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사생활 아이의 사생활 시리즈 1
EBS 아이의 사생활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낳아서 키우는 아이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조사와 연구의 대상이 되었는지, 그 원인이 무엇일지 새삼 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에게도 모든 것이 첫 경험이듯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 역시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기 때문에 서투르고 자신이 없다. 핵가족화가 이루어진지 이미 오래, 자문을 얻을 수 있는 경험자와 더 이상 한집에 살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는 늘 불안하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아이들에 대해 파고드는 또 하나의 이유라면, 예전 처럼 아이를 서넛 씩 낳는 집이 많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야말로 하나 밖에 없는 자식, 잘 키워내야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기에 실패한 부모의 인생이 성공적일리 없다는 생각,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해할 것이다.
이 책, 참 잘 쓰여진 책이다. 저자 한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에 치우쳐서 쓰여지지도 않았고, 실험과 그것의 결과를 토대로 하여 논리적으로, 일관성있는 주제를 끌어내고 있으며, 비슷한 관점을 가진 해외의 다른 교육, 심리학자들의 주장과 비교, 분석까지, 그야말로 나무랄 데 없는 구성과 내용을 갖춘 책이다. 더구나, 400쪽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매우 쉽게 쓰여져 있다. 방송을 염두에 두고 쓰여져서 인지, 아니면 방송으로 이미 나가고 난 후에 집필되어서인지, 전혀 부담없이 편히 읽힌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책을 읽으며 감탄만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아이를 낳기 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되는 육아, 교육에 관한 책 읽기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 자체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는데 더 큰 계기를 제공했던 것 같다. 이 책의 표지에 <Discovering a child>라고 적혀 있듯이, 아이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재발견하는 과정으로 나를 자꾸 유도했던 것이다. 그동안 정말 여러 권의 책들을 읽었다. 이제 이런 책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점들도 어느 정도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함에도, 그래도 새로운 책이 나오면 또 눈길이 간다. 나는 아직도 아이를 키우는데, 미숙한 한 인간으로서 또 다른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에 대해 많이 부족하고 자신이 없는 것이다.
아이가 잘하면 칭찬하고, 잘못하면 야단치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훈육 방법이지만, 책에서는 칭찬하는 '방식', 야단치는 '방식'에 대해서 얘기한다. 칭찬하는 '시기'. 야단치는 '시기'에 대해 가르친다. 이게 잘못 이루어졌을 때 아이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여지 없이 폭로한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우리들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위축되고 자신을 잃는다. 그래서 더 많은 책을 찾아 읽는다.
내가 낳은 아이, 내가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는 내 아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실험의 대상이 되었는가. 도덕적인 아이와 도덕적이지 못한 아이로 분류되고, 자존감과의 상관 관계를 입증하는 실험에 참가하여 하나의 원칙을 세우는데 일조하게 되었는가.
그냥,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고,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강요하지 않으며, 옆에서 지켜봐주는 정도로, 마치 '남의 아이' 대하듯이, 그렇게 키울 수는 없을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는 일반성을 지니기가 어렵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비슷한 성향의 부모 밑의 같은 나이, 같은 성별의 아이라도 절대 같은 원리가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에 대한 것은 어떤 유명한 책이나 교육학자, 심리학자도 아닌, 내가 제일 잘 아는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한가지 조건 하에서. 그 조건이란? 부모의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고 아이를 아이 그대로 봐주는 것이다. 기대와 욕심의 안경을 내려 놓지 않는 한, 우리는 아이를 제3자의 눈을 통해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이 과연 내가 읽는 마지막 육아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있게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는, 대한민국의 보통 엄마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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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1-1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달 인가요.. 독일의 숲속 교육의 현장에 관한 르뽀가 있었는데요. 아이들이 숲속에서 하루쯤 수업을 하면서 지내는건데 교사들이 그저 한발자국 떨어져 지켜만 보고 있어 왜 그렇게 하냐고 물으니까 교사가 끼여들어버리면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수업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다린이 키우시면서 이런 저런 고민들과 일기들을 써놓으시는 걸 많이 뵈어요. 가다보면 터널도 있고 공사장도 있고 아름다운 길도 있겠지만 다른 그 무엇보다 아이는 엄마의 그 사랑을 분명히 느끼고 있음을 잊지 않으셨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아직 아이를 낳아보지 않았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그건 분명한것 같다는 작은 생각이 들어요. 나인님. ^^

hnine 2009-11-12 20:42   좋아요 0 | URL
현대인들님의 댓글이 더 명작이네요 ^^
이제 다린이도 많이 컸으니 제가 간섭과 잔소리를 줄이는 연습을 해야해요.
어렵지만 해보려고요.
독일의 숲속 교육, 참 인상적이네요. 끼어들지 말아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는 것, 맞는 것 같아요.

꿈꾸는섬 2009-11-12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이 키우는 일인 것 같아요. 세상의 엄마들 모두 위대해요.

hnine 2009-11-13 04:22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 동갑입니다.
제 생각대로가 아니라 아이 마음을 읽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상미 2009-11-13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애들 어릴 때는 내 맘대로 소신껏 길렀는데,요즘 들어 흔들린단다.
우리 애들 나이가 되니 <공부 전략> <공부의 왕도>
뭐 그런 류의 학습방법 소개서를 산다는게 다르지.ㅋㅋ

EBS 에서 이 다큐 할 때 ,시간 맞춰서 봤었어. 신기하더라.

hnine 2009-11-13 14:42   좋아요 0 | URL
TV로 봤구나. 혜준이가 사줘서 읽었다. 지난 번에 네 블로그에 있던 책 '알파걸에 주눅둔 아들...' 그 책 내용과 많이 비슷해.
부모가 제일 귀를 기울여야할 대상은 바로 '내 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단다.

Arch 2009-11-1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책 괜찮죠? 다큐멘터리도 좋았지만^^ hnine님 맘도 이해되고, 저도 반성하게 되고, 책 한권으로 여러가지를 느낄 수 있게 하고,
EBS 화이팅^^

hnine 2009-11-13 19:51   좋아요 0 | URL
Arch님도 읽으셨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만들어진 책, 흔치 않겠지요. 육아서읽기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면서 탄식하는(^^) 제 마음도 이해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제 남편도 이해 못하는 것을 Arch님께서 알아주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