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의 <돼지꿈>을 읽으면서, 거기 나오는 여자 주인공들의 일상으로 부터, 내 집 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남의 손을 빌지 않겠다는 그 신조로 인하여 스스로 삶을 참 고달프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에너지는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매일 똑같이 해야하는 일에 써버리릴 것이 아니라, 내 집일을 좀 덜 하거나, 남의 도움을 받는 한이 있어도, 하루의 일정 시간은 생산적이고 보람을 느낄만한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먹거리에는 잘 안 통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뭐 안심하고 아이 먹일만한 것들이 많아야 말이지. 며칠 전 아이와 길거리를 걷다가 호떡을 파는 것을 보더니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오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호떡을 딱 다섯개만 만들었다.

 


 

 

 

 

 

 

 

 

이게 그래봐도 발효빵이라서, 이스트 발효시간이 세시간 정도 걸렸다는 사실.
다행히 아이가 맛있게 먹는다.



 

 

 

 

 

 

 

 

아이가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문득 내가 어릴 때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모시던, 돌아가신 친할머니 생각이 났다. 일하시던 엄마 덕분에 엄마를 대신해 집에서 우리 형제들을 돌봐주시던 분은 할머니셨다. 푸근한 할머니이셨다기 보다는, 엄한 할머니에 가까우셨지만, 학교에서 엄마 모시고 오라고 하면 난 늘 할머니께서 와주셨고, 소풍도 할머니와 함께 갔었다. 그런 할머니께서 좋아하셨던 음식이, 반찬 중에서는 무우 생채, 과일 중에서는 참외, 그리고 간식 거리중에서는 바로 호떡이었다. 겨울이 되면 종종 이 호떡을 사오셔서는 우리들도 나눠 주시고 할머니께서도 드시곤 했다. 먹을 때 꿀이 뚝뚝 떨어지기도 하고, 단 음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딘지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단맛이 아니라서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께서 직접 간식 거리를 사주시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에 주시면 먹기는 했다. 

큰 병 앓지 않으시고, 그저 노환으로 두어 달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신 할머니. 할머니 생각이 나서 아이가 다 먹을 때까지 말없이 쳐다 보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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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8-11-1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하면 저도 아픈 기억이 있어요 차마 말하기 어려운 기억이죠.
다린이 참 맛나게 먹네요.
부럽다 다린아.
재주 없는 전 정말 흑흑 쥐구멍 찾아야겠어요
그런데 호떡 함 만들어볼까요. 잘 될지 망치는 건 아닌지. 걱정만 앞서요.
사실 팬케이크도 그다지 잘 만들지 못해서

바람돌이 2008-11-1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호떡 별로 안좋아하는데 우리집 아이들은 정말 좋아해요.
저도 가끔 호떡 사서 구워주곤 하는데 요즘은 정말 그것도 시간이 없어서 잘 안하게 되네요. 발효시킬 시간이 안나와서... ^^
호떡과 할머니의 추억은 마음이 찡합니다. 저는 외할머니 한분만 얼굴을 기억하는데 그것도 워낙에 멀리 사셔서 일년에 1번 얼굴보기도 힘들었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요.

hnine 2008-11-12 04:44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막상 만들어보면 어려울게 없어요. 어려우면 제가 하겠어요? ㅋㅋ오븐에 굽지 않고 프라이팬에 금방 구워낼 수 있어서 편하더군요.

바람돌이님, 예전에 할머니께서 사주시던, 종이 봉투에 담겨져 이미 꿀이 그 봉투에 삐죽삐죽 나와 묻어 있는 그런 호떡만큼 집에서 만든 것이 맛은 없겠지요? 크기도 훨씬 자그마하게 만들었고요. 음식과 함께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음식이 각별해지는 것 같아요.

Kitty 2008-11-1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호호떡!!!!!!!!!!!!!!!!!!!!!!!!!!!!!!!!
안그래도 오늘 날씨도 쌀쌀한데 우왕 먹고싶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hnine 2008-11-12 08:47   좋아요 0 | URL
ㅋㅋㅋ Kitty님 계신 곳도 날씨가 쌀쌀한가요?
드리고 싶어라~ ^^

순오기 2008-11-1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도 호떡은 좋으하면서도 집에선 한번도 안 만들어 봤어요.ㅜㅜ
이번 겨울방학엔 도전해봐야지~~
추억이 음식과 연관된다면 더 깊은 맛이 배일 것 같아요. 할머니 생각~~~ 끈하네요.

hnine 2008-11-12 08:4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 호떡 만들때 왜 납작한 누름판으로 꾸욱 눌러주잖아요. 저는 그게 없어서 밥공기 바닥으로 꾸욱 눌렀어요 ㅋㅋ
시간이 금방인것 같아요. 할머니께서 사다주시는 것 먹을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그 할머니 생각하면서 제가 호떡을 만들고 있다니요.

무스탕 2008-11-12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떡은 신랑이 좋아해서 가끔 퇴근길에 사옵니다.
저녁 먹기전에 한 개도 안되게 먹어요. 가위로 잘라서 나눠 먹거든요. 그리고 식으면 맛이 없으니까 바로 먹어야지요 ^^

근데, 전 집에서 뭔가를 만들 엄두를 못내는데 나인님께선 참 다양하게 시도하시고 아이도 호응이 좋네요. 부럽기만.. --;;

hnine 2008-11-12 20: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만들어서 따뜻할때 바로 먹어야하지요. 오늘 먹는데 역시 어제 같지 않더라구요.
아이의 호응을 얻을 때보다 무반응일때가 더 많아요 ^^

뽀송이 2008-11-1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도 자주 해먹고 있어요.^^;;;
마트에 가면 파는 녹차호떡 그거요.^^ ㅋ ㅋ ㅋ
엊그제는 컵케잌도 하나 붙여주더라구요.^^ ㅎ ㅎ ㅎ
음... 나인님은 직접 발효시켜서 만드셨군요.^^ 정말~ 대단하세요.
아드님 먹는 모습이 무척 귀여워요.^^

hnine 2008-11-14 06:12   좋아요 0 | URL
녹차 호떡은 색깔이 파르스름 하겠네요?
저도 밀가루가 조금 모자라길래 단호박 가루 넣고 만들었는데 만들고 나니 별로 표시가 안나네요.
발효야 뭐, 제가 하는게 아니고 이스트가 하는거니까 저는 그냥 기다리면 되지요 ^^

상미 2008-12-1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름에 지지는 호떡이 아닌 모양?
너희 할머니 생각하니까 ,준이랑 같이 떠올라.ㅋㅋ

hnine 2008-12-17 22:12   좋아요 0 | URL
기름에 지지는 것이 최종 단계이고, 저 호떡 반죽에 이스트가 들어가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