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단순히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만이 존재가 아니라, 목적지와 궤도를 가짐으로써 존재는 의미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본문 중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읽고 표시를 해놓으면서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 말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예상하진 않았다.
'생의 이면'이라는 그의 전작은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지금은 내용도 가물가물하지만 '이 승우'라는 이름을 대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존재, 이중성, 의식, 이면, 내면 세계, 뭐 이런 것들. 
이 소설의 스물 아홉된 남자 주인공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결핍을 안느끼고 자랄 수 있게 하려는 어머니의 다소 컴플렉스 경향이 엿보이는 완벽한 노력에 의해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또 부재에 대해서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 나이까지 살아온다. 그러다 새로 이사간 동네의 나이 지긋한 이웃 노교수에 의해 불현듯 아버지를 찾아서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불현듯 하게된 생각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그동안 주인공의 무의식 속에 아버지 존재에 대한 갈망은 오랫 동안 내재되어 있던 것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그의 반복되는 꿈 얘기가 아니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제 와서 굳이 찾아나설게 뭐냐고 조용히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외삼촌, 그리고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의 일면일 수도 있음으로 일깨우며 주인공의 행동 발단의 계기를 제공하는 이웃 노교수의 말이 주인공의 마음 속에서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소설은 전반부를 끌어나간다. 주인공이 아버지의 존재를 절실히 그리워한 적이 없을 정도로 어머니는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거기에 쏟아 부었겠건만 주인공의 상념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집과 광야에 대한 상념을 곱씹었다. 이 어머니의 영역이라면 광야는 아버지의 세계였다. 어머니는 집을 짓고 가정을 꾸리고, 일구고, 정착하고, 쌓는 자였다. 아버지는 광야로 나가고, 떠나고, 헤매고, 버리고, 뿌리치는 자였다. 어머니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있고, 아버지는 자유로움에 들려 있는 자였다 (55쪽).  
   

한 인간이 성장해나가는데 있어 아버지의 존재가 의미하는 세계란 어머니의 그것과 이렇게 대조적이구나, 새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얼마나 완벽한 노력을 기울이든 부재의 흔적은 어쩔수 없다는 것 아닌가.
어머니를 떠난 아버지는 흔한 얘기로 다른 가정을 꾸미고 동네 자치 위원 선거에 출마하는 등 나름대로 자기의 명예욕구도 채워가며 잘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데, 식상할 수도 있을 그 부분의 얘기를 그 정도로만 언급하고 더 길게 끌고 가지 않아서 좋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도 저도 아닌, 경계가 불분명한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을 즐겨 쓰고 있다. 예를 들면, '내가 그것을 원하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 부딪치기를 바라는지 바라지 않는지 분명하지 않은', 이런 식의 표현 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파헤쳐보고자 하는 의문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는데, 불편하지도 않고 불만도 없는데, 아버지는 필요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없는 것과 같았는데, 없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아예 없다는 의식조차 없었는데, 왜 갑자기 아버지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 걸까요? (중략)
나의 자문에 대해 내 안의 불안이 대답했다. 부족한 것도 없고 불만도 없었지만, 그런데도 가끔 공허를 느꼈지. 울타리는 튼튼하지만 허전하고, 울타리 안의 정원은 풍요롭지만 쓸쓸했지 (52쪽). 
 
   

 
이렇게 자기 내면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상념이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스토리를 상념이 먹어버린다. 이러한 저자의 스타일에 익숙한 독자가 아니라면 금방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어려울 수도 있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반면에 같은 이유로,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읽어갈 수도 있을 그런 이중성을 이 소설 자체도 가지고 있다, 재미있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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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1-10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서평단시시군요. 좋으면서도 바쁜 서평단 ^^
부러워요. 응원합니다

hnine 2010-01-10 18:54   좋아요 0 | URL
예, 문학부분 서평단이어요. 처음 신청해보았네요 ^^
제가 받은 책들중 하늘바람님 혹시 읽어보고 싶은 책 있으시면 리뷰 올린 후에 보내드릴께 말씀해주세요.

같은하늘 2010-01-12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 하시는군요. 서평단 은근히 바쁘더라구요.^^ 전 책 읽는 속도가 느려서 문학쪽은 신청도 못하는데... 그래서 너무나 부럽습니다. ㅎㅎㅎ

hnine 2010-01-12 06:18   좋아요 0 | URL
저도 욕심은 있는데 자신이 없어서 지금까지 한번도 신청을 안했었다가 이번에 처음 해보았어요. 이 책은 얇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서 금방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