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임영태. 처음 듣는 이름이다. 경력을 본다. 1992년에 등단했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 목록 중에 읽은 것이 없다. 어떤 선입견 없이 그의 작품과 만날 수 있겠다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매우 평이한 문체에, 수식이 많지 않으며,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의 감정 표현에 과함이 없는, 내가 선호하는 글 스타일이었기 때문일까. 매우 빠른 속도로 읽혔다. 범인이 궁금한 추리 소설도 아니면서, 어떤 특별한 사건이 펼쳐지는 스토리도 아니면서, 그렇게 속도감 있게 읽힐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훔쳐 보는 기분으로 읽혀졌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어떤 한 남자의 일기장, 혹은 블로그의 아주 개인적인 한 카테고리를 쭉 훑어 읽는 느낌이 들게 할 정도로,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여진 글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마치 독백과 같은 글이었다. 더구나 자전적 요소가 적지 않다는, 어느 신문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난 후임에야.
조용히 옆에서 남자를 지켜봐주고, 챙겨 주던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뜨고, 아내에게 잘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생각때문에 더욱 쓸쓸해하며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에 아내가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 그때 키우던 개 이야기, 어릴 적 왕따 친구 이야기, 한동네 살던 불행했던 누나 이야기 등이 어우러져, 어느 대목 하나 쓸쓸하지 않은 대목이 없는, 그런 소설이었다.

태인이 집 근처까지 갔지만 기척이 없었다.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마신 뒤, 허리를 숙여 개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태인이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태인아! 나는 얼른 태인이를 안았다. 태인이가 꼬리를 흔들었다.
"그만해라, 힘도 없을 텐데."
나는 태인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114쪽)

 태인이는 주인공과 그 아내의 이름 한자씩을 따서 만든, 키우는 개의 이름이다. 상한 음식을 먹고 키우던 개 네 마리 중 두 마리가 죽던 때의 이야기 중 한 대목인데 읽는 동안 마치 위의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 지고 있는 것 같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동안에도 계속 그 잔영이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 생사의 기로에서도 주인을 반기는 개와, 그런 개의 마음을 알아주는 남자의 따뜻하고도 쓸쓸한 말투.

이 사람은 슬프다는 말을, 쓸쓸하다는 말을 다음과 같은 식으로 한다.

도가니탕이 나왔다. 뽀얀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더 먹지 못했다. 손에 숟가락을 든 채, 울음을 참으면서 나는 국물이 식을 때까지 창밖 거리만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228쪽)

주인공이 한때 위가 안좋아 병원 신세를 지고 나온 후 기운 차리라며 아내가 사주었던 도가니탕. 혼자서 그 도가니탕을 주문해서 먹는 장면이다. 눈물을 뚝뚝 흘린 것도 아니고, 그 자리를 그냥 박차고 나간 것도 아니고, 울음을 참으면서 숟가락을 든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렇게 슬픔이 삭기를 말없이 기다리며 사는 일상인 것이다.

아내가 죽고 난 후 종우 형은 이따금 전화를 걸어 내가 무사히 살고 있는가를 체크했다. 몇 번째 전화던가, 종우 형의 전화가 '체크'라는 것을 느꼈을 때 내가 말했다.
"형님, 저는 따라 죽을 위인 못 돼요."
"누가 뭐래. 서울 올라가면 잘 때 없을까 봐 그러지." (120쪽)

남겨진 사람은 남겨진 대로의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 대필을 의뢰하는 전화가 오면 한치도 게으름없이 성실하게 답변하고 일을 맡겠다고 응하는 주인공이 고맙다.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주어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부디 추억이 그를 끌어내리지 않고 계속 지탱해나가게 하는 힘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마도 내가 읽은 책 중 제일 쓸쓸한 느낌을 주는 책 리스트를 만든다면 빠지지 않고 들어갈 책이다. 책을 읽고 나면 미루지 않고 바로 리뷰를 쓰는 편인데 이 책은 다 읽고서 다른 책까지 한 권 더 읽고서 리뷰를 쓴다. 일부러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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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2-17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설날전에 주문해서 오늘 받았는데 hnine님의 리뷰를 보니 안심이 되요 (엄한 것 주문하지 않았다는 안도감) 대필작가 이야기라는 데 끌려서 덥썩 주문했었거든요.

hnine 2010-02-17 22:39   좋아요 0 | URL
읽어보실만 합니다. 작가 자신도 지난 4년 동안 대필작가로 일해오고 있었고, 그래서 대필작가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 직업도 그렇게 정했다고 하더군요.

하늘바람 2010-02-17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필작가 이야기? 궁금하네요^^

hnine 2010-02-17 22:40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2010-02-17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7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02-17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들어 본 이름 같습니다. 읽어보지 못했구요. hnine님의 제일 쓸쓸한 느낌을 주는 책이라. 왠지 저는 읽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목은 참 맘에 드는데...^^

hnine 2010-02-17 22:46   좋아요 0 | URL
들어보셨군요. 쓸쓸한 느낌을 주지만 괜히 읽었다는 생각은 들게 하지 않는 책이어요. 아마 읽는 사람의 어느 한 구석에 있던 비슷한 정서를 어루만져준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