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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ㅣ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평점 :
길가메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왕조 초기 시대인 우루크 제1왕조의 전설적인 왕으로 수많은 신화나 서사시에 등장하는 영웅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핵심 배경은 수메르 땅의 고대 도시국가 우루크다. 당대 최대 도시인 우루크를 통치하던 전제군주 길가메시는 어머니가 닌순 여신이어서 반신(半神)이었지만, 그는 영생할 수 없었다. 초기 전승에서 길가메시는 신들의 일원으로 등장하고, 기원전 30세기 후반기에 숭배받았다. 이후 전승에서는 수메르어 시에서 설명하듯 그는 지옥에서 망자들을 다스리는 역할로 나온다. 길가메시는 고대인들이 기록한 군왕 명부에도 있으므로, 아서 왕처럼 실존했을 가능성이 있다. (p345)

「길가메시 서사시」는 「심연을 본 사람」 으로 불리는 판본이 가장 유명한데, 기원전 10세기에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에서 널리 읽혔다. 이 책에서는 1부에 아카드어로 되어있는 태블릿을 표준으로 하고 있는 해당 판본을 다루고 있다. 2부에서 수메르어로 된 다섯편이 실려있는데, 공통된 주제가 없이 개별적인 이야기로 되어있는 편들이다.
3부에서는 1부의 자료보다 더 오래된 아카드어로 구성된 자료의 번역본을 수록했다. 중간독서 기록에 적어두었던 것처럼 3부를 읽다가 다시 1부의 비슷한 장면을 찾아 비교해보려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수 세기의 시차가 있지만 시의 여러 구절이 공통적이고 순서가 대개 비슷한 것으로 보아 '대부분의 내용이 고(古)바빌로니아 시대에 이미 정착되었음을 보여준다.'(p13), 마지막 4부는 3부에 없는 아카드어 파편과, 고대 서쪽 지역에서 나온 시 조각들을 포함하고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 의 원고는 점토판 형태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인 레반트와 아나톨리아에서 출토되었다. 방석 모양의 매끈한 점토판 양면에는 쐐기 모양의 설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특히 현재 이라크 지역의 모든 유적지에서 점토판이 출토되고 있다.
- p347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각 태블릿(점토판)의 시작에 제목과 함께 서사시의 내용을 미리 요약해두고 있다. 운문만으로 전체적 줄거리를 파악하기 힘들 수 있는데 그럴 때 요약된 내용이 도움이 된다. 3장에서는 해당 태블릿이 어디서 발견되었는지 등의 태블릿 정보를 함께 설명하고 있다.
곧 개봉할 영화 「이터널스」에서 마동석이 연기한 길가메시(Gilgamesh) 캐릭터는 역사 속 인물의 어떤 점을 차용했을까. (물론 원작 만화가 따로 있지만 말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영웅이라는 배경은 동일하다. 마동석의 평소 연기스타일을 살린 부분도 있겠지만, 원작만화에서부터 "가장 힘이 센(Strongest)"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원작에서는 다친 몸을 스스로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자가치유능력도 있고, 맨손 전투에 강한 스타일이라고.

원작만화의 길가메시 캐릭터와 영화 속 길가메시
「길가메시 서사시」 에서 길가메시의 전투장면은 훔바바와의 전투나, 하늘의 황소와 싸우는 장면 등에서 묘사되어 있는데 이때는 칼이나 7달란트짜리 도끼를 사용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기는 하다.
「길가메시 서사시」 를 읽다보면 길가메시는 처음부터 현명한 군주(혹은 영웅)은 아니다. 엔키두의 죽음에 절망하고 영생의 비밀을 찾아 야생을 헤매기도 한다. 길가메시는 죽음이 영원한 휴식을 가져오리란 사실을 알기에 최대한 생명을 연장하려 한다. 우타나피쉬티에서 영생을 얻는 경위를 묻고, 그가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신들에게 영생불사를 얻는 사연을 듣는다. 우타나피쉬티는 길가메시에게 한 주간 잠들지 말고 지내라고 제안하지만 길가메시는 시험에 실패하고, 절망한다. 이후 돌아가는 길에 회춘을 돕는 불로초의 위치를 듣고, 그것을 얻었지만, 목욕하던 중 뱀에게 뺏기고 만다.
길가메시는 물이 시원한 연못을 발견해서
거기 들어가 물속에서 멱을 감았네
뱀이 식물의 향내를 맡고
[소리 없이] 다가와서 식물을 가져갔네.
뱀은 물러가면서 허물을 벗었네
그러자 길가메시는 거기 주저앉아 흐느꼈네
그의 뺨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네
뱃사공 우르-샤나비에게 [그가 말하기를],
우리-샤나비, [누구를 위해]내 팔이 그리 힘들게 일했고
누구를 위해 내 심장의 피가 말랐을꼬?
나 자신을 위해 아무 수확도 못 거두고
'땅의 사자'를 [위해] 좋은 일을 했도다!
- p167, 태블릿 XI. 거부당한 영생
"그는 먼길을 오며, 지쳤지만, 평안을 찾았네".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깨달은 길가메시는 마침내 운명과 화해하고 현명해진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생전에 신이 되지 못한 길가메시는 사후에 신이 되었다.
책 앞날개에 나와있는 글에서 수메르학자 소르킬드 야콥슨은 이 서사시를 "현실에 맞서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 성장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영웅의 자취를 기록하지만 젊음과 늙음, 승리와 절망, 인간과 신, 삶과 죽음을 심오하게 반추한다고도 말한다. 「길가메시 서사시」 는 신화의 옷을 입었지만, 인간이 처한 상황과 관련된 진실을 탐구하고 있는 글이다.