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주의 -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 한국 자본주의 1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자본주의] 바르게 알아야 해법을 찾는다

  

경제에서 사람은 노동이고 돈은 자본이다. 경제는 노동과 자본이 결합해서 생산을 하고 성장한다. 그러나 노동과 자본이함께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로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노동과 자본이 분배의 문제로 대립하고,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고 억압해 온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다.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는무엇보다도 자본이 정의로워야 한다. 자본이 만들어내는 문제는 자본을 가진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 자본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칼이 사람을 베는 것이 아니라 칼을 쥔 사람이 베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정의롭게 작동하려면, 노동으로 삶을 꾸리는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민주적인 정치 절차를 통해 자본가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단 그것부터 해봐야 한다. - 후기 中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전 세계적 고민이 계속 되어오고 있다. 기세등등해진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외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보다 자본주의의 생명력은 질기며, 자본주의는 종말의 대상이 아니라 고쳐서 다시 쓸 대상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이러한 세계 경제 상황 하에서 우리가 당면한 한국 경제의 현안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이다. 개혁을 외치고 정권을 교체하며 한국 경제를 망친 자와 살릴 자를 찾아왔다. 현재 핫한 이론과 처방들을 신속하게 가져와 적용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호들갑과 책임 미루기만 가득해 시끄러울 뿐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거나 더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 경제는 모르면서 애먼 외국에만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이다. 지금 한국 경제, 한국 자본주의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어떤 답도 얻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기획 및 구상에 1년, 집필에 3년 해서 꼬박 4년에 걸쳐 쓴 책이라 하였다. 전공서를 보는 듯한 두툼한 두께(700페이지 이상)에 주석도 700개가 넘어 간다. 가장 놀랐던 것은 장하준 교수의 ‘첫 책’이란 점이었다. 그만큼 단단히 작정하고 쓴 책이다. 때를 기다렸다고 하였다. 작가는 우리나라가 계획경제 기조를 완전히 버리고 완전 자본주의로 돌아선 것은 1994년에 와서라고 하였다. 20년 정도 되었으니 비로소 한국 자본주의의 면면들을 조목조목 따져볼 때가 되지 않을까 용단을 내린 듯싶다. 또한 안철수 캠프 참여 이후로 더욱 불거진 세간의 질문 공세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정치적경제적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던 차였다. 그는 김대중, 손학규, 안철수의 싱크탱크를 자처했고, 많은 대중들로부터 존경받는 대표적인 이 시대의 ‘실천하는 지식인’인 동시에 기업저격수 혹은 신자유주의와 외국투기자본의 앞잡이로 불렸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 자본주의>를 통해 독자는 저자에 대한 궁금증을 거의 풀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저자는 정치적으로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로 볼 수 있고 책 출간 이후 가진 인터뷰들에서 정치인을 할 생각은 없다고 분명히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케인지언이라기보다는 주류경제학 입장에서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되 정의롭고 정상적인 시장의 회복을 고민하는 개혁적 경제학자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요즘 국제사회에서 핫한 피케티의 자본세 도입이나 기타 정부 규제나 각종 사회주의적 기제는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해법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초과 내부유보세를 통한 기업 자금 흐름의 정상화가 저자가 가장 꼽는 한국 자본주의의 난항 타개 해법이고, 사회민주주의의 경제정책모델들을 대안까진 아니더라도 참고 정도는 괜찮다고 말한다. 이 첫 책을 통해 저자가 쓰고 싶고 써야 했던 글은 모두 표현했다고 본다.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책은 아니지만, 저자의 주장에 갑론을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례없는 전 지구적인 정책 대응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6년이 경과한 현재까지도 세계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올 뚜렷한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경기 부양책이나 부분적인 금융 규제의 개혁으로 극복될 수 있는 일시적인 경기순환상의 침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이 금융 위기를 통해서 현실화된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지배적이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대안 체제의 모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정도로 자본주의는 전례 없이 심각한 체제 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 p.19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한 이후 일부에서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견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금융 위기를 계기로 노출된 문제들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자본주의로 진화해 나갈 방향과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p.265

선택은 ‘자본주의 대안 찾기’ 아니면 ‘자본주의 어떤 고쳐 쓰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p.405

 

최근 출판·언론계에 조용히 유행 타는 단어가 ‘톺다’이다. <한국 자본주의>에서 장하성의 글쓰기는 이 단어가 몹시 어울린다. 저자는 이 책을 3부로 구성하여 한국 자본주의를 톺아보고, 따져 묻고, 고쳐 쓰고 있다. 두께 때문에 지레 겁먹기 쉬운 책이나 글씨 크기가 크고 특별한 경제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신문 기사 읽는 정도 수준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을 보고 감탄하였다. 읽다가 앞 내용을 잊어버린 독자를 위한 배려인 건지 후반부로 가면서 동어반복이 나타나는데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글자 크기도 좀 더 줄이고 반양장으로 갔으면 100쪽 이상 적고 휴대하며 들고 다니기 편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읽어보았지만 역시 책상에 앉아 자분자분 읽거나 침대 맡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읽기 좋지,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읽기는 대단히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이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규제나 신자유주의가 넘쳐서가 아니라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공정한 경쟁조차 구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p.138

한국에 투자를 한 외국인을 투기꾼으로 규정하고 그들이 돈을 벌고 떠나면 국부가 유출된다는 주장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애국적이 아니라 오히려 망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p.297

지금의 자본주의가 위기에 봉착하고 회의론이 제기된 가장 큰 이유가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위해서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은 것이다. - p.418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에서의 정의란 첫째,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절차와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함께 잘살 수 있도록 하는 분배의 정의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p.426

 

글쓰기에 욕심 있는 경제경영서 저자 중엔 우화와 비유로 푸는 것에 집착하는 이가 많다. 클리셰 작법이기도 하고, 그나마 일반 대중을 배려하는 저자들이 가장 만만하게 선택하는 방법이다. <한국 자본주의>에선 중후반부에 실려 있는 ‘한마을 이야기’가 그렇다. 저자가 우스갯소리로 책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재밌는 부분’이라고 하는데 각자 판단해보길 바란다. 학부에서 경제학 공부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이 이론과 테크닉 숙지에 정신없어 정작 한국경제사나 한국자본주의론은 배울 엄두를 못 내고 학과에서도 전공보다 교양 강의로 개설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업 듣는 기분으로 잠깐이나마 학생 기분 내며 즐겁고 심각하게 읽었다. 

이 책을 최장집 교수가 추천해서 관심을 갖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저자가 후반부에 경제학은 원래 정치경제학으로 출발한, 정치학과 한 몸인 학문이라는 환기하고 강조한다. 그래서 현상의 본질보다 이념적 기제로 접근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는 틀렸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몰이해했던 게 문제이고 위정자의 이율배반적인 정책기조가 문제이다. 박정희의 국가주도 계획경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신자유주의에 충실했던 김대중,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등 곰곰이 따져보면 한국 자본주의는 대통령들의 면면만 봐도 이상하다. 이번 출간이 우리 경제와 특수성을 바로 보고 정의경제를 고민하는 데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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