀 시집 '이별의 재구성'을 또 재구성하고 있는 저녁.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들으며 이 페이퍼를 쓰고 있던 중, 지금 무슨 일을 하며 음악을 듣고 계신지 문자 메시지를 보내달라는 진행자의 멘트에 #9310누르고, 마음 달랠 목적으로 안현미 시인의 시를 베껴 쓰고 있다고 적어 보냈더니 소개가 되었다. 마음을 달래야 할 무슨 일이 있으셨냐면서.
'무슨 일이 있기는요, 저녁 상 차리다가 양념 담긴 유리병 떨어뜨려 박살 낸 것 밖엔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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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8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9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2-19 17:38   좋아요 0 | URL
수첩에 고이고이 잘 적어놓았습니다, 보라색 펜으로 ^^

프레이야 2010-02-18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양념유리병 떨어뜨렸다구요?
안 다치셨나요? 마음까지 박살나지 않기 바래요.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참, 안현미의 시, 참 좋군요.

hnine 2010-02-18 22:15   좋아요 0 | URL
마늘 한 봉지를 겨우 다 씻고 다져서 유리병에 잘 담아서는, 냉장고로 가져가다가 그만 떨어뜨려가지고는 유리병 박살나고 마늘도 다 버리고 흑흑...
제 마음은 박살도 잘 나지만 또 금방 붙기도 잘 붙어요 ^^
안현미 시인의 시집은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비로그인 2010-02-1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식 산책 일까요? 아니면 세상의 모든음악 일까요?? ㅎ 다시듣기로 꼭 확인해보겠습니다. hnine님 '_' ㅎ

hnine 2010-02-19 06:40   좋아요 0 | URL
클래식 산책이었어요 바람결님 ^^

2010-02-21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2-21 07:05   좋아요 0 | URL
아, 김 경란 아나운서가 이번 주 출장 관계로 대신 김 윤지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있답니다~ ^^

하늘바람 2010-02-1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념통 박살! 큰일인걸요. 아 님의 페이퍼 읽으면 다시 시를 쓰고픈 따라쟁이가 된답니다.

hnine 2010-02-19 17:39   좋아요 0 | URL
그럼 제가 자주 올려야겠네요, 하늘바람님 자극시키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