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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안 해도 심심하지 않아!
수잔 콜린스 글, 마이크 레스터 그림, 노경실 옮김 / 두레아이들 / 2014년 10월
평점 :

[게임을 안
해도 심심하지 않아] 게임보다 소중한 나와 내 어린 날
전자게임에 스스로는 별 취미가 없지만,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친동생이 게임광이자 온라인게임개발자이다.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언어와 버그와 씨름해도, 그 때문에 또래 애들처럼 연애에도
관심 없고 별일 없으면 주말엔 시체처럼 자는데도 행복하다고 한다. 황금 같은 자유시간도 자기 회사 남의 회사 가릴 것 없이 게임 테스터 하거나
게임 관련 공부하느라 다 보낸다.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기까지도 하니 항상 응원하지만 게임광의 형제로 살면서, 때론 전자기기 혹은 전자게임에
동생을 뺏긴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게임을 안 해도 심심하지 않아>의 주인공 찰리의 여동생의 기분이 이랬을까.
우리 남매는 각각 초등학교 고학년, 저학년 때야
펜티엄PC를 접했다. 혁명 같은 윈도우95가 출시되고 2년 정도 지나서야 가정 내 컴퓨터 보유가 보편화되고, 일단 서울만이라도 전체 학교에
컴퓨터가 보급되었던 것 같다. PC게임은 1992년에 처음 해보았다. 은행원이던 고모부께서 신혼집에 386을 들여놓았는데 도스 명령어를 몰라서
고모부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우리 세대는 사실 어린이 때는 PC게임보다는 팩게임과 게임보이 등의 전자게임기를
즐겼고 PC방보다는 오락실이 더 익숙하다. 전지와 OHP, 파워포인트 PT를 10대 시절 다 경험하였다. 심심할 때 그런 얘기 몇 개 조카에게
풀어놓으면 백악기 공룡 보듯 표정을 지으며 안 놀아 주려 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조카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24시간 뽀로로를 볼 수 있고, 부모님의 휴대폰을 장난감 삼아 놀았다. 글씨를 쓰는 것보다 컴퓨터 타자나 폰
문자 쓰기가 더 빠른 걸 보고 기함을 했다. 쥬니버 등을 통해 5, 6세부터 본격 네티즌 활동을 하니 초등학생 방학이 무섭다는 소리도 옛말이
된지 오래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요즘 아이들의 시력 문제이다. 인간의 시력은 생후 4개월부터 발달하기 시작해 만 7, 8세에 완성한다. 만
7, 8세 정도에 1.2에서 1.5 정도로 시력의 정점을 찍은 후 노화와 환경 등의 영향으로 점점 퇴화하는데 IT강국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그
이전에 시력 발달이 멈추고 안경 신세를 지는 애들이 너무나 많다. 가장 큰 원인이 강한 빛과 색감의 모니터 화면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세대도
이전 세대보다 눈 나쁜 이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지금 세대는 더 어릴 적부터 그걸 경험하니 훨씬 심하다.
그래서 바글바글한 안경쟁이 어린이를 볼 때마다 부모
편하자고, 선생 편하자고, 기술의 이기를 마음껏 써보자고 아이들을 너무 전자기기로 몰아넣지 않았나 싶어져 어른으로서 많이 미안하다. 찰리도 그런
21세기의 전형적인 어린이다. 컴퓨터와 악당들을 물리치는 게임 같은 것들은 좋아하지만 책 읽기나 공놀이, 동생과 놀기 등은 아주 싫어한다. 곧
핏발이라도 설 기세로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컴퓨터 모니터에 빨려들어 갈듯 게임하고 또 게임한다. 찰리가 컴퓨터에서 스스로 내려온 건 심한 청둥
번개로 마을 전체가 정전이 되어서였다. 컴퓨터가 작동을 안 하자 TV를 찾고, TV도 마찬가지니까 건전지로 움직이는 전자 장난감을 찾는다. 죄다
소용이 없다. 그렇게 수많은 물건들의 비작동에 좌절하고 나서야 겨우 여동생 제인을 본다.
그래도 제인은 찰리보다 더 '신제품' 인간임에도
컴퓨터나 기계보다 고전적 장난감과 놀이에 흥미를 보인다. 인형놀이나 숨바꼭질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제인 역시 건전지가 들어가 저절로 움직이고
소리도 내는 장난감들을 꽤나 많이 갖고 있지만 말이다. 처음 찰리에게 제인은 구세주 같은 건전지 대여 창구로 보였지만, 제인이 호락호락하질 않자
금세 실망한다. 그래도 찰리가 천성이 못된 것은 아니다 보니 금방 제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주마등처럼 지난 '세월'이 스쳐 지나간다.
동생과 함께 놀며 즐거웠던 기억들 말이다. 그래서 사과하는 의미로 제인에게 숨바꼭질을 제안하고, 숨바꼭질을 기점으로 제인과 별별 놀이를
다한다.
생각보다 장편소설 작가 중에 동화책 집필에 대한 욕망을
품는 이가 많다. 가장 큰 동기는 단연 자신의 아이 때문이다. 톨킨은 자식을 위해 <블리스 씨 이야기>를 쓰고 그렸고, 박완서는
손주를 위해 여러 편의 동화를 썼다. <게임을 안 해도 심심하지 않아>을 쓴 수잔 콜린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헝거게임> 3부작과 <The Underland
Chronics(2004-2009/미번역)> 5부작을 통해 대 장편 작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뽐낸 작가다. 그런
그녀가 2005년에 그림책을 낸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 책이 이 책이다. 여러 컴퓨터 게임과 전기장난감에 풀 빠진 아들과 막
걸음마를 뗀 어린 딸을 보며 영감을 얻어 쓴 책이 첫 그림책 <게임을 안 해도 심심하지 않아>이다.
마이크 레스터의 익살스러운 삽화는 아동서에 최적화된
본새지만 수잔 콜린스의 글은 꽤나 투박한 편이다. 당장 원제도 ‘When Charlie McButton Lost Power’이다. 영어책에서
흔히 보는 직설적인 제목이긴 하지만, 문학적 감성이 풍부한 수많은 영어 동화들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그리 썩 좋은 제목 같지는 않아 보인다.
제목만 놓고 보면 두번째 그림책인 <Year of The Jungle(2013/미번역)>이 더 시선을 끈다. 그 때문인지 이번에
판권을 사 한국어판을 낸 두레아이들이 원제를 살릴지 다른 제목을 붙일지 무척 고민한 끝에 최종 제목이 <게임을 안 해도 심심하지
않아>로 결정되었다. 또 책의 두께를 감안할 때, 예상 외로 문장의 호흡도 길고 문장 수도 많은 편이다. 출판사가 권장 연령을 8세
이상으로 둔 것도 이 때문으로 추측된다.
아이들은 순수하게 책의 내용을 즐기지만, 아이를 위해
그림책을 고르고 읽히거나 읽어주는 어른의 입장에선 새 그림책을 발견할 때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책에는 따로 작가의 말이 없어 작품의
본의를 알 수는 없지만, 훈육 차원에서 아이와 토론 감으로 쓸 그림책으로 접근하면 제목도 내용도 적당하다. 중견 동화작가인 노경실은 한국어판
추천사에서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자 감독이 되어야 함을 깨우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의 핵심을 정확히 짚은 표현이라고
생각하였다. 수잔 콜린스는 찰리의 이야기를 통해 무조건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게임만큼 재밌고 즐거운 것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찰리는 전기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을
돌아본다. 툭하면 빽빽거리는 여동생이지만, 제인이 아기였을 때 얼마나 예뻐했고 제인과 노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기억한다. 컴퓨터 게임 말고도
온몸으로 움직이며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얼마나 많은지도 기억한다. 프로그램화된 컴퓨터 게임만 게임이 아니라 보드 게임 등 아날로그 게임도 수없이
많다는 것도 곧 깨달을 것이다. 시종 현란한 사운드와 그래픽으로 구현되는 전자 게임은 정말 재밌다. 이전 세대는 8비트 픽셀의 조악하고 단순한
게임에도 열광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하지만 자신과 자신의 어린 날이 더 소중하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고, 너무 일찍 침침하기엔
아깝고 예쁜 눈이다. 그래서 게임‘만’ 있는 일상이 아니라 게임‘도’ 있는 일상이면 좋겠다. 눈에 입에 코에 자연도 한껏 담으며 말이다. 그걸
찰리처럼 정전을 겪기 전에 알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