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것을 전혀 예상 못했는데 아이가 학교에 가고 얼마 안지나 바로 비가 오기 시작한다.
아침에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나서는 아이를 보고 나는 그냥 그러나보다 했고, 남편은 요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니 지금 춥지 않아도 겉옷을 하나 걸치고 가라고 했다. 귀찮아하는 아이에게 부득부득 기어이 옷을 하나 더 입혀 보내는 남편을 보고 나는 속으로 '과잉보호 경향이 있다니까~' 했는데.
입기 싫은 옷을 더 입혀주니 아이는 뾰로퉁 해져서 집을 나섰다. 뒤따라 출근길에 오르면서 남편이,
"녀석, 엄마 닮아서 잘 삐진다니까~" 그런다.
그 말을 듣고,
"누구 닮아서 라는 말은, 나쁜 점 말할 때 보다는 칭찬하면서 하는게 좋고, 나보다는 상대 배우자를 닮아서, 즉 아빠 닮아서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리나보다, 엄마 닮아서 이렇게 정리를 잘하나보구나~ 이렇게 말해주면 아이에게도 좋고, 부부 사이도 좋아진대."
내가 잘 삐지는 걸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달리 할 말은 없고 그냥 책에서 읽은 풍월을 한마디 들려주었다.
출근해보니 주말 새에 영산홍이 활짝 피었다고 남편이 전화를 했다. 어제 날씨랑 달리 바람도 꽤 분다고. 아이에게 옷 입혀 보내길 잘했다고 내가 말했다.
지금 콜로라도 덴버에는 눈이 많이 왔다고 조금 아까 어느 기사에서 보았다. 콜로라도는 1년 중 네달 (5,6,7,8월)을 제외하고는 늘 눈이 왔었지.
주말에도 그랬고 요즘 이래 저래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중인데, 그만하면 되었다고 이젠 그만 떨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라디오를 켜고 기분을 전환 시켜보고 있다. 뭐 저렇게 시끄러운 방송이 있냐고 한때 맘에 안들어하던 방송 (오후 2시 프로그램들이 대개 그렇다)의 도움을 오늘은 제대로 받고 있다.
예전 생각에, 나이가 들어 지금의 내 나이 쯤 되면 집 장만, 아이 공부, 남편 승진 등이 주요 이슈인, 씩씩하고 생활력있는 그런 아줌마가 되있으려니 했는데, 그래서 은근히 그런 때가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는데, 웬걸, 전혀 그렇질 않다. 행인지 불행인지. 여전히 마음은 무르기만 하고, 집 장만, 아이 공부, 남편 승진 외에도 잔 신경 끄지 못하는 것들이 산재하며, 불안불안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는 그냥 그런 인간이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