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는 어디 있나요
하명희 지음 / 북치는소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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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편의 짧고 또 긴 소설 모음집이다.

소설 한 편당 길이는 짧으나 동시에 긴 소설이라고 한 이유는 여운이 그만큼 오래 갈 것 같기 때문이다. 

하명희 작가는 2009년에 등단해서 <나무에게서 온 편지>, <불편한 온도>등을 출간한바 있지만 나는 이 책이 처음 읽는 작가의 작품이다.


어느 동네에나 한 사람 있을 것 같은 바보 역할 영주 언니를 어린 아이의 눈으로 그린 <겨울 강>,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쪽방촌 청년들의 얘기 <삼월의 눈>, 세월호 이야기 <배가 들어오는 날>, 둥지를 지키려다 둥지를 떨어뜨린 새에 비유될 수 있는 아버지란 존재,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세월, 그런 아버지의 죽음 이후 고요해져가는 엄마의 기억을 그린 <보리차를 끓이며>,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곳에서의 일상을 그린 <우체국 가는 길>, 헤퍼보이는 웃음의 이유가 한없이 외롭고 처량한 사람이 있고 그런 이들을 알아보고 외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 <청자의 노래>의 두 여자가 그렇다. 두 사람이 가까워져 가는 관계를 마지막 문장으로 이렇게 표현했더라.

차지도 않은 공이 우리 둘 사이에서 출렁였다. (166쪽)

모든 뒷모습은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파란 발자국을 남긴다는 <파란 발자국>은 어느 편집 교정자의 일상을 그린 단편이다. 불꽃놀이의 불꽃 터지는 소리이면서 자동차 타이어 터지는 소리 <펑>은 추석에 얽힌 작가 개인의 얘기인듯 읽혔고, 수녀가 된 친구와 그 친구의 초대로 가서 보게 된 소년들의 치유연극 이야기 <십일월의 연극>에는 자기 집에 불을 지른 소년이 나온다. 먼저 세상을 떠나보낸 가족이 있는 슬픔을 안고 있는 엄마와 딸이 함께 제주도 종달리로 여행을 하는 <종달리>. 낯선 곳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그곳이 익숙해져갈 무렵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까지 때로 친구 사이 같은 모녀의 대화로부터 가족을 잃은 가족끼리 서로 힘이 되어주고 위안을 주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집밖으로 떠도는 청소년, 시멘트 벽속으로 숨어들어간 소녀의 이야기 <시멘트 소녀>, 마지막 단편 <달빛을 만진 날>은 치킨 배달 도중 사고로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배달소년과 개가 땅바닥에 누운 채로 받는 달빛의 어루만짐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좋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겨울 강>, <보리차를 끓이며>, <청자의 노래>, <종달리>를 들겠지만 다른 작품들과의 차이는 근소할 뿐이다. 

사실주의 소설의 느낌으로 보면 공선옥 소설을 읽을 때의 느낌이 들때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 의견일뿐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을 더 읽어보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한 작가의 소설을 읽는 동안엔 하나의 다른 세계에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이고, 내가 아는 세상도 조금씩 넓어가는 느낌으로 책을 덮는다. 그 세상이 늘 더 아름다운 세상은 아닐지라도 기꺼이 계속 넓혀가고 싶다. 

작가는 인간을 보는 눈이 기본적으로 따뜻한 사람이구나 라는 발견이었다. 일상의 아주 작은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서는 마침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마무리하는 것은 작가의 내공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할 것 같은 물건, 사람, 일상 등을 주워올려 의미와 가치를 읽어내고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주는 마음과 눈은 모든 작가의, 신이 주신 능력일까. 다른 사람들이 눈길 주지 않는 것을 혼자, 오래 볼수 있는 사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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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1-10 2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나무에게서 온 편지 읽고 참 좋았는데 이 책도 보관함에 넣어두고 챙겨 읽어야겠네요.

hnine 2020-11-11 13:42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부터 읽었으니 작가의 다른 소설 읽어보려고요. <나무에게서 온 편지>부터 읽어야겠네요.
요즘 좋은 소설을 다시 많이 읽게 되어 신나요.
이 책도 추천드립니다. 더구나 한편 한편의 길이가 길지 않다보니 금방 읽어요.

서니데이 2020-11-1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표지의 고래가 위에 있어서 깊은 바다속 같은 느낌이 들어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hnine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hnine 2020-11-14 22:05   좋아요 1 | URL
잘 보셨어요. 고래, 등대, 검은 바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두개의 눈사람의 뒷모습이 그려진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지요. 작가의 따님이 그려주었대요.
이번주에 제 아이가 오랜만에 집에 와서 즐거운 주말 보내고 있는 중이어요. 서니데이님도 평안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0-11-24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단편집을 오디오북으로 반복해 듣곤 해요. 좋거든요.
이 책은 어떨지 기대가 되네요. ^^

hnine 2020-11-25 12:13   좋아요 1 | URL
읽었던 책을 반복해서 읽기가 쉽지 않은데 어떤 책이기에 반복해서 들으실까 저도 관심이 갑니다.
하명희님은 여기 알라딘에서 활동하시던 분이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