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의 <돼지꿈>을 읽으면서, 거기 나오는 여자 주인공들의 일상으로 부터, 내 집 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남의 손을 빌지 않겠다는 그 신조로 인하여 스스로 삶을 참 고달프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에너지는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매일 똑같이 해야하는 일에 써버리릴 것이 아니라, 내 집일을 좀 덜 하거나, 남의 도움을 받는 한이 있어도, 하루의 일정 시간은 생산적이고 보람을 느낄만한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먹거리에는 잘 안 통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뭐 안심하고 아이 먹일만한 것들이 많아야 말이지. 며칠 전 아이와 길거리를 걷다가 호떡을 파는 것을 보더니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오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호떡을 딱 다섯개만 만들었다.

이게 그래봐도 발효빵이라서, 이스트 발효시간이 세시간 정도 걸렸다는 사실.
다행히 아이가 맛있게 먹는다.

아이가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문득 내가 어릴 때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모시던, 돌아가신 친할머니 생각이 났다. 일하시던 엄마 덕분에 엄마를 대신해 집에서 우리 형제들을 돌봐주시던 분은 할머니셨다. 푸근한 할머니이셨다기 보다는, 엄한 할머니에 가까우셨지만, 학교에서 엄마 모시고 오라고 하면 난 늘 할머니께서 와주셨고, 소풍도 할머니와 함께 갔었다. 그런 할머니께서 좋아하셨던 음식이, 반찬 중에서는 무우 생채, 과일 중에서는 참외, 그리고 간식 거리중에서는 바로 호떡이었다. 겨울이 되면 종종 이 호떡을 사오셔서는 우리들도 나눠 주시고 할머니께서도 드시곤 했다. 먹을 때 꿀이 뚝뚝 떨어지기도 하고, 단 음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딘지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단맛이 아니라서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께서 직접 간식 거리를 사주시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에 주시면 먹기는 했다.
큰 병 앓지 않으시고, 그저 노환으로 두어 달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신 할머니. 할머니 생각이 나서 아이가 다 먹을 때까지 말없이 쳐다 보고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