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입학하고 첫 주.
처음 입어본 교복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내가 교복을 입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교복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한 그 어정쩡한 느낌.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하시더니 집이 어느 동네인지 물으셨다. 아직 같은 반 아이들 얼굴을 익히기 전이라, 호명된 아이가 누군가 궁금하여 뒤돌아보니 교실 뒷문 가까이에 한 아이가 앉은채 대답하고 있었다. 체구는 좀 있는 편이나 얼굴은 아주 하얗던 그 아이는 소아마비여서 걸음이 불편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곧 '성애병원' 근처에 사는 사람이 누군지 물으셨다. 그 아이가 자기 집이 성애병원 근처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꼐서는 근처에 사는 사람중 누군가 하교시에 그 아이를 도와 함께 집에 가도록 권하시려던 것. 성애병원을 우리 집 근처의 '성혜병원'으로 잘못 알아들은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나보고 이제부터 집에 갈때 될수 있으면 그 아이와 함께 가도록 하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숫기 없는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던 것인지. 그 아이 인상이 어딘가 가라앉아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강단있어 보이기도 한, 한마디로 인상이 얼른 잡히지 않아 한번 친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일까.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성애병원 근처라는 그 애의 집은 우리 집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가야하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결국 나는 한번도 그 애의 하교를 도와주지 못하고 1학년을 마쳤고, 누구도 그것을 뭐라 한 사람도 없는데 나 혼자 미안하고 떳떳하지 못하여 그 애를 오히려 피하며 지내고 말았다.
그 아이는 생각보다 활달하여 반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으며, 글을 제법 잘 썼고 책도 많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 그녀가 나중에 이런 일을 하게 될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요즘 모 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주말드라마를 바로 그녀가 쓰고 있다. TV를 잘 안 보는 나도 주말에 아이가 좀 일찍 잠이 들라치면 다른 일 제치고 TV를 켜고는 열심히 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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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9-01-25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기억이 있으시군요. 주말드라마 궁금해집니다.
가문의 영광? 유리의 성? 또 뭐가 있더라~~ ㅎㅎ
고등학교 1학년때 우리반에도 소아마비였던 친구 있었는데 도와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 아이도 책 많이 읽고, 이야기도 잘 했었는데....

hnine 2009-01-25 13:58   좋아요 0 | URL
'가문의 영광'이요 ^^

세실 2009-01-27 08:57   좋아요 0 | URL
오우 즐겨봅니다. 재미있네요.
한 남자만 가슴에 품고 살아가리라 다짐했던 여인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어요. 그런 와중에도 코믹한 설정들이 재미있네요.

hnine 2009-01-28 00:24   좋아요 0 | URL
재미있지요? 단아의 사랑도, 맏아들과 진아씨의 사랑도, 둘째아들과 활달한 경찰 아가씨의 사랑도 참 예쁘지요. 동동이도 그렇고요. 세실님 말씀대로 코믹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도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아요. 웃을 수 있으니까요 ^^

하양물감 2009-01-2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양한 그녀들이 있네요^^ 음, 저는 드라마를 거의 안보기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왠지 다르게 보일 것 같아요.

hnine 2009-01-25 19:56   좋아요 0 | URL
이전에 다른 드라마도 했을텐데 제가 눈여겨 보질 않았어요. 이번엔 우연히 알게 되었지요.

하늘바람 2009-01-26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마치 소설 읽는 것처러 재미나네요.이제 부터 그 드라마를 눈여겨 볼것같아요.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09-01-26 22:18   좋아요 0 | URL
꿈은 포기하지 않는한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이 친구를 봐도 그렇고요. 소설도 몇 편 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았었지요. 이 드라마는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하늘바람님, 태은이 사진을 보면 저도 마음이 환해져요.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은 그만큼 엄마의 사랑과 노력때문이라 믿어요. 복 많이 받으실거예요 ^^


상미 2009-01-29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글 읽고 ,검색 해 보니 내가 즐겨본 독특한 드라마를 몇 개 썼더라고.
내 사랑 못난이,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
올해는 드라마 덜 보려고 노력 중이라 가문의 영광은 못보고 있는데...
그 이름이 본명인거니? 아니면 나랑 그 친구는 한번도 같은 반이 아니었나보다.

hnine 2009-01-29 22:16   좋아요 0 | URL
본명 아니야.
'가문의 영광'은 시간이 좀 늦길래, 그나마 다린이가 그 전에 잠이 들면 얼른 TV켜고 보고 있지. 재미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