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의 일이다.
프랑스에서 박사후 과정 연구원으로 세달동안 내가 있던 연구실로 파견나와 있던 Isabelle을 연구실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질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내가 보기엔 그저 타지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 플러스, 객식구로서의 자신의 신분을 의식해서 Isabelle이 의식적으로 더 연구실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군다거나, 더 어울리려 든다거나, 그런 타입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일까, 또 굳이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영국과 프랑스 사람들은 참으로 성향이 다르더라는, 내가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겪어 보고 알게 된 것, 그것도 이유가 될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크리스마스 파티 비슷한 자리에서 영국식 유머에 대한 얘기였는지 아무튼 무슨 얘기인가가 오가던 중 우리 연구실의 최고참인 테크니션 영국인 할머니 (인자한 할머니 보다는 터프한 할머니에 가깝다) 가 그나마 친절하게 Isabelle에게 "너희 프랑스 사람들과는 참 틀리지?" 라고 말했더니 Isabelle의 대답, "당신이 프랑스 사람을 알아?" 
허걱~


아래 영화 소개를 보며 문득 그날 일이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아직 한편도 보질 못했으면서 내 머리속에는 어떤 선입관이 언제부터 미리 들어와 앉아있다.
보고 싶은 영화로 찜. 

  

위의 Isabelle은 애초 예정했던 세달 기간이 6개월로 연장되어 우리 연구실에 있는 동안 나랑 참 친하게 지냈다. 우리는 서로 동갑이기도 했고, 성격이 매우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내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는 (못하는) 나의 그 멋없는 성격과, 지극히 합리적이면서 변덕이 심하지 않으며, 영화와 박물관, 미술관 다니기를 좋아하는 그녀의 성향이 다행히 조화를 잘 이룬 덕이었다. 어디다 내 놓아도 꿋꿋하게 잘 살아나갈 것 같은, 씩씩한 그녀의 눈에 어느 날 갑자기 눈물이 맺히며, 예전에 한동안 사귀던 연인이 왜 갑자기 자기를 떠났는지 아직도 자기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벌써 10년 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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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05-11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보고 싶던데.
뭔가, 좀 더 괜찮은 댓글을 달고 싶은데 요샌 어찌된게 댓글을 달려다가도 손이 툭 떨어져버리는 것만 같아선. 정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을 판단하는 경우가 참 많죠.

hnine 2009-05-11 20:05   좋아요 0 | URL
저도 Arch님 서재 가서 페이퍼 다 읽고도 뭐라고 댓글을 달아야할지 몰라 멀뚱하게 그냥 나오는 때가 얼마나 많다구요. 심각한 듯 한데 언제나 웃음 나올 대목이 숨어 있는. ^^
전 이렇게 찜 해놓고도 꼭 본다고 장담 못해요.

새초롬너구리 2009-05-1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영화제목이란 은근히도 무척이나 중요한지 모르겠어요. 전 영화 제목때문에 어제 드디어 [타인의 취향]을 보았지요.

과연 '잘'안다는게 뭔지 모르겠어요.

"니들이 게맛을 알아?"란 말, 그건 진짜게가 아닌 게맛의 성분이 더 많은 음식이 재미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열광시키잖아요.

hnine 2009-05-11 20:08   좋아요 0 | URL
새초롬너구리님, 잘 안다는게 뭔가 부터 생각하는 사람이 뭔가를 안다고 말하면 그건 정말 잘 아는거 아닐까요^^
사실 "네가 날 알아?" 라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순간, 그런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나, 그런 생각도 해본 적 있어요.
<타인의 취향>이라, 정말 제목때문에 끌릴만한데요.

하늘바람 2009-05-1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 감독 영화를 보면 슬퍼져요. 왜냐면 그냥 영화같지 않고 삶같아서요.

hnine 2009-05-11 20:08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그렇게 리얼한가요?

2009-05-11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1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1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2 0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5-12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기다리고 있어요.
이사벨, 그녀에게 왠지 끌리네요. 연약하고 사랑스러울 것 같아요, 속으론.
잘 알지도 못하면서 ㅎㅎ

hnine 2009-05-12 21:37   좋아요 0 | URL
이사벨은 우리가 떠올리는 프랑스 여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아주 당당하고 씩씩하고 독립적인 여자였어요. 제 성격을 딱 뒤집어놓은 듯한~ ^^
어떻게 우리 둘이 그렇게 친할 수 있었나,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이 페이퍼 쓰고 나니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네요.

L.SHIN 2009-05-1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과 프랑스는...오랜 전부터 사이가 그닥 좋지는 않았죠. 오래된 골의 유전이랄까..
하지만 역시 누군가 나에 대해 잘 아는 것 처럼 떠들면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이죠.^^

hnine 2009-05-12 16:40   좋아요 0 | URL
그런걸 알고 나서 보니 양국의 국민성도 참 많이 틀린 것 같고요. 제가 아는 프랑스 사람이란 위의 Isabelle뿐인데 그녀의 예를 들어 모든 프랑스 사람들은 어떻더라 하고 얘기하면 안되겠지만요. 휴~ 조심스러워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