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 포도 · 잎사귀


                                                  - 장   만   영 -


 
          순이(順伊)
벌레 우는 고풍(古風)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 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東海)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 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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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20 09:51   좋아요 0 | URL
추석이 다가오니 달이 더 생각나나 봅니다...

水巖 2005-01-18 08:44   좋아요 0 | URL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참 멋있는 표현이죠.

하늘거울 2004-09-20 14:42   좋아요 0 | URL
전 시를 잘 모릅니다. 그저 시를 읽으면서 그때 그때 느낌이 와 닿는 순간을 즐길 뿐이거든요. 근데 이 시요. 길지 않은 신데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아, 제가 이 나이에 또 울컥울컥 감동을 잘 받는 답니다. 그래서 남편은 저더러 아직도 덜 자란 사람이라고 놀리곤 하죠.

Fithele 2004-09-20 15:01   좋아요 0 | URL
15년만에 이 시를 다시 읽게 되었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순이]라는 단어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만 :-) 몇 자 안되는 공간에 바다보다 큰 앞마당을 담고 있다는 게 매력 같아요. 좋은 시 옮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水巖 2004-09-20 15:04   좋아요 0 | URL
가을하늘님, 누군 시를 알어서 좋아하나요 뭐. 느낌이 좋은 시. 과연 그런것 같군요.
덜 자란 사람이 아니라, 덜 때가 묻은 사람이란 뜻이겠죠.
그런데 바뻐지신다고요. 바뻐진다는건 좋은 일이죠만 알라딘의 좋은 인연일랑 버리지 마시고 자주 찾어 주시기를.

水巖 2004-09-20 15:20   좋아요 0 | URL
Fithelestre Hahn님, 발걸음 하셨네요. 저도 이 시를 옮기면서 의문이 생기더군요.

Fithele 2004-09-20 17:00   좋아요 0 | URL
잠깐 인터넷 검색 엔진에 찾아본 결과는 "시상을 열고 닫는 기능이다. 그냥 여자 이름이 아니지 않겠느냐" 는 해석이 지배적인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런 해석은 시의 내용에 비해 너무 얕고 운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의문 남은 채로 사는 게 나을 걸 그랬네요. ^^;;

水巖 2004-09-20 17:09   좋아요 0 | URL
이 시를 어딘가 읽은것 같어 <현대시감상>이란 장만영선생 책을 둘쳐보았더니 없더군요. 유년송 ㅡ 자작시 감상 이라고 시 몇편 자작시 해설이 있는데 이 시는 빠졌더군요.
순이란 여인을 통해서 들어가는 시 동네 , 이 여인이 없으면 시가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을, 이쯤 생각해 두죠.
 

               
                    밤은  영양이  풍부하다 


                                            -  김   현   승  -

          무르익은
          과실의  밀도와  같이
          밤의  내부는  달도록  고요하다.



          잠든  내  어린  것들의  숨소리는
          작은  벌레와  같이
          이  고요속에  파묻히고,


          별들은  나와
          자연의  구조에
          질서있게  못을  박는다.


          한  시대  안에는  밤과  같이  해체나  분석에는
          차라리  무디고  어두운  시인들이  산다.
          그리하여  토의의  시간이  끝나는  곳에서
          밤은  상상으로  저들의  나래를  이끌어  준다.



          꽃들은  떨어져  열매  속에
          그  화려한  자태를  감추듯 .........



          그리하여  시간으로  하여금
          새벽을  향하여
          이  풍성한  밤의  껍질을
          서서히  탈피케  할  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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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9-09 10:14   좋아요 0 | URL
밤의 내부는 달도록 고요하다....맞아요 님 ~~ 그래서 제가 잠자는걸 억울해하죠..그래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매직으로 거듭나려 노력합니다 ~!

미누리 2004-09-09 10:34   좋아요 0 | URL
수암님, 이렇게 멋진 밤의 예찬시를. 제 페이퍼에 옮겨 갑니다. 오래 전에 포기한 것들에 대한 향수로...^^;;

2004-09-09 10:52   좋아요 0 | URL
1연이 정말 밀도있게 다가옵니다. 좋은 시 감상하고 퍼갑니다. 꾸벅..

물만두 2004-09-09 11:24   좋아요 0 | URL
밤에 일찍 자는 어찌하오리까...

프레이야 2004-09-09 11:27   좋아요 0 | URL
어젯밤 저도 늦도록 영화 한 편 보고 새벽 4시경에야 눈 붙혔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온 식구가 늦잠 자고 희원인 지각까지 해버렸어요.^^
멋진 시 감상하고 갑니다.

비연 2004-09-09 12:42   좋아요 0 | URL
좋은 시입니다..^^ 퍼감다~

진/우맘 2004-09-09 14:09   좋아요 0 | URL
멋져요.....밤도 영양이 많고, 알밤도 영양이 많지요.(썰렁!=3=3=3)

水巖 2004-09-10 07:47   좋아요 0 | URL
가을의 시를 올리려고 시집을 뒤적이다가 눈에 띠인 시 한편, 여러분 생각이 나데요.
매직님, 그래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말, 젊어 한때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어머님께 들었던 이말이 엇그제 같은데 이제는 초저녁만 되면 잠이 오는......
참나님, 여기서 뵈는건 처음인것 같네요. 저도 처음 연이 눈에 확 들어 오데요.
물 만두님,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는 타입이군요. 그게 좋다는구먼요.
배혜경님, 희원이 지각하면 안되죠. 아이들이 있다는것은 나를 위주로 하는 생활은 없어진다는 말이기도 하죠. 억울하지만.
비연님, 오랫만에 발걸음 하셨군요. 엇, 그림 바뀌었네요. 님의 유럽 기행 쭉 읽고 있답니다.
진/우맘님, 저도 처음에 이밤이 그밤인줄 알었답니다. 하도 맛갈스럽게 표현하셔서.
알밤이 맛있는 계절이 오고 있군요.
어제 아침에 진석이가 와서 노는 바람에 쭉 들어오지 못해 댓글이 늦었답니다.
 
 전출처 : 로드무비 > 수암님께, 魯迅 - 김광균 詩

   
                              魯 迅

                                                 - 김   광   균 - 



                  詩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
                  먼 기적 소리 처마를 스쳐가고
                  잠들은 아내와 어린것의 베개맡에
                  밤눈이 내려 쌓이나보다
                  무수한 손에 뺨을 얻어맞으며
                  항시 곤두박질해온 生活의 노래
                  지나는 돌팔매에도 이제는 피곤하다
                  먹고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
                  등불을 켜고 일어나 앉는다
                  담배를 피어문다
                  쓸쓸한 것이 五腸을 스쳐내린다
                  魯迅이여
                  이런 밤이면 그대가 생각난다
                  온 세계가 눈물에 젖어 있는 
                  上海  胡馬路 어느 뒷골목에서
                  쓸쓸히 앉아 지키던 등불
                  등불이 나에게 속삭거린다
                  여기 하나의 傷心한 사람이 있다
                  여기 하나의 굳세게 살아온 인생이 있다
                  여기 하나의 傷心한 사람이 있다
                  여기 하나의 굳세게 살아온 인생이 있다


 


수암님, 김관식 시인과의 교분이며 '미쓰 리'며 요즘 가끔 올려주시는 수암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 참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노신>이라는 김광섭 시인의 시는 1990년 공책에 또박또박 제가 직접 옮겨 적은 것인데 어지간히 좋았나 봅니다. 복사라면 몰라도 옮겨 적기까지는 잘 안하거든요.


그 무렵 김광균 시인 댁에 원고를 얻으러 두어 차례 가본 일이 있습니다. 성북동의 한옥이었던 것 같은데 잘 가꾸어진 마당이며 본채며 정말 셔터를 마구 누르고 싶은 멋진 집이었습니다. '노신'이라는 시에서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던 젊은 시인이 세월이 흘러 시의 대가가 되고 그뿐입니까, 아주 유능한 기업경영인으로 우뚝 서기까지 하셨잖아요. 아마 그 댁을 다녀와서 이 시를 읽고 감흥에 겨워 옮겨 적었을 겁니다.  간밤에 적고 오늘 아침 생각나 이렇게 몇 자 시 뒤에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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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4-09-08 08:38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 시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마지막 두줄의 시 참 맘에 드는군요.
그러나 굳세게 살어온 인생인지 저에게는 회의가 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잘못 살어온 일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가끔 하기도 합니다.
보내주신 시는 제 서재에 옮겨가서 보관하겠습니다.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鄕愁(향수) 


                                               - 정   지   용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멀는 모래성으로 발을 옳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둘러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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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9-05 16:35   좋아요 0 | URL
저는 가곡 별로 안 좋아하는데...이 시가 노랫말이 된 그 곡은...정말, 들을때마다 가슴이 떨려요.^^

水巖 2004-09-06 06:55   좋아요 0 | URL
어렸을때 기억을 쓰다보니 생각난 시에요.
왜 있죠. 노래가 되버린 시들, 괜히 그 시들은 침범 당한듯 싶은 생각도 들고요.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좋은 일인데? 뭔가 시로서는 생명을 다한 느낌이 들더군요.
특히 그 시가 내가 좋아했던 시일때.
 

                   9월의  편지 


                                             -  황   금   찬  -


 


          옷장  밑  빼닫이에서
          당신의  신발  한짝을  내  봅니다
          이것은  당신이  끌려가던  날  새벽
          뜰악에  벗어진  당신의  신발입니다



          그후  당신의  소식을  모릅니다
          첫  아이면서  막내둥이가  된
          영희년은
          벌써  국민학교  3학년이랍니다



          공백화해  가는  내  창앞에
          9월이  가져오는  이  편지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겝니까


          같은  하늘  밑에서 산다고  믿어  안지고
          그렇다고  안  믿기란  믿기보다  어렵습니다



          혹  영희년이  병이  나면
          아버지를  찾습니다
          그때처럼  당신이  미운때는  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납치된  이유를  아직도  모릅니다
          그저   9월이면  하늘같은  사연으로
          편지를 쓸뿐
          그러나  보낼곳이  없습니다



          손끝도  닿을  내  강토에
          암암이  흐르는  이  강물은
          우리들에게  칠월  칠석도  마련하지  않고
          납치의  달  9월은  가는것입니다



          나는  지금  잠든  영희 머리맡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4 2 9 2 년에는
          또다시  9월의  편지를  쓰기전,
          당신은  소식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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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8일  서울 환도 될때  납치 당해간  영희 엄마의 절절한 편지입니다.
  4291년(1958년)에 쓴 시입니다.  딸 영희년은 국민학교 3학년 아홉살이거나 열살이군요.
  지금은 2004년 !  그 영희 아줌마 오십오륙세 되는군요. 
  그 편지 쓴 엄마는 살어 계실까요?  이산 가족 만날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9월의 첫 날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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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01 14:32   좋아요 0 | URL
편지를 쓸 뿐
그러나 보낼 곳이 없습니다

처연한 시입니다.

水巖 2004-09-01 14:45   좋아요 0 | URL
비극이죠. 이 비극을 모르는채 빗겨 가려는 사람들....
영희는 어떻게 그 많은 세월 동안 자라왔고 성인이 되어 또 어떻게 살어 왔을까요?
또 그 엄마는 이 절절한 시를 쓰면서 어디서 어떻게 딸을 키웠을까요?
다만 세월이 지나 지금은 딴 세상이 됬으니 이런 말 하지 말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