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1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명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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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 난 뒤 세상을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가 제일 슬퍼할까 부터, 이 세상은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겠지 하는 생각까지. 하지만 죽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남은 사람의 얘기일뿐.

제목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에서 죽은 사람은 엄마이다. 엄마는 죽어 누워있고 아버지와 다섯 남매가 엄마가 죽기 전에 묻어달라고 부탁한 장소로 엄마의 관을 마차에 싣고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 중 <소리와 분노> 다음으로 많이 알려지고 읽혀진 작품이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가 아닐까 한다. 소리와 분노보다는 그나마 덜 복잡하고 따라가기 어렵지 않아 보통 먼저 읽기를 권유받는 작품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도 만만치 않았다.

윌리엄 포크너는1897년 미국 남부의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그는 작품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그가 설정한 미국 남부의 한 가상의 장소를 무대로 하여 쓰고 있는데 성인이 되어서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으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소설 습작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그가 30대에 발표한 작품이다.

다양한 직업 경험과 미국 남부의 독특한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배경은 그로 하여금 실존문학작가로서 출발하게 하였을지 모르나 작품에 대한 투철한 작가의식은 그로 하여금 기존 문학 기법의 답습보다는 실험적 시도를 하게 하였고 이 작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에서 보여지듯 다양한 관점을 이용한 특이한 서술 구조, 화자의 의식과 심리 상태 묘사 방법 등은 그를 미국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 작가의 자리에 올려놓았고 이러한 독특한 문학세계는 그에게 전미 도서상,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다.

소설은 한 가족의 엄마 애디의 죽음을 출발점으로 한다. 애디는 집에서 40마일이나 떨어진 자기 고향에 묻어달라는 부탁을 하고 죽는다. 애디의 죽음에서 시작하여 애디를 묻기까지의 열흘 동안의 여정을 총 열다섯 사람이 돌아가면서 화자가 되어 서술을 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 다섯 화자 중에는 무능하고 답답한 남편 앤스가 있다. 40마일이나 걸려 가야하는 먼 곳에 묻어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려한다는 것이 오히려 의외라는 생각이 들만큼 무능하고 이기적이고 사태 파악과 대처 능력이 한참 부족한 가장이다. 엄마가 임종에 이를때부터 아무 말 없이 관을 만들기에만 전념하는 큰 아들 캐시는 그것만이 자기의 의무이자 책임인양 처음부터 끝까지 말없이 관 짜는 일에만 전념한다. 엄마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면서도 직시하기를 두려워하는 둘째 아들 달, 가장 극적인 인물 세째 아들 주얼은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게는 가족보다는 말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 고명딸 듀이 델은 가족들 모르게 혼전 임신을 한 상태이며 아무도 모르게 아기를 지워버리려고 한다. 막내아들 바더만은 아직 어리기도 하고 엄마가 죽었다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물고기의 죽음과 혼동을 할 정도로 지능 수준이 낮다. 가족 외에도 화자에는 동네 목사, 약사 부부, 이들의 이웃 툴 부부등이 나와 애디의 죽음이라는 사건 자체보다는 그 이후 시간을 보내는 방식과 관점을 각기 다른 관점으로 판이하게 다른 상황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작가는 집중하여 보여주고 있다.

분위기는 대체로 암울하고 희망적이지 못하다. 가족 중 누구도 앞날이 밝아보이지 않는다. 제일 답답하고 변화가 기대되지 않는 인물 아버지 애디의 의외의 반전으로 맺는 결말은 독자로 하여금 이게 뭔가 하는 페이소스마저 안겨준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 인간의 죽음은 죽은 이 외 다른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인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짐작하는 의미와 아무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허망함까지. 


작품의 명성에 비해 분량도 그리 많지 않고 소개글을 보니 엄마의 죽음이라는 핵심 사건 외에는 복잡하게 사건이 얽혀있는 구성도 아닌 듯하여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난 후엔 가볍게 시작했던 것을 후회하며 더욱 이것 저것 참고 자료를 찾아 이 작품에 대한 다층적 해석에 대해 찾아보게 하였다. 지금까지도 많은 학자들에게 과제처럼 남겨져있다는 윌리엄 포크너의 이 작품에 대해 책의 말미에 해설자는 다음과 같은 권유를 덧붙여 놓았다.

머리는 명석한데 삶에 대한 성찰과 느낌이 없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상상력도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포크너를 권하고 싶다. 한 점으로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며 존재가 확대되는 기쁜 체험이 있길 바란다. 

(작품 해설 309쪽)


머리는 그리 명석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상상력은 포기할 수 없는 내가 읽으며 버거웠던 이유가 있었나보다.

그래도 이제 <내가 죽어 누워있을때> 라는 제목이 더 이상 의문스럽지 않고, 제목이 왜 이미 죽은 엄마 <나>로 되어 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누군가 죽어 누워있을때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것도. 단, 죽은 그 사람에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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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6-21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09쪽의 해설을 읽으니 제가 꼭 읽어야 할 책 같네요.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며 죽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이 책도 읽으면 좋을 것 같네요.

hnine 2022-06-21 14:32   좋아요 2 | URL
페크님,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이반일리치 본인의 관점에서 주로 쓰여있지요. 이 소설은 달라요. 어떻게 보면 죽은 사람은 쏙 빠지고 주변 인물들에 의해 서술이 이루어져요. 죽은 엄마가 화자가 되는 부분은 짧게 한번 나오긴 하지만요.
번역자의 해설 인용한 부분을 보면 소설을 읽어야하는 이유를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 같지요?
이 작품을 제가 제대로 다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할 것 같은 (특히 소리와 분노) 생각이 드는 것 보면 여기가 끝은 아닌 것 같아요. 이 소설은 연극으로 만들어져도 책 만큼 의미가 잘 전달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yamoo 2022-06-28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디게 재미없더라구요~ 포크너는 저와 안맞나 봐요~~죄다 지루해서 걍 읽다 덮어버린다능~~ㅡㅡ;;

hnine 2022-06-29 06:32   좋아요 1 | URL
벌써 시도하셨었군요.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지요 ㅋㅋ

mini74 2022-07-08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이해한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이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당선 축하드립니다 *^^*

hnine 2022-07-09 12:11   좋아요 1 | URL
제목부터 확 잡아끄는데가 있는 책이었지요.
죽음은 작가들뿐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요.
이렇게 일부러 들러서 축하해주시고, 감사합니다.
mini님도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