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같이 올릴 이미지가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어릴때 너무나 갖고 싶던 전집 계몽사 어린이 세계 명작, 자그마치 50권 짜리이다. 전집류, 그것도 아이들을 위한 전집류가 요즘처럼 흔하던 때도 아니니, 50권 짜리 전집을 갖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 중의 꿈. 벽돌 색 케이스에 한권 한권 담겨 1번부터 50번 까지 가지런히 꽂혀 있는 그 전집이 얼마나 가지고 싶었던지. 당시 내가 피아노 레슨 받으러 가던 선생님 댁에 그 전집이 있었는데, 가서 다른 아이 레슨 받는 동안 기다리면서 잠깐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내가 주로 빌려 읽는 곳은 초등학교때 친하던 친구 집에서 였다. 한권 빌려다 읽고 다 읽으면 가져다 주고 다른 권 빌려 오고. 그때도 숫기 없던 나는, 빌릴 때마다 친구 눈치를 봐야 했다. 이 책 빌려 줄래 가 아니라, 이 책 좀 봐도 돼? 라고 평소의 반 밖에 안되는 목소리로.

어릴 때 일을 비교적 잘 기억하는 나와, 자기는 어릴 때 일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누가 물을새라  한마디로 잘라 말하는 남편. 그런데 아이 책 얘기를 하던 중이었나, 이런 저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다가  문득 어릴 때 보던 책이 화제에 올랐는데, '나 어렸을 때 너무너무 가지고 싶던 전집이 있었는데...'하며 이 계몽사 어린이 세계 명작 얘기를 했더니, '그거 나 있었는데.'하는 거다. 다른 일로는 부모님을 졸라 본 적이 없는데, 책 사달라고 조른 적은 있었단다. 그렇게 졸라서 산 책이 바로 이 전집이었다고. 그 때 부터 마흔이 넘은 두 사람이 서로 '닐스의 모험'이니 (남편은 이게 제일 기억에 남는단다), '에밀과 탐정', '소공자', '소공녀', '프랑스 동화집', '영국 동화집', '일본 동화집', 50권 중에 엄연히 포함되어 있던 '삼국지' ;'수호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신이 나서 떠들었는지 모른다.

엄마는 그때 내가 책을 사주면 하루가 멀다하고 금방 읽어치워 당해낼 수가 없을 것 같길래, 책은 빌려 읽는거라고 하시며 잘 안 사주셨다고 하신다. 지금 그 전집을 다시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요즘은 좋은 아이들 책도 넘칠 만큼 많이 나오고, 또 여의치 않으면 전집 대여를 해주는 곳도 많아 나도 많이 애용하지만, 그때는 참 책이 고팠다. 그런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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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01-18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사실 '그 또래' 아래위 10년씩이라면 누구나 알아요. 1권 그리스 신화, 2권 호머이야기, 3권 성경이야기, 그랬었지요. 이 책 얘기는 제 서재에서도 여러번 했었는데요, 아직도 헌책방에선 인기 품목이래요. 향수를 가진 이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해적판;;들인데다 일본어 중역이 대부분이었지만 송영방 화백의 삽화가 앞표지 뒤에 끼어있었고 제법 수준있는 것들이었죠. 저는 거기 있었던 동화들 한권 한권이 모두 기억에 남지만 전래동화 아닌 것들 중에서는 엘리너 파전 '보리와 임금님', 슈토름의 '호수'('집없는 천사'하고 '인형놀음장이 폴레'랑 같이 묶여 있었어요), 이런 것들 기억에 남아요. (그런데 소공녀는 거기 없었던 것 같은데... 소공자만 있지 않았나요)

marine 2007-01-18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저도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소녀 세계명작 전집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린이 시절 전집으로는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햇님문고" 가 생각나네요 100권짜리 책이 책꽂이와 함께 배달됐을 때 너무 흥분해 기절할 뻔 했었지요...^^

씩씩하니 2007-01-1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있었는대..아빠가 세계어린이의 핸가,,그 때 사주셨어요...
학교 갔다오면 얼른 뛰어와서,,,책을 몇권 빼가지고 가서 집 담 옆 양지 바른 곳에서 누룽지 먹으며 읽고 또 읽었던 생각이 나요..
참 그 때 선물로 따라온책이 셜록홈즈시리즈였지요,,흐...
님 덕분에 오랜 추억에 빠져봅니다...

hnine 2007-01-1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1권이 뭐였더라..남편이랑 얘기했었는데, 그리스 신화였군요! 보리와 임금님은 저도 기억나는데, 호수는 가물가물~ 기억에 남아 있는 책들도 역시 남다르시네요 ^ ^ 소공녀는 거기 없었던가요? 남편에게도 한번 물어봐야겠네요. 기억을 공유해주시니 반갑고 기쁩니다.

블루마린님, 제가 부러워하는 아이셨군요 흑 흑...거기다가 100권짜리 전집까지...부러워요 ~~

씩씩하니님, 양지바른 곳에서 누릉지 먹으며 ^ ^ 정겨운 장면이네요. 셜록홈즈시리즈, 와...제가 또 홈즈 왕팬이었다는거 아닙니까..

nemuko 2007-01-19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갖고 싶어 노래를 불렀는데 결국은 빌려서 읽은 기억만 나네요. 지금이라도 다시 구할 수 있다면 구하고 싶어요... 그나저나 딸기님 기억력 대단하신데요^^

hnine 2007-01-1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emuko님, 지금 다시한번 그책을 보고 싶은걸보니, 이제 안보겠다 싶으면 그때 그때 처분하는 아이책들을 그냥 집에 두는게 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nemuko 2007-01-1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래서 책 다 꽁꽁 싸매두고 있잖아요^^ 덕분에 집이 터져 나가기 직전이예요

kimji 2007-02-04 0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한 질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요(그렇게도 판매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목록을 보고 아버지가 읽혀야 할 책,만 골라서 샀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까, 50권 중에서 30권, 혹은 40권, 뭐 이런 식으로 권수를 조금 줄여서도 판매한 걸로 기억을 해요. 그런데 기억이 나는 건, '거꾸로 가는 나라'였던가? 어찌어찌 해서 어느 나라에 떨어졌는데 모든 게 다 거꾸로인거에요. 심지어 밥도, 입에서 꺼내 그릇에 담는 겁니다! 그런데 말을 거꾸로 안 하고, 낮과 밤도 거꾸로가 아니고, 어린 나이에 생각해도 논리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내용을 불신;; 했던 기억이. 그런데 쓰다보니 제 기억이 맞는지조차 모르겠네요;; 쿨럭;;
(뒤늦은 페이퍼 댓글이라니;; )

hnine 2007-02-04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그래요? kimji님까지 기억하실 줄이야~ (저보다 훨씬 젊으신 분이시라서^ ^)
어린 나이에도 논리적이셨나봐요.
나이가 드는 증거인지 요즘 자꾸 옛날 생각이 나서 말이죠, 책도 장소도.
찾아주셔서 감사드려요. 뒤늦은 댓글이라니요, 저 다 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