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 사회 - 소비자 3.0 시대의 행동 지침서
마크 엘우드 지음, 원종민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할인사회] 세일과 인간, 그 유착의 르포

 

 

 

 

“255,480...”, 신용카드 이용내역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바빴던 한 달이었다. 집계 마감일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결제금액을 확인하고 아쉬웠다. 휴대폰 바꾸면서 만든 신용카드, 30만원 이상 사용시 통신비 9천원 할인 말고는 별다른 혜택이 없어서 기술적으로 30여만원만 딱 쓰는 카드인데 이달엔 44,520원이 모자라 혜택이 날아갔다. 상식적이라면 지출을 줄였으니 기뻐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아쉽다. 쿠폰 때문에 안 먹어본 음식에 도전해보고, 할인 때문에 일부러 돈을 쓰는 비합리적인 소비를 아주 기꺼이 즐기고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인 마크 엘우드는 작년 흥미로운 르포 책을 출간하였다. ‘Bargain Fever’, 할인에 열광하는 소비자들과 세일의 법칙을 분석한 책이다. 속고 속이는 온갖 술수와 비상식과 비합리가 난무하는 흥미진진한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할인사회>란 제목으로 번역한 것은 최근 우리 출판계의 ○○사회(사회를 말하는 사회)’ 제목 열풍 때문일 것으로 본다. 처음북스 외에 다른 출판사들도 여럿 이렇게 원제를 바꿔 ○○사회란 제목으로 출간하는 것을 보면 현재 이 제목이 셀링포인트가 있는 것이 사실인가 보다. 저자는 현대 소비행태가 3단계째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본다, 소비 1.0은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커 생산자가 살려면 사고 말려면 마라고 가격결정권을 쥐고 있던, 산업혁명 직후 10년 동안의 시기이다. 흔히 생각하는 대공황도 넘어 정작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소비2.0은 기본 마케팅의 황금시대로 40년 이상 계속되었다. 소비자를 자극하는 감각적인 광고문구와 보통의 홍보기법이 통하던, 교과서대로 소비자를 잡을 수 있는 시기였다. 미친 할인의 소비 3.0 시대는 새천년에 접어들어서이다. 소셜커머스, 쿠폰이 난무해도 소비자를 잡기 힘든 시대, 생산자에서 상점으로, 상점에서 소비자로 권력이 이양된 것이다.

 

 

20세기 이후부터 흥정은 상업에서 일어난 패러다임 변환의 가장 널리 알려진 증거라고 볼 수 있다. ‘50퍼센트 할인이라고 적혀 있는 문구는 지금이 구매자에게 최적의 시기라는 사실과 더 이상 제가격을 내고 구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은 왜 흥정이 빈곤이 아닌 지식의 상징이 되었는지, 그리고 할인을 찾는 것이 왜 수치스러운 주홍글씨가 아닌 자랑스러운 훈장인지 설명한다.

왜 할인은 매우 상식적인 구매자에게도 효과가 좋은가?

판매자들은 힘이 약해짐에 따라 조금의 지배권이라도 되찾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울 것인가?

-  pp.19~20

 

 

우리가 쇼핑을 사랑하고 할인이란 글자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전적으로 뇌 때문이다. 섹스와 식이, 마약복용처럼 쇼핑을 하면 우리 뇌에서 도파민이 마부 분비된다. 그리고 할인 사실을 인지했을 때 쇼핑에 있어 도파민 분비가 가장 절정에 달한다. 다만 같은 할인에 소비자들의 반응이 다른 것은 가격에 대한 기대수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가격은 생물학적으로 쇼핑의 흥분을 억제하는 거의 유일한 요인이다. 그래서 1980년대에 가격 컨설턴트란 직업이 생겼다. 학자들이 프라이싱 자체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이론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경경제학이란 영역도 태동하였다. 신경경제학적 관점에서 소비자는 본능적으로 손실회피 성향에 따른 금전 손실에 대한 괴로움이 있으며, 돈의 가치를 절대적인 액면가가 아닌 비교를 통해 상대적으로 받아들이며, 거래효용을 따져 구매한다. 이에 기반을 둔, 99%에 먹히는 가격책정의 다섯 가지 요령이 있다.

 

 

1. 제조비가 아닌 소비자와 소비자가 제품에 매기는 가치를 파악해 가격을 책정하라

2. 골디락스 프라이싱: 공략제품을 비슷한 사양의 두 제품 사이에 끼워 넣어 두 제품보다 가격과 품질 면에서 더 좋은 상품인 것처럼 부각시켜라

3. 가격 옆에 할인! 세일! 대박세일!’이란 문구를 같이 붙여라

4. 세일 사인은 빨간색으로 해라

5. 숫자 이론: 9로 끝나는 가격은 저가제품, 0으로 끝나는 가격은 귀중품, 78로 끝나는 제품은 막바지 정리세일품을 의미

  

 

읽으면서 공감되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재밌는 것은 이 다섯 가지 요령은 프라이싱의 전형적인 고전기법인 동시에 아직까지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은 그냥 수많은 통계가 입증했기에 쓰고 있다. 여기까지가 책의 첫 장의 내용이다. 그 후 펼쳐지는 본격적인 할인사회의 풍경들은 더욱 눈을 뗄 수 없이 흥미진진하다. 스탁파일링이나 그루포노믹스, 그루폰 불안증이 무엇인지 쿠폰 브로커 등의 할인열병(Bargain Fever;역자는 할인열풍으로 번역)이 낳은 창조경제 사례들, 그에 저항하는 도도한 VIP산업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글쎄, 출판사의 소개처럼 올바른 소비의 길로 소비자들을 인도하는 소비지침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 적을 알고 나를 알고 매대로 뛰어들 수 있으니 그렇게 볼 구석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보다 이 책의 강점은 통속대중소설보다 더 쭉쭉 읽히는 사회과학서란 점이고 가장 소득은 할인에 사로잡힌 소비가 꼭 이상한 것만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점이라 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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