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올리버, 특색없는 평범한 이름.
천 개의 아침, 어디서 본 것 같은 제목.
그래서였는지 다른 분의 이 책 리뷰가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걸 보면서도 직접 읽어볼 생각까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읽었다.
1935년 미국 태생 메리 올리버는 서른 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출간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시집 이전에 우리 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온 그녀의 책들은 모두 산문집이었다. 짐작컨대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산문과 같은 느낌이듯, 산문집에 실린 글들도 시 같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2012년 Penguin press에서 출판된 「A thousand mornings」를, 민승남 번역으로 우리 나라에선 2020년에 출간되었다. 36편의 시가 원문과 함께 실려있는데 번역된 시도 그렇지만 원문을 읽어도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다. 어렵지 않은 언어로 쓰여진 시이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이 분명하고 시인 자신의 목소리를 일관성있게 분명히 내고 있다면 독자로서 더 반가울 것이 없다.
자연의 변화, 매일 일어나는 단조롭고 시시해보이는 일, 함께 사는 개, 주위의 식물과 동물 들에서 삶을 발견하고, 깊은 생각보다 그런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일깨워준다.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라는 시에서, 아침 바다로 내려가 파도가 밀려오고 물러가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신세가 비참하다며 나 어쩌면 좋지? 라고 한탄하는 말에 바다가 대답한다 '미안하지만 난 할 일이 있어.' 라고.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
아침에 바닷가로 내려가면
시간에 따라 파도가
밀려들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지,
내가 하는 말, 아, 비참해,
어쩌지.
나 어쩌면 좋아? 그러면 바다가
그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하는 말,
미안하지만, 난 할 일이 있어.
비참해하지 말고 현재 눈 앞에 있는 너의 일에 충실하라는 파도의 대답은 곧 시인이 자신에게 가르치는 말이다.
'마침 거기 서있다가 (I happened to be standing)' 라는 시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일들로 가득 차서 나에게만 집중하며 세상을 걸어 다닌다는 것, 그것은 내가 진실로 살아 있다고 부를 수 없는 상태일지 모른다면서, 고양이가 햇살 속에서 토막잠 자는 것, 주머니쥐가 길을 건너는 것, 굴뚝새가 쥐똥나무에서 노래하는 것, 그런 행위들이 고양이, 주머니쥐, 굴뚝새의 기도가 아니겠는가, 기도보다 의미있는 것은 일상, 시시해보이는 일상일지 모른다고 했다.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 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정원으로 걸어 들어간 시인은 거기서 정원사가 장미들을 돌보고 있는 것을 본다. 자기 할일을 하고 있는 정원사를. 그는 단순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 ('정원사')
이렇게 시인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보다는 단순한 일상에 집중하라고 말하고 있다.
'허리케인'에서는 끝장을 본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자연의 경이로운 현상을 노래하고 있다.
나는 내 잎들이 포기하고
떨어지는 걸 느꼈어.
허리케인의 손등이
모든 것들을 후려쳤지.
하지만
진짜 나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봐,
허리케인들이 다 후려치고 지나간 나무들에서 봄도 아닌 여름 끝 무렵, 새잎이 돋아나는걸 보았다. 잎이 돋아날 철이 아니었는데, 다 끝장난 것 같아보였는데.
이 시는 다음과 같이 맺는다.
어떤 것들에겐 철이 아닌 때가 없지.
나도 그렇게 되기를 꿈꾸고 있어.
바닥까지 내려간 후 다시 시작되는 내용은 '어둠이 짙어져가는 날들에 쓴 시'에서도 나타난다.
해마다 우리는 목격하지
세상이 다시 시작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풍요로운 곤죽이 되어가는지.
존재했던 것의 원기가 존재할 것의 생명력과 결합된다 (The vivacity of what was is married to the vitality of what will be.)는 것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실이라면서, 세상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오늘 우리는 쾌활하게 살아가야지 않겠냐는 시인의 말에 혼자 고개 끄덕거렸다.
'썩은 그루터기에서, 무언가 (Out of the stump rot, something)' 라는 시에서도 같은 맥락을 발견한다.
예쁜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여기 오지 마.
대신 그림을 봐,
아니면 수선화를 기다리든지.
지금은 봄,
어수선한 숲속, 소란스러운 연못가
봄은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야
위의 연은이 우리가 상상하는 예쁜 그림같은 봄이라면, 아래 연은 실제의 봄,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기 위해 어수선하고 소란스런 실제의 봄이다. 생명은 치열한 것, 어수선하고 소란스런 과정을 통해 시작되고 또 유지되는 것.
1984년 퓰리처상, 1992년 전미도서상을 받았고 책 뒤에는 메리 올리버에 대한 유명인사들과 각종 출판사의 찬사가 실려있다. 자연을 교과서 삼아 가장 단순한 언어로 삶의 가장 밑바닥 진실을 말하고자 한 메리 올리버. 중요한 것은 단순하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simple, yet sufficient. 단순하지만 충분한.
어쩌면, 삶의 가장 중요한 진실은 많이 배우고 많이 읽고 많이 말하고 많이 쓰는 것보다 매일 반복되는, 아주 단순해보이는 그 일상 속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하찮아보이는 그 일상 속에.
이 시집에서 내가 발견한 일관된 목소리는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