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 난치병을 딛고 톨킨의 번역가가 된 박현묵 이야기
강인식 지음 / 원더박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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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마디로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인간 승리의 책이라고 해야할까? 그렇다면 승리의 대상이 된것은 무엇일까. 어린 나이에 이룬 업적일까, 아니면 병마를 싸워이겼다는 것일까. 읽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주인공 박현묵군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국내외적으로 매우 드문 유전질환인 중증 혈우병 환자인 박현묵군. 그는 태어나 걷기 시잘할 때부터 여러 심한 출혈을 겪으며 침대에 누워서 생활할 때가 많았고 입원도 잦았다.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힘들어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했으며 초등학교 다닐때에는 절반 정도만 출석할 수 있었다. 그나마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중고등학교는 다녀보지도 못하고 8년 동안을 집에서 주로 침대생활을 하며 가족 외에는 그가 좋아하는 작가 톨킨 매니아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그가 아는 사람의 전부였다. 

20세가 되던 2019년, 주치의의 소개로 신약 프로젝트에 지원하여 참가하게되었고 여기서 뜻밖의 결과가 보이게 된것이 획기적인 계기가 되어 통증과 고통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게 된다. 이에 힘입어 21세가 된 이듬해 검정고시와 수능을 치룰 결심을 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한 출판사의 제의를 받아 톨킨이 엮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번역자가 되어 달라는 제의를 받아들이기까지 하였다. 수능을 치르고 다음해 2021년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 그의 나이 는 22세였다. 박현묵군의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쓰고 싶어한 책의 저자 강인식 기자와는 이때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기 시작하였다. 책을 내기 위한 일종의 인터뷰였다. 이것이 이 책이 나오게 된 과정이자 책 내용에 대한 간단한 줄거리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대신 현묵 군의 엄마는 집에서 공부방을 꾸려 엄마의 직장이자 현묵이 교육의 장소를 만들었다. 늘 내출혈이 일어날 가능성을 안고 살았으며 그럴 때마다 끊이지 않는 고통을 참는 시간들이었다. 늘 아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했다. 그렇게 집에서만 지내던 생활 중 집에 있던 해리포터 1,3,4 권을 읽게 되었고 읽다 보니 즐거웠다. 다 읽어치우고 집에 없는 2권을 빌리러 집 근처 도서관에 휠체어를 타고 다녀올 정도였다. 그렇게 5권, 6권을 빌려다 읽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톨킨의 <반지의 제왕> 을 처음 만나게 된다. 어떻게 보면 현묵의 운명을 바꿔 놓은 이 책이 처음부터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난해하기만 한 책 1권만 읽고 제쳐놓은 채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톨킨에 대한 유튜브를 접하게 되었고, 반지의 제왕을 톨킨이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로서가 아닌, 신화가 없는 영국에 신화를 만들고 싶어 톨킨이 창조한 세계임을 알게 되었다. 반지의 제왕은 하나의 이야기 수준을 넘어서 하나의 또다른 세계였고 기록이었던 것이다. 가상의 언어를 만들었고 가상의 인물들을 만들어 낸 톨킨은 그야말로 다른 급의 작가였다. 박현묵 군은 감탄했고 그 안에 흠뻑 빠져들어 탐구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현묵군은 톨키니스트의 한 사람이 되었고 그것이 현묵군의 어찌보면 공허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메워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때 마침 새롭게 현묵의 주치의가 된 한림대부속 한강성심병원의 김준범 의사는 현묵을 처음 만날때 절망과 어두움, 부정적인 마인드의 젊은 환지일거라 예상했으나 현묵에게는 전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몇번의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경험이 있는 환자로 보이지 않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힘든 통증과 출혈 속에서도 틈틈이 학업에 몰두하는 모습, 희망의 가능성을 놓치 않는 태도, 지혜와 성실함, 신약에 도전해보는 용기 등에 감명을 받은 김준범 의사는 나중에 현묵이 대학에 지원할때 추천서에 그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책에 몇번 인용된 현묵의 다음과 같은 말,

"아프다는 것으로 나를 정의하거나, 무엇을 못 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삼고 싶지 않아요. 내가 무엇을 못 했다면 그것은 나태함 때문이에요. 장애 때문이 아니죠."

그의 삶에 대한 태도이다. 변명하지 않는 삶. 

나는 나를 무엇으로 정의하는가. 무엇으로 나의 나태함을 변명하려 하는가 생각해보게 한, 가볍고도 무겁게 읽을 수 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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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8-23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박군 보다 몇 배를 산 저는 뭐하고 사나 참 부끄럽게 만드네요.
이 책 기억하겠습니다.

근데 책이 싸지는 않군요.ㅎ

hnine 2022-08-23 21:23   좋아요 0 | URL
저도 많이 부끄러웠답니다.
동시에 현묵이를 이렇게 키운 현묵이 어머님은 어떤 분이실까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이런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가족, 특히 어머니의 삶에 대한 태도가 곧 자식의 삶에 대한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칠테니까요.
그건 그렇고 <반지의 제왕>을 시도도 못해본 저로서는 그점도 부럽네요.

페크pek0501 2022-09-04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을 대하는 태도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싶네요. 저는 특히 어떤 시련에도 티 안 나고 태연히 보이는 사람을 우러러 봅니다.
가령 암에 걸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타나 활짝 웃는 사람, 이런 분 보면 막 안아 주고 싶어져요. 마치 나에게 ˝당신도 병에 걸리면 나처럼 나을 수 있어.˝라는 메세지를 주는 것 같거든요. 저를 힘나게 하죠.^^

hnine 2022-09-04 23:16   좋아요 1 | URL
실은 어떤 사람의 행적이나 업적보다 감동받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대하는 태도 같아요. 작은 감정에도 휘둘리고 (쉽게 웃고 쉽게 화내고) 표내는 저로서는 더욱 그렇네요.
책 속의 저 아이는 (제 아들과 비슷한 나이기 때문에 이렇게 불러요) 나이는 그래도 생각은 더 어른 같더라고요. stella님의 댓글에도 썼지만 저 엄마가 어떤 분이신지 상상해보게 되고요.

숲노래 2022-10-19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만 읽은 아이들이 꽤 많더군요.
반지의제왕은 까맣게 모르는 아이들이 많고요.

우리 집 큰아이는 열 살 무렵 동서문화사 1980년대 옮김판 <반지 이야기>를 처음 읽고서 이 책을 그야말로 끝없이 다시 읽고 또 읽더군요. 큰아이가 이따금 하는 메이플스토리란 게임이 있고, 이 게임을 하며 만난 ‘게임동무‘가 해리포터가 재미있다고 말했다기에 해리포터를 처음으로 장만해서 건네주었는데, 15살 큰아이는 해리포터를 한 번만 슥 읽고서 ˝이렇게 재미없는 책을 왜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하지? 이상해.˝ 하고 한 마디만 하고는, 해리포터는 집에서 치워 달라 하시더라구요.

저도 톨킨 님이 쓴 책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끼는데, 이 대단한 숨빛을 느낀 아이가 마음빛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이야기꾸러미라면 이 책을 읽어 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hnine 2022-10-19 12:53   좋아요 0 | URL
저는 해리 포터도 반지 이야기도, 모두 끝까지 읽지 못한 사람으로써 부끄럽기만 합니다.
숲노래님 댓글에서 오랜만에 사름벼리 소식을 읽어 반갑습니다. 벼리와 보라가 거의 매일 등장하고, 그 소박한 밥상 차림 사진을 구경하던 때가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