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alk Pretty One Day (Mass Market Paperback)
데이빗 세다리스 지음 / Back Bay Books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책을 다 읽고 보니 애초에 이 책의 제목을 가지고 갸우뚱할 필요는 없었다. 저자가 불어를 배우기 위해 파리에 가서 고전하는 동안 나도 언젠가는 말을 잘 할수 있을 거라는, 앞뒤 안맞게 불어를 주워 섬기면서 한 말을 제목으로 뽑아 놓은 것이니까.
저자 소개가 자세히 되어 있지는 않지만 책 전체가 그야말로 그의 신변잡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근본적으로 그는 자신을, 자신의 가족을, 친구를, 사회를 유머감각을 가지고 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
어떤 집으로 식사 초대를 받아간 날, 화장실에 갔더니 앞서 이용한 누군가가 큰 일을 보고는 물을 내리지 않고 나간 것이다. 자기 다음에 들어오게 될 사람이 마치 자신이 그렇게 해놓고 나간 것으로 알까봐 그는 서둘러 뒷처리를 하느라 진땀을 흘리지만 변기 물 내리는 장치가 고장나 있었다. 화장실 밖에서는 기다리는 사람이 계속 노크를 해대고, 어찌 어찌 하여 처리를 한 후, 늦게 나온 것에 대한 무언의 변명의 표시로 필요도 없이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고 젖은 채 나간다는 얘기 ('Big Boy')를 읽으면서는 그의 난처했던 상황이 그려지면서도 혼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제목도 그렇지만 책 속의 소제목들도 재치가 넘친다. Giant dreams, Midget Abilities라든지, Me talk pretty one day격의 다른 말로 See you again yesterday도 그렇다.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 컴퓨터 혐오증을 가지고 있는데, 두려워하는 것 (fear) 과 싫어하는 것 (hate)은 구별되어야 한다면서 'phobic' 이란 말을 아무데나 붙이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자기는 컴퓨터를 비롯한 기계들을 싫어하는 것이지 무서워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이다. phobia라는 말은 싫어하는 대상이 아닌, 두려워하는 대상에 붙여야 맞는 것이란다. 뉴욕의 식문화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Today's special (오늘의 중점요리) 을 읽으면서는 그냥 재미 이상의, 뭐랄까 속 시원함을 느꼈다고 할까. 대도시 문화나 격식에 아랑곳 하지 않는 한 여자 지인에게 저자가 뉴욕 구경을 시켜주는 이야기이다. 너무나 당당하게 자기 식대로 행동하는 그녀에게 좀 당황한 저자를 보고 그녀가 한 말은,
"Let me tell you something, Mr. New York City. I am very comfortable with the way I look, and if the Plaza Hotel doesn't like what I'm wearing, then that's their problem, not mine."
이 정도 당당함으로 사는 것, 참 멋지지 않은가? 대조를 위해 그가 표현한 wealthy, overcaffeinated society women with high standards and excellent aim (122쪽) 의 여자와는 다른 차원에서 말이다. 음식을 미술 작품에 비유하자면 그 날의 요리는 다다이즘에 해당한다는 대목을 읽을 때에는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두가지를 이렇게 연결시킬 수 있는 기발함을 별것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컬럼부스의 달걀 같은 것 아닐까 생각 했다.
1,2부로 나누어 2부에서는 불어를 배우기 위해 파리로 이주하여 사는 동안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를 엿볼 수 있어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영화관 풍경을 한 예로 들어, 뉴욕에서는 영화관 수입의 많은 부분을 각종 스낵을 판매함으로써 벌어들이는 수입이 차지하는데 반하여, 프랑스에서는 아무리 큰 영화관에도 작은 아이스크림 판매대 외에는 그처럼 요란하고 거창한 먹거리를 극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본적이 없으며, 아무리 어린 학생들이라도 영화를 보면서 옆사람과 잡담을 나누는 일은 없다고 한다 ('The city of light in the dark').  다른 관객의 요청에 따라 좀 조용히 해달라는 극장 관리인의 지적에 대해 내가 무슨 법이라도 어기고 있냐고 항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 뉴욕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결국 자기는 파리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맺는다. 학생때 수업을 열심히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이들어 할일이 없어졌을 때 신문의 퍼즐을 잘 풀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21 Down'등, 방송매체 기고가 답게 그는 모든 일을 심각하게 파고 든다기 보다, 푸하 웃음을 터뜨리게 쓰면서도, 어떤 글에서는 은근히 인간의 이중성이나 겉치례, 본질적인 소심함을 감추려고 부리는 허세 등을 간접적으로 비꼬고 있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기도 했다. 

책의 크기가 작고 무겁지 않아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 좋지만, 글씨는 작고 빽빽하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면 이렇게 유머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글들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 예를 들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자란 친구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고 부러워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고 감정이입하면서 쓴 글이 있는데 ('Remembering my childhood on the continent of africa') 그리 심오한 내용이 아님에도 내게는 이해가 어려웠던 부분이다.
그가 진정 그런 의미를 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면 나는 동의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본질적으로 소심한 동물이라는 것을. 그걸 부정적으로, 비판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저자처럼 이렇게 통쾌하게 웃으며 맘껏 표현할 수 있다면 인생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럴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나 대신 그가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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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09-10-14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불어를 영어식으로 생각하면 훨씬 배우기 쉽다고 하더라.
그래서 유럽애들은 보통 3개국어를 쉽게 배우나봐.

우리 딸 프랑스 남자랑 결혼하겠단다...@.@ 푸헐 ~~
그냥 영어하는 남자 선으로 합의 봤단다. ㅋㅋㅋ
모녀의 대화를 지켜보던 남편이 <한국 남자가 경쟁력이 없기는해...> 그러더라.

hnine 2009-10-14 00:23   좋아요 0 | URL
아니, 안 자고 뭐해? 난 지금 시험 문제 내느라...
경은 아빠 말에 완전 동의 ^^
나중에 사위랑 대화가 되려면 지금부터 불어 공부좀 해놓아야겠다 ㅋㅋ

상미 2009-10-14 09:2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일요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돌아온 남편이
월요일 밤에 시고모님이 돌아가셔서, 진주에 내려갔다가
밤 버스 타고 온다고 해서,
기다리던중이었지.
너야말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면 힘들겠다...

hnine 2009-10-14 12:00   좋아요 0 | URL
부에노스아이레스 라는 단어를 보니 '엄마 찾아 삼만리'가 갑자기 떠오르는 이 대책없는 아줌마 ㅋㅋ
경은 아빠 많이 피곤하겠구나. 안자고 기다릴만 하네.
세계지도 하나 출력해서 색칠해봐라. 경은 아빠 가본 곳에. 어쩜 벌써 해봤을지도 ^^

하이드 2009-10-14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표지가 예뻐서 늘 서점에서 지나칠때마다 손이 가는데, (근데, 왠지 집에 있는 책 같아서 못 사고 있는;;) 리뷰보니 읽고 싶네요.

그나저나 서재 지붕이 참 예쁘네요.

hnine 2009-10-14 12:03   좋아요 0 | URL
칠판에, 그것도 여러 번 쓰고 지우개로 대충 지워 분필 가루가 허옇게 남아 있는 듯한 칠판에 하얀 분필로 쓱싹쓱싹 쓴 것 같은 표지이지요. 저자의 성을 보고 짐작이 되기도 하지만 부모들은 그리스 출신이더라구요.
서재 지붕 올린지 꽤 오래 되어서 전 좀 질려가고 있었는데, 쫌 더 두어야겠어요 ^^

하늘바람 2009-10-14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
시험기간이라 피곤하시겠어요

hnine 2009-10-14 12:07   좋아요 0 | URL
앗, 거의 실시간이네요 ^^ 막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다음 주부터 시험이어요. 그래서 저는 다음 주엔 한가하지요.

같은하늘 2009-10-16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원서... 원서라면 전공서적 밖에 봐 본적이 없는 외계어로 쓰여진 책...^^

hnine 2009-10-16 13:29   좋아요 0 | URL
아무리 해도 우리에겐 외계어 맞지요 ㅋㅋ
저도 자주는못 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